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폐건물, 개성 넘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
상태바
제주 폐건물, 개성 넘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9.03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폐건물·폐산업시설, 문화재생 가치를 담다 〈9〉
옛 제주대학교병원을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예술공간 ‘이아’.

낡은 폐건물, 폐공장·폐창고, 폐산업시설 문화 공간 새롭게 변신 
옛 제주대병원, 복합문화예술 공간 ‘이아’ 예술을 통한 치유공간
옛 국가 기간통신 시설, 제주 최초 몰입형 전시관 ‘빛의 벙커’로
옛 명승호텔, 동문모텔, 금성장·녹수장여관 문화예술공간 탈바꿈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해 삼다(三多)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 위로 쌓인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의 낡은 폐건물, 폐공장, 폐산업시설 등 병원과 목욕탕, 호텔과 창고까지 다양한 폐건물들이 개성 넘치는 문화예술공간 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생명의 빛을 불어넣어 문화예술의 새로운 빛을 머금은 활력소로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낡은 폐건물, 폐공장이나 폐창고, 폐산업시설 등에 새로운 옷을 입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며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삼다의 섬, 제주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의 흔적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덮어 버리거나 낡은 것을 어울리지 않게 그대로 두지 않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이루게 할 수도 있다. 기존의 형태를 최대한 보존한 채 새로운 것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다. 옛것을 활용하되 옛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아름다움이 새롭게 돋보이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기존의 옛것을 보존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오브제와 공간, 시간의 흔적이 주는 감동을 주기 위해 버려지는 것을 최소로 하면서 생명력을 불어넣으면 또 다른 새로움을 주기 마련이다.  

옛것과 새것이 만나 어떤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오래된 것이 가진 어두운 면모를 유연하게 재활용해 긍정적인 분위기와 경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기존 건물의 보존에 대한 관심, 공공성에 대한 존중이 높아야 함은 당연하다. 기존 건물의 형태와 골조 등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담는 방식 말이다. 제주의 폐건물들이 이렇게 재탄생하고 있다.
 

옛 국가 기간통신 시설이었던 ‘빛의벙커’.

■ 제주 폐건물, 개성 넘치는 문화공간 재탄생
제주국제공항에서 빠져나와 제일 먼저 마주하는 제주 원도심, 제주시 삼도동(중앙로14길 21)에 들어서면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잿빛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삼도2동을 지키고 있던 ‘제주대학교병원’이 지난 2009년 아라동에 새 병원을 지으며 터를 옮겼다. ‘옛 제대병원’으로 불리던 이 자리에 2017년 복합 문화예술 공간 ‘이아(貳衙)’가 들어섰다. 외관은 물론 내부 구조까지 제주대 병원의 것을 그대로 남겨두어 전시실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갤러리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이아’라는 독특한 이름의 어원을 따라가자면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많은 백성의 고충을 해결해 주던 지방자치기관인 향소(鄕所)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아(貳衙)’는 조선시대 제주 목사를 보좌하던 행정 관청의 이름이다. 현재의 공간이 조선시대 제주목 이아(貳衙) 터라는 점에 착안해 붙여졌다. 긴 시간을 간직한 터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자혜의원으로, 광복 이후에는 도립병원으로 운영되며, 예부터 제주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해왔다. 이아는 건물의 역할을 이어가려는 의미에서 문화예술 공간의 모토를 ‘치유’로 정했다.

옛 제주대병원 지하 1층과 3~4층을 활용한 연면적 2462㎡ 공간으로 조성된 예술공간 ‘이아’엔 지하 1층은 전시실, 3층은 이아살롱(커뮤니티 공간)과 예술자료실, 교육실, 운영사무실, 4층에는 작가 창작공간인 창작스튜디오와 아트랩, 편집실로 구성돼 일상 예술 활동을 통해 예술이 일상이 되고 예술을 통해 치유하고 휴식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예술공간 ‘이아’ 앞에는 1969년 문을 연 문구점 ‘인천문화당’이 아직 열려 있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제주 서귀포의 성산에는 옛 국가 기간통신 시설로 오랜 시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벙커가 있었다. 이곳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해저 광케이블 통신망을 운영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었다. 축구장 절반 정도 크기인 2975.2㎡(900평) 면적의 대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오름 안에 건설해 흙과 나무로 덮어 산자락처럼 보이도록 위장했고 군인들이 보초를 서 출입을 통제하던 구역이었다. 

