전상호 할머니 〈천일홍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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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호 할머니 〈천일홍 꽃〉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0.12.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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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20〉

전상호 할머니는 전상호 할머니 댁 뜰에 핀 빨간 꽃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빨간 꽃이 방울같이 달렸는데 오래 가더라고 하셨습니다. 이야기 하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천일홍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천일홍인데요!’ 하니 ‘그런가? 이름은 몰라!’ 하셨습니다.  

문당리에서 장곡면 소재지로 가다보면 꺾어지는 길이 있습니다. 그 꺾어지는 길모퉁이에 천일홍이 붉게 피어 있었습니다. 천일홍이 그렇게 붉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붉게 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닭벼슬 같이 검붉은 맨드라미와 같이 있어서 더 붉게 보였을 것입니다 천일홍과 맨드라미,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벌판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전상호 할머니는 천일홍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망설이고 또 망설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천일홍의 빛깔과 모양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잡아보는 펜이니 잘 못 그릴까 두려우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찌 어찌 완성을 하셨습니다. 하늘에는 하늘색을 칠하고 밑에는 땅을 표시하셨습니다. 붉은 색 꽃이 도화지에 가득하여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싶어 ‘잘하신 거예요!’ 하고 말씀을 드리니 ‘잘해요? 내가? 아닌데!’ 하시며 고개를 갸웃갸웃 하셨습니다. 

장곡면 천태리에 계신 정순선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지난겨울에 정순선 할머니는 한 번 나와서 그림 한 점을 그리시고 더는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할 줄을 몰라 창피해서 못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림그리기를 포기하셨습니다. ‘괜찮다. 잘 하셨다.’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 한 달이 지나서 스케치북 여러 권을 가지고 그림을 보여주러 나에게 오셨습니다. 잠이 안 오는 새벽에 그리셨다고 하셨는데 놀랄만한 그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신 생각이 분명한 만큼 그림의 선과 채색이 분명해 아름다웠습니다.  

전상호 할머니도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해 지면 당신의 분명한 생각을 따라 분명하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실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고구마 같은 것 사서 먹죠?’ 전상호 할머니가 물으셨습니다. 고구마를 주시려고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들은 뭐라도 주시려고 하십니다. 작은 친절에도 고마움을 느끼셨습니다. 외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수필가, 미술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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