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세월 넘어 4대째 가업 잇는 천년고도 나주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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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세월 넘어 4대째 가업 잇는 천년고도 나주곰탕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2.06.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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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다, 100년 가업을 잇는 사람들 〈6〉
나주곰탕 하얀집과 나주곰탕 한옥집 전경.

나주곰탕, 지역을 넘어 전국의 대표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아
소머리와 각종 부산물의 고기 등 넣고 국밥 형태 탕 팔기 시작
나주곰탕 하얀집, 1904년 문 열어 4대째 112년의 역사를 간직
노안집 1960년부터 3대째·남평할매집 1975년 문을 연 전문식당

 

예로부터 ‘모양은 전주요, 맛은 나주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그만큼 ‘천년고도 목사고을 나주’는 맛이 풍부한 고장이다. 음식이 맛이 있어 ‘남도음식’이라는 말이 생겨났듯 나주의 3대 별미라면 곰탕과 홍어, 장어가 꼽힌다. 그중 으뜸은 역시 곰탕이다. ‘젊은이 망령은 홍두깨로 고치고, 늙은이 망령은 곰국으로 고친다’고 할 만큼 영양이 풍부하다는 곰탕이다. 나주와 곰탕의 결합인 ‘나주곰탕’은 지역을 넘어 이미 전국의 대표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나주가 곰탕의 본고장이 된 내력은 과연 무엇일까. 나주곰탕이 탄생한 나주는 고려시대부터 전주와 더불어 전라도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지였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나주목은 913년 동안 유지됐고, 곡창지대이면서 농축산업이 발달해 당시 인구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나주에 가서 세금 자랑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조정에 올려보냈을 만큼 부유한 고을이었다. 나주평야를 기반으로 생산된 넉넉한 농축산물과 전국 유일의 내륙 항구인 영산포 뱃길을 따라 유입된 각종 해산물이 더해지면서 전국 최초의 장시(1470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이 열린 나주목사고을시장)가 열릴 만큼 각종 산물도 풍부했던 곳이다. 이처럼 풍요로운 고장이었던 나주에서 시작된 맑은 곰탕의 유래는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의 암흑기였기였던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한반도를 침탈한 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나주 등지에 비옥한 농지가 많아 경작을 위한 일소로 쓰기 위해 키우는 소의 마릿수가 많은데 주목했다. 1916년 현재의 나주 죽림동 일대에 일본인 사업가 다케나카 신타로(竹中新太郎)를 앞세워 당시 최신 설비를 갖춘 ‘다케나카 통조림공장’을 세운다. 이 공장은 전쟁터에 나간 일본군에게 군납용으로 보급할 쇠고기통조림을 주로 만들었다. 통조림용 소는 당시 나주 금성동 일대 잿등에 있던 도축장에서 도살해 공급했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인 ‘다케나카 통조림공장’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 목재 건물 옆에 가축(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일본인 사업가가 건립한 ‘축혼비(畜魂碑)’가 있다. 일제가 당시 얼마나 많은 조선의 한우를 도축했는지 보여주는 수탈의 상징물이다.
 

■ 나주곰탕, 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 담겨
일제는 통조림 제조과정에서 사용하지 않고 버려지다시피 한 소머리와 각종 부산물 등의 부위를 조선인 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겼다. 당시 상인들은 시장 저잣거리에 솥을 걸고 장작불을 피워 소머리와 각종 부산물에서 떼어낸 살코기 등을 넣고 끓인 국밥 형태의 곰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고급 부위는 일본군과 일본인들이 차지한 탓에 부산물만 넣고 끓인 곰국은 수차례 기름기를 걷어내는 수고를 거쳐야만 맑고 개운한 맛의 국물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장터에서 팔았던 맑은 국물의 국밥이 나주곰탕의 시초가 됐다. 조선조 때까지만 해도 여유 있는 벼슬아치들이 곰탕을 즐겨 찾았다고 전한다. 곡창지대인 나주에서는 곰탕 재료인 소가 그만큼 흔했다는 증거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한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은 ‘나주곰탕’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장터국밥이라 불리던 곰탕은 어떤 음식일까? 나주시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곰탕은 장날에 소의 머리 고기, 내장 등을 푹 고아 우려내 팔던 장국밥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곰탕의 ‘곰’이란 ‘고다’의 명사형으로 오랫동안 푹 고아서 국물을 낸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어나 몽골어에서 고기 삶은 국물을 의미하는 ‘공탕(空湯)’이 그 어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곰국’ 혹은 ‘곰탕’이라 불리는 이 음식은 ‘고다’라는 말에서 명칭이 유래됐다. ‘고다’는 음식재료를 오랫동안 끓이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고다라는 말에 ‘ㅁ’을 붙여 ‘곰’이라는 명사형 단어로 만든 뒤 국물 요리를 뜻하는 ‘탕’과 ‘국’에 붙여 ‘곰탕’과 ‘곰국’이라는 요리 이름이 탄생했다. 결국 오랫동안 끓인 국물 요리를 의미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는데, 1527년 중종 때 발간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손이 많이 가는 귀한 음식’이라 적혀있다. 나주에서 만든 맑은 국물의 곰탕이 ‘수라상에 올라가면서 유명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대목인데, 사실 수라상에 올라간 것은 ‘나주곰탕’이 아니었고, 그냥 ‘곰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나주곰탕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일제는 나주에 다케나카 통조림 공장을 세워, 군수품으로 소고기 통조림을 주로 만들었는데, 공장에서는 통조림으로 쓰지 못하는 여러 부위를 근처의 상인들에게 싼값에 넘겼는데, 이 부위들을 푹 고아서 만든 것이 오늘날 나주곰탕의 시초가 됐다는 설명에 설득력이 더한다. 
 

