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부흥의 역사·발자취·흔적을 찾는 백제부흥군길
상태바
백제 부흥의 역사·발자취·흔적을 찾는 백제부흥군길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7.03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숲길에서 내포문화숲길의 역사와 문화를 묻다 〈6〉
③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 2
백제부흥군길 7코스 수리박물관. 작은 사진은 부흥군 구만포구.

백제부흥운동 전개된 홍성 장곡산성·예산 임존성, 당진 아미산 연결
나당연합군과 전투 치룬 백제부흥운동 역사적 의미 갖는 지점 연결
홍성 오서산 복신굴·주류성, 예산 봉수산 임존성, 당진 몽산성터까지
장곡산성과 학성산성, 적의 침범에 상호 보완적인 역할 했을 것 추정

 

내포문화숲길의 가장 큰 특징은 충남의 홍성·예산·서산·당진 등 4개의 지자체에 걸쳐 만들어진 길이란 점이다. 4개 시군의 협력이 이뤄진 데에는 크게 2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데, 첫 번째 요인은 이들 지역이 가야산을 공유하고 역사적으로 홍주목 관할의 10개 고을이자 가야산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이란 점이다. 두 번째는 지자체 간 지역연계협력사업의 경험이다. 특히 홍성과 예산은 충남도청을 유치하기 위해 협력한 경험이 배경이 됐다. 4개 시·군이 협력키로 하자 지역을 잇는 다양한 관광콘텐츠가 발굴됐다. 우선 첫 번째로 가야산에 넓게 퍼져 있는 불교 문화재다. 가야산 인근에는 수덕사·개심사·보원사지·마애삼존불 등 불교 문화재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해안지역을 중심으로는 홍성의 홍주천주교순교성지를 비롯해 당진의 신리성지·솔뫼성지, 서산의 해미국제순교성지 등 천주교 순교성지가 위치해 있다. 역사적으로 백제부흥운동이 전개됐던 홍성의 장곡산성과 예산의 임존성, 당진의 아미산이 연결됐다. 이를 토대로 △원효깨달음길(10개 코스) △내포천주교순례길(5개 코스) △백제부흥군길(10개 코스) △내포역사인물길(5개 코스) △내포동학길(1개 코스) 등 5개 주제의 31개 코스가 만들어졌다.
 

■ 내포문화숲길, 4개 시·군 ‘상생’과 ‘협력’
내포문화숲길이 추구하는 바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상생’과 ‘협력’이다. 자연과 관광산업의 공존, 4개 시·군의 협력에서 출발한 내포문화술길은 운영과정에서도 상생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점마을’을 꼽을 수 있다. 내포문화숲길이 지나는 곳에는 130여 개의 마을이 있는데, 코스 중간중간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나 숙박시설 등을 새로 건설하는 대신 기존의 마을과 협약을 맺어 활용하고 있다. 현재 주요 거점마을에서는 농특산물 판매나 식사제공 같은 방식으로 소득을 창출하는 실험을 하는 중이라는 설명이다. 백제부흥군길 1코스 구간이 지나는 오서산 상담마을의 경우 산림청이 조성한 체험센터 건물을 활용해서 걷기여행객을 대상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내포문화숲길의 백제부흥군길(1~2코스)은 홍성 구간으로 오서산에서 시작해 복신굴, 장곡산성, 조응식 가옥, 학성산성을 잇는 길이며, 5~6코스 구간은 예산역에서 추사고택을 거쳐 당진 합덕제에 이르는 길이다. 백제부흥군길은 백제 패망 후 서기 660년부터 663년까지 3년간에 걸쳐 홍성 주류성과 예산 봉수산 임존성을 중심으로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룬 백제부흥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 지점들을 연결한 길로 홍성, 예산, 당진 등 3개 지역에 걸쳐 조성됐다.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은 홍성지역이 28km구간, 예산 37km구간, 당진 41.8km구간에는 백제부흥군길 코스가 잘 조성돼 있다. 가는 길목에는 길을 잃지 말라고 이정표가 꼼꼼하게 만들어져 있다.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홍성의 주류성과 예산 대흥의 임존성과 무한산성을 거쳐 당진 합덕의 연호제를 경유하는 들길과 산길, 하천 제방을 따라 장고항까지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로 조성돼 있다.
 

백제부흥군길 5코스 예산추사고택. 

