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 향한 간절함의 곡선, 구례 ‘사포마을 다랭이논’
상태바
밥 한 그릇 향한 간절함의 곡선, 구례 ‘사포마을 다랭이논’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2.06.25 0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태경관 농업유산, 다랑이논을 보존하자 〈4〉
산꼭대기까지 층층이 계단식 풍광이 아름다운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 전경.

농업의 경제적·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어
경남·경북, 전남과 전북지역 원형을 보전한 다랑이논 많이 남아 
사포마을 다랑이논, 산꼭대기까지 층층이 계단식 풍광 아름다움
흰쌀밥 바라보던 눈길들, 넉넉한 고봉밥 한 그릇을 향한 간절함

 

우리 조상들의 문화 중에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흔히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농업 분야에서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만한 유산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농업유산이라고 부른다. 깎아지른 절벽에 만들어진 다랑이논 등과 같이 수 세대에 걸쳐 완성된 독특한 농경 활동이나 농업문화의 산물이 농업유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농업의 비중이 급격히 감소하고 이농현상, 농업생태계 훼손 등 농촌의 환경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도시와 농촌의 발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농촌지역을 개발했으나 이 과정에서 오히려 농촌자원을 소멸하거나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농촌에서 여가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농촌의 유·무형 자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농촌의 농업유산에 대한 중요성이 더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반도에서 농업 활동이 시작된 것은 5000년 전쯤으로 추정한다. 농업은 반만년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견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생계를 유지하고 먹거리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이 돼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지금의 농업은 단지 생계수단으로의 경제적 가치 이외에도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농촌을 단순히 농산물 생산 공간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농업과 농촌이 지니고 있는 다원적 가치는 교육과 관광에서부터 치유와 휴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활용되고 있는 지금이다. 
 

■ 곡선의 예술적 향기 주민들의 삶 감싸다
그렇다면 과연 농업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유산이 갖는 성격과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문화유산의 관광상품화 과정에서 유산에 내재된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복원되고, 현실화돼 재구성되는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관광자원으로의 문화유산은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유산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경험하는데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산 중의 하나가 다랑이논, 다랑논, 다랭이논 등으로 불리는 농업문화유산이다. 다랑이논, 다랭이논의 제일 익숙한 이름은 ‘계단식 논’일 터이다. 다랑이논은 비탈진 경사지를 개간해 계단식으로 조성된 농지를 일컫는다. ‘여기서 쌀을 얼마나 많이 생산할 수 있느냐’란 관점으로만 본다면, 평지의 논에 비해 기계 투입도 어렵고 가용면적도 좁아 대규모 농사가 어려운 다랑이논의 쌀 수확량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랑이논은 쌀 생산 이외에도 상당한 공익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랑이논은 경남과 경북지역, 전남과 전북지역에 비교적 원형을 보전한 곳이 많이 남아 있지만, 전국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경남 지역의 다랑이논들이 원형을 잘 보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경남 지역에서도 다랑이논의 기능이 쇠퇴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농업정책은 다랑이논의 보전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랑이논은 생태농지이자 조건 불리 지역으로, 다랑이논 경작자들은 공익직불제의 선택형 직불제 보강을 통해 지원해야 함에도, 정부는 선택형 직불제의 구체적 내용도 내놓지 않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다랑이논에 대한 보전방안 등을 연구하거나 강구 중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경상남도는 지역의 다랑이논 보전과 도시민들의 도농교류 활동을 통해 마을공동체와 산간·농촌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경남 다랑이논 경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라도 지역의 다랑이논은 어떨까.

흰쌀밥을 바라보았던 간절한 눈길들, 넉넉한 고봉밥 한 그릇의 쌀밥을 향한 간절함이 이룬 곡선의 예술적 향기가 주민들의 삶을 감싸는 곳이 바로 구례 산동면 사포마을의 다랭이논이다.
겹겹 층층이 쌓인 생의 의지에 직선은 없는 곳, 오로지 한 뼘의 땅, 한 그릇의 밥을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낳은 곡선들이 굽이친다. 생의 가파름이 낳은 곡선들이 수많은 계단을 이룬 곳이다. 논 한 배미를 장만하기 위해 고단하고 시린 노동을 감당했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이룬 집체예술이 바로 다랑이논이다. 골프장 건설에 맞서 온 동네 사람들이 뭉쳐 싸웠던 저력을 지닌 사포마을의 다랑이논은 사포저수지 밑으로 해서 300두럭이라 했다. 산골짜기 비탈을 타고 좁고 긴 논배미가 이어진다. 옛날에는 다랭이 수가 훨씬 더 많았는데, 이제는 합배미가 더 많다고 한다. 옛날엔 60호를 훌쩍 넘기던 사포마을은 이제 절반으로 줄었다. 이웃들이 하나둘 떠나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키며 살아오노라니 시나브로 땅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사포마을 다랭이논 산책로 안내도.