나주곰탕 남평할매집과 3대를 잇는 나주곰탕 노안집 전경.

■ 나주곰탕 하얀집, 118년째 4대 잇는 맛집
세월이 흘러 현재 나주 과원동의 금성관(錦城館·조선시대 관아) 앞에 들어선 나주 곰탕집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곰탕은 주로 소의 뼈 없이 살코기(사태·목심·등심·양지·갈비살 등)만 넣고 6시간 이상 푹 고아낸 국물이라 맑고 담백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곰탕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이 일대에는 ‘나주곰탕 하얀집’을 비롯해 나주곰탕 노안집, 나주곰탕 남평할매집, 나주곰탕 한옥집, 나주곰탕 사매기, 탯자리 나주곰탕, 미향 나주곰탕 등 7개 식당이 반경 100여m 안에 몰려 있다. 이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은 ‘나주곰탕 하얀집’이다. 1910년에 원판례 씨가 처음 문을 열어 2대 임이순, 3대 길한수 대표에 이어 지금은 4대인 길형선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하얀집은 1904년 문을 열어 11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의 ‘이문설농탕’에 이어 국내의 곰탕, 설렁탕, 국밥 식당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112년)를 간직하고 있다. 노안집도 1960년부터 3대째 62년간 운영 중이고, 남평할매집은 1975년에 문을 열었다. 여기 말고도 나주시내에는 두 곳의 곰탕 전문식당이 더 있다고 한다.

곰탕은 일반적으로 소의 뼈를 고아서 육수를 만들기도 하고 뼈 없이 고기만으로 육수를 만들기도 한다. 나주곰탕의 가장 큰 특징은 뼈를 쓰지 않고 고기를 오랫동안 고아낸 국물을 바탕으로 요리한다는 점을 꼽는다. 물론 원재료인 고기를 하루 정도 찬물에 담가 핏물을 충분히 빼준다. 그래서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의 곰탕에 비해 국물이 맑고 개운하다. 또 나주곰탕의 비결 중 또 하나는 ‘토렴’이다. 토렴이란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뚝배기에 밥과 고기를 담은 뒤 설설 끓는 가마솥 국물을 떠서 서너 차례 토렴을 한 뒤 손님상에 올린다. 이렇게 하면 밥알 하나하나에 국물이 깊게 배어 풍부한 영양은 물론 먹는 느낌을 극대화해 준다. 손님이 먹을 때 가장 좋은 식감을 즐길 수 있는 밥의 온도는 75℃ 안팎이라고 한다. 나주곰탕의 상차림은 매우 간단하다. 김치와 깍두기가 반찬의 전부다.

나주곰탕거리에는 이름난 맛집이 즐비하지만 1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4대째 운영 중인 ‘나주곰탕 하얀집’은 118년째 4대를 잇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노포식당으로 나주를 대표한다. 1910년대 초대 증조할머니와 1940년대 2대 할머니가, 그리고 1960년대 3대 아버지에 이어 2011년 이후 4대째 길형선 대표가 이어받은 ‘나주곰탕 하얀집’은 그 명성만큼이나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결국 길형선 대표의 증조할머니가 나주시장에서 팔기 시작한 곰탕이 나주 지역으로 전파, 전국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결국 나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나주곰탕 하얀집에서는 새벽부터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오전 8시부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곰탕을 내어드리기 위해서다. 무쇠 가마솥에 3시간 정도 삶은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다시 3시간 정도 정성껏 삶는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다. 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를 반복하면서 데우는 ‘토렴’ 방식의 나주곰탕은 기름기는 거의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깊은 맛을 내기 때문에 한 번 맛본 사람은 멀리서도 또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고, 이미 언론매체에서도 수없이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나주곰탕 하얀집 나주곰탕.
나주곰탕 하얀집 나주곰탕.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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