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달콤한 샘물이 있는 마을, 밀양 감물리 ‘다랑이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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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달콤한 샘물이 있는 마을, 밀양 감물리 ‘다랑이논’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2.10.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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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관 농업유산, 다랑이논을 보존하자 〈10〉
밀양 단장면 감물리 다랑이논 전경.

감물 다랭이논, 일교차 크고, 물 맑으며, 볕이 좋은 산간의 유기농 쌀
다랑이논 생물다양성 보존·친환경농업 생태·문화·관광 등 다양한 가치
‘경남 다랑이논 경작프로젝트’ 진행, 다랑이논 보전 담보하는 법 필요
충청남도, 홍성 등 국가중요농업유산 ‘다랑이논’ 보전 필요성 주목해야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국가중요농업유산제도(NIAHS)를 도입했다. 2015년에는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제30조의 2항을 신설해 국가중요농업유산의 보전·활용할 수 있는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을 토대로 농업유산자원의 발굴, 전통자원의 복원, 환경정비, 교육홍보 등을 위한 예산을 지원해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농업유산자원 중에서 다랑이논은 경관농업 문화자산이며 생태관광의 자원이기도 하다. 다랑이논의 원형이 잘 보전된 지역의 사례를 통해 소중한 농업유산인 다랑이논을 보전하고 ‘다랑이논’이 있는 지역이 가진 다면적 기능의 유지와 증진 방안 등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계단식 농업이 이뤄져 왔다. 1123년 고려를 다녀간 중국의 사신 서긍(徐兢)은 “경지가 산간에 많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사다리나 층계와 같다”라고 해 계단식 농업을 언급하고 있다. 박지원(朴趾源)의 ‘과농소초(課農小抄)’에 의하면 이러한 계단식 경지를 제전(梯田)이라 불렀으며, 산 위에 수원(水源)이 있으면 벼를 심고, 그렇지 않으면 조·보리와 같은 밭곡식을 심었다고 한다. 서유구(徐有榘)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제전 가운데 논은 10분의 1~2 정도이며, 대개는 밭이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뤄 볼 때 조선 시대에 계단식 밭은 상대적으로 산이 많고 기후가 열악한 북한과 강원도에 많았으며, 계단식 논은 벼농사가 활발한 남부지방에 주로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남쪽의 최대 산지인 지리산 일대에는 18세기 이후 계단식 논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계단식 농경지의 조성은 평지의 일반 경지보다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특히 논은 논바닥을 수평으로 만들어야 하며, 관개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기술과 노력이 투여된다. 그래서 계단식 논은 세계적으로 주민들이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창출해 낸 토지 이용 경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밀양 단장면 감물리 일대 다랑논 전경. 항공사진 제공=밀양시청

■ 토종 벼 재배하며 다랑이논 살리기 앞장
경남 밀양에는 산악 오지마을이 많은데 단장면의 바드리마을과 감물리마을, 산내면 오치마을 등이 3대 오지마을로 불린다고 한다. 밀양의 3대 산간 오지마을 중 한 곳인 단장면 감물리마을의 다랭이논이 가을철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이 보는 사람들과 농민들에게 풍성함을 안겨준다. 감물리 다랭이논은 일교차가 크고, 물이 맑으며, 볕이 좋은 산간지대로 모든 오염원으로부터 떨어져 있어 벼농사만 일모작으로 하는 유기농법으로 생산, 자연친화적인 고품질의 쌀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감물리는 용소마을, 중리마을, 구기마을 등 3개 마을로 이뤄진 해발 300m의 산간 오지마을로 ‘옛날부터 맑고 달콤한 샘물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달 감(甘)’자를 쓰고 있다.

경남의 다랑이논 보전지역 중 하나인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다랑이논은 감물리 입구 저수지에서 삼랑진으로 넘어가는 고개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다랑이논이 한눈에 펼쳐지는 ‘감물리 다랑이논 전망대’가 나온다. 밀양 단장면 감물리는 감물리마을을 감싸는 만어산, 구천산 안쪽으로 14만여 평의 다랑이논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지가 많은 밀양 단장면 감물리에는 비탈진 경사면을 개간해 계단식으로 조성한 다랑논이 아직도 원형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곳이다. 밀양시가 파악한 감물리 다랑이논의 면적은 3만 6000여㎡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밀양 단장면 감물리 일대의 감물리 다랑이논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친환경 농업 방식으로 생태·문화·관광 등에서 다양한 가치를 지닌 경남지역의 대표적 농업유산이다. 농촌 지역의 고령화 등으로 최근 다랑이논이 존폐위기에까지 놓이자 지역맞춤