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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2.04.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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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41〉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소풍을 가듯이 오관리 10구 어르신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습니다. 남녀 어르신 두 분이 나란히 가방에 화구를 담아 들고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아침 햇볕을 받으며 걸오 오는 모습이 학교에 오는 학동들 같았습니다. 아직 커뮤니티센터 문은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열쇠를 가진 분이 주민복지센터에서 일을 보고 계신다 했습니다.

‘아니 그럼 열쇠를 주고 갈 것이지!’ 서서 기다리던 두 분 중 남성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일찍 나와서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를 시작하려 했는데 문이 잠겨 있어 못하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하셨습니다. ‘학생이 먼저 나와서 선생님을 기다려야 하는 거 아녀?’ 하시며 가방에 있는 스케치북을 꺼내 펼쳐 보여 주셨습니다. 스케치북에는 집에서 완성해 오기로 한 자화상과 어르신 자의로 그린 그림 한 점이 더 있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여성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림 그리기도 좋아! 그냥 칠하면 되잖아!’ 하셨습니다. 옛날 어렸을 때 아버지가 에노그를 사다 주셨는데 너무도 소중하고 쓰기 아까워 깊이 두었다가 아예 못 쓰게 갈라져서 내다 버린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튜브형 물감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병뚜껑 같은 데에 담긴 고체형 물감을 물에 녹여 썼습니다. ‘에노그’라고 하던 그것은 색깔 수도 12가지 밖에 안 됐습니다. 

‘근데요. 선생님! 하나 여쭤 볼게요.’ 여성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돌아가신 남편에게 해주고 싶은 게 있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할 때 병풍을 만들 요량으로 남편이 받아 온 월급봉투를 빠트리지 않고 모았는데 병풍을 만들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지금이라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거였습니다.

‘하이고! 소름 돋네!’ 남성 어르신이 받으셨습니다. ‘나도 누구 뒤지지 않게 절약하며 살았다. 집을 짓느라고 빚을 져서 빚 갚는 동안에는 과일 하나 못 사먹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아이들에게 미안하더라. 하루는 흠이 조금씩 있긴 해도 아이들에게 실컷 먹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사과 한 상자 사 가지고 갔더니 큰딸애가 “아빠 빚 다 갚았어?” 하더라. 그때 아이가 좋아하던 걸 잊을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너나없이 곤궁하던 시절의 이야기였습니다. 열쇠를 기다리는 동안 어르신들은 이야기꽃을 피우셨습니다. 마음을 열어 정을 나누셨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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