이렇게 방어의 목적으로 설계된 벙커의 특성은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공간으로 최적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단층 건물로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내부 높이만도 5.5m에 달하며 내부에는 넓이 1m²의 기둥 27개가 나란히 있어 공간의 깊이감을 한층 살려주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또한 자연 공기 순환 방식을 이용해 연중 16℃의 쾌적한 온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고 내부에 벌레나 해충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내부 공간은 방음효과가 완벽하며, 미로와 같은 진입은 관람객들에게 적절히 몰입을 높여가는 과정을 제공한다. 지난 2017년 찾아낸 이 오래된 벙커는 일부 철거를 통한 내부 공사를 거쳐 콘텐츠 제작과 사업을 위해 지난 2018년에 ‘빛의 벙커’로 개관했다. 제주 최초의 몰입형 예술 전시관으로 빛과 소리로 새롭게 탄생시킨 문화 재생 공간이다.

한편 1960년 착공해 2년 뒤인 1962년 3월 문을 연 제주 최초의 현대식 호텔이었던 옛 명승호텔 건물(제주시 산지로 31)은 시대의 흐름에 밀려 1990년대 들어 수명이 다했고, 한동안 폐건물로 남아 있다가 2019년 제주레미콘 고성호 대표가 건물을 매입, 현재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 중이다. 이밖에도 오랫동안 폐건물로 남아 있던 감귤 선과장 등도 이제 지역주민들과 관광객, 젊은 청춘들로 가득한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옛 금성장과 녹수장여관을 개조한 ‘산지천 갤러리’.

■ 버려진 낡은 여관·모텔·목욕탕·빈집의 재발견
제주 동문전통시장 근처의 동문모텔을 개조한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과 탑동 해변공연장 옆에 위치한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은 제주의 또 하나의 문화예술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탑동시네마 건물은 1999년 제주 최초의 복합상영관으로 개관해 한때 제주 젊은이들이 몰리던 문화시설이었지만 이후 신축 영화관들에 밀려 2002년 한 차례 증축까지 했으나 결국 2005년 폐관했다. 바로 옆에 있는 탑동바이크숍은 바이크숍, 이벤트회사, 여행사 등이 입점해 있던 평범한 상업시설이었다. 이런 건물들이 지금은 강렬한 빨간색 뮤지엄으로 환골탈태했다.

동문모텔도 마찬가지다. 탑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문전통시장 맞은편에는 간판마저 빛바랜 모텔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이중 동문모텔은 1975년 여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1982~1994년 사이에는 덕용병원으로, 1996~2005년에는 한미여관으로 영업했던 곳이다. 낡은 침구, 입던 옷가지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에는 필연적으로 사연들도 남아 있다. 손때와 냄새와 기운들,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기억들, 현재는 제주에 머물며 제주의 기억을 좇았던 작가들의 작품이 장기투숙에 들어간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각자의 사연을 딛고 운명을 개척하듯 멋지게 용도 변경한 건물들은 과연 제주 원도심 재생을 위한 씨앗이 될 수 있을까 기대된다. 문화와 예술 애호가들의 잦은 발걸음을 기다리며 제주 문화예술의 튼실한 씨앗이 움트기를 기다리며,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현대미술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또 제주시 산지천 부근의 탐라문화광장에 있는 옛 여관인 금성장과 녹수장을 새로 단장해 ‘산지천 갤러리’로 새롭게 탈바꿈해 운영하고 있다. 30여 년 전 지어진 금성장은 전체 건축면적 890.8㎡(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목욕탕과 여관 건물로 새롭게 재단장을 거치면서도 굴뚝을 존치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비슷한 시기 건축된 녹수장 역시 여관 건물로 전체 건축면적 489.6㎡(지상 4층) 규모로 리모델링 과정에서 금성장과 연결해 이용에 편리성을 더했다.

한편 폐창고 속 갤러리 카페, 소다공(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은 옛 공장 창고건물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로 독특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이다. 이웃 주민들이나 관광객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공장건물의 대부분을 그대로 보전했으며 ‘성산일출봉 갤러리 카페’로 통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옛 동문모텔을 개조한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