■ 전체 전경 볼 수 있는 전망시설 갖췄으면
“오죽해야 삿갓배미란 말이 있었을까” 주먹같이 생겼다고 주먹배미도 있고, 개배미, 홈대배미도 있고, 죽이나 밥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다 해서 죽배미나 밥배미, 생긴 모양에 따라 치마배미, 항아리배미 같은 이름이 붙기도 했고, 어떤 논은 허공에 매달린 것 같다 해 공중배미란 이름을 얻기도 했다. 저마다 이름을 지닌 논들이 다랑다랑 한데 어울려 이룬 사포 들녘이다. 옛날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 논 한 배미가 모자라 아무리 찾아봐도 없기에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한 배미가 있더라는 이야기는 유명한 다랑이논의 일화다. 작은 삿갓 하나로 가려질 정도로 조그마한 논이라서 삿갓배미다. 소설가 송기숙의 ‘녹두장군’에는 ‘한 달 보름 동안 돌과 흙을 천 번이 넘게 져 날라야 다섯 평짜리 논바닥 하나를 만들 수 있고, 벼랑 끝 30평짜리 공중배미는 아버지와 아들 둘이 일을 했어도 2년은 족히 걸렸을 법하다’는 대목이 있다. 땅을 향한 질긴 염원과 불굴의 노역으로 이룬 그 모든 배미들의 총칭은 ‘눈물배미’일 것이다.

구례 산동면 사포마을의 다랑이논은 산꼭대기까지 층층이 만들어진 계단식 논들이 전해주는 풍광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이 모든 계단식 논들은 강우량을 중심으로 각각의 환경들에 따라 물을 가두거나 보존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고안돼 있다. ‘다랑이논’의 의미는 ‘산골짜기나 비탈진 곳 등에 있는 계단식으로 된 좁고 긴 논배미’를 일컫는다. 사실 ‘다랑이논’의 표현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랑이’는 ‘다랑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랑이논’은 ‘다랑논+논’으로 논이 중복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들장논’이나 ‘공중배미’ 또는 ‘삿갓배미’ ‘엉덩이배미’ ‘천상배미’ ‘하늘배미’ 등으로도 불렸는데, 여기서 ‘배미’는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구획되어진 논을 뜻한다. 논과 논의 경계가 비뚤비뚤한 곡선의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계단처럼 층층이 돌들이 겹겹이 이어진 논에 담긴 물은 태양의 각도와 보는 위치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변하며 아름다운 초여름의 풍경을 연출하는 사포 들녘이다.

전남 구례군 관산리 사포마을의 다랭이논은 지난 2008년 행정안전부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제3회 지역자원 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당시 자연경관 분야에서 선정된 사포마을 다랭이논은 5개의 자연마을을 개간해 소득증대를 기하는 한편 마을경관도 빼어난 점을 인정받아 수상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지역자원 경연대회는 전국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숲, 자연경관, 해양 등 우수한 자원을 발굴해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기반조성과 지역의 우수한 부존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 창출과 국내외 관광 활성화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

사실 척박하고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해 층층이 계단식으로 만든 사포마을의 다랭이논은 측면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전체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시설을 만들면 또 다른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물론 전망시설을 만든다면 설계에서부터 생태학적인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사포마을의 다랭이논은 겨우내 봄철까지 모아둔 사포저수지의 물을 위 논에서부터 차례차례 순서대로 채워 농사를 짓는다. 모내기를 앞두고 논물을 가득 채운 논들과 모를 낸 모습, 가을철이면 이 논들에서 익어가는 황금빛 벼의 물결, 겨울이면 눈 내린 모습이 각양각색의 모양을 이루면서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며 장관을 이룬다는 것이 마을주민들의 자랑이며, 사포마을 다랑이논에 대한 설명이다.

구례 ‘사포마을 다랑이논’ 에 모내기한 모습.



<이 기사는 지 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