백제부흥군길 5코스에는 추사 김정희 고택이 발길을 잡는다. 선비의 고고함이 배어 있는 6칸 대청의 안채와 2칸의 안방과 건넌방, 부엌과 협문, 그리고 사랑채. 돌아보노라면 문설주와 기둥마다 추사의 글씨가 있고, 어디선가 묵향이 나고 추사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고택 왼쪽으로 천연기념물 백송과 널찍한 잔디밭이 고즈넉하다. 당진 방향으로 향하니 백제부흥군길 6코스와 천주교순례길 1코스가 겹치는 구만포구는 삽교천을 따라 6km쯤 하류에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九萬里)이다. 구만포구기념공원에 있는 안내판에는 구만리란 ‘후미지에 있는 명당지, 즉 좋은 땅이란 뜻’이라며 ‘조선시대 내포의 교통문화중심지로 쌀과 잡곡을 서울로 수송하는 통운의 연결지로 바다에서 새우젓, 소금, 기타 해산물을 실어오는 배가 선착하던 곳이다. 땅이 기름지고 교통이 편리한 고장을 풍수지리학적으로 받아들인 마을이요, 살아있는 용의 형국이라 하고 ’배‘의 형국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새우젓배가 들어오면 인근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화한 저잣거리가 형성됐던 풍요로운 곳이었다는 설명이다. 구만포구는 1979년 10월 26일 완공된 삽교천 방조제 건설로 포구 기능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계속 길을 가다 보면 조선시대 3대 저수지 가운데 하나인 당진합덕제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서 코스를 마무리 한다. 2005년 10월 26일 개관했다. 제1전시실은 수리문화관으로, 합덕제의 기원과 축조기법·한국의 수리 역사·수리 도구 등을 전시한다. 제2전시실은 합덕과 당진 문화의 형성 배경과 합덕 지역의 문화재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관이다. 1만여㎡에 달하는 수리체험장에는 연못 1개와 초가 5동이 설치됐다.
 

■ 백제 부흥의 역사·발자취·흔적을 찾다
‘백제부흥군길1~2코스’에서는 백제부흥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백제부흥전쟁은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하고 나서 시작됐다. 당나라 고종은 13만 대군을 백제에 보내, 신라군 5만 명과 함께 백제를 정벌했다. 백제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인을 포로로 잡아갔다. 당시 백제의 패망을 인정하지 않고 백제부흥전쟁을 치열하게 전개한 세력들을 ‘백제부흥군’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백제부흥군의 활약은 홍성 오서산의 복신굴과 주류성, 예산의 봉수산 임존성을 거쳐 당진의 몽산성터까지 백제부흥군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당진의 석문면 장고항으로 추정되는 백강구까지 이어진다. 

홍성의 주류성의 안내판에는 “660년, 백제의 사비성과 웅진성의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되자 백제부흥운동을 펼쳤던 성이다. 왜에 있던 풍(豊) 왕자를 모셔와 왕통을 잇고 주류성을 왕성으로 삼아 백제부흥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던 곳이다. 주류성으로 불리는 곳은 여러 곳이 있는데 장곡산성 안에서 발견된 옛 건물터와 주변의 지형과 전해오는 전설 등을 통해 이곳 사람들은 장곡산성이 주류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주류성의 위치를 짐작하게 하는 내용 중 ‘험준한 산악지형에 있어서 농사짓기 어려운 당으로 백강과 가깝고 하루만에 사비성 공격이 가능하며 임존성과도 가가운 거리에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홍성군 장곡면의 장곡산성이 주류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0호로 지정됐는데 “홍성 장곡산성은 오서산(해발 791m)에서 북동쪽으로 연결되는 남쪽 봉우리(해발 255.5m)와 북쪽 봉우리(해발 208.8m)를 연결하여 돌로 쌓은 성이다. 전체 둘레는 약 1352m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백제시대로 추정된다.

홍성 주변은 계곡이 좁아 군사 활동에 적합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동·서·북쪽에 출입문 터의 흔적이 있다. 산성 안에서 건물터 10여 개소와 주춧돌, 무덤 등이 발견되었는데, 석곽묘인 돌덧널무덤에서는 청동방울, 백제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사시’, ‘사시량’, ‘사라’, ‘관’ 등이 새겨진 기와 조각도 발견되었는데, 이곳에 백제 사시랑현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는 백제의 산성인 학성산성, 태봉산성, 소구니산성 등이 띠를 이루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서 백제부흥군의 거점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기록돼 있다.

장곡산성의 흔적을 따라 걸으면서, 비록 주류성의 위치가 정확하게 비정되지는 않았지만 백제부흥군의 발자취가 확실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장곡산성이 학성산성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같은 포곡식 산성인데 장곡산성은 동쪽으로 주둔지가 있으면서 서쪽을 방어하도록 돼 있고, 학성산성은 북쪽 천태저수지 쪽으로 주둔지로 삼을만한 골짜기가 있으며 동, 서, 남쪽에서 달려드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광시면 소재지에서 천태리로 가는 도로를 감시하는 역할도 하면서 상황과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흔적이 나타난다. 동쪽으로 구릉을 지나 산줄기를 다시 오르면 학성산성의 보조성이라고 할 수 있는 태봉산성이 있다. 태봉산성을 거쳐 소구니산성을 지나면 예산의 임존성에 연결된다. 그래서 장곡산성과 학성산성은 적의 침범에 따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성군에서는 학성산성도 장곡산성과 함께 ‘옛 주류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임존성이 대흥에서 13리 떨어져 있다고 돼 있어 대흥현에 있는 임존성은 봉수산성이고, 학성산성은 정작 임존성이니 이곳이 주류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류성의 둘레가 200보(1140m)라고 한 것은 학성산성이 1156m이므로 이 성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문헌에서는 ‘학성(鶴城)’이라는 한자를 ‘두류미성’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으니 ‘주류성’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에서 역사문화의 발자취와 흔적을 찾아보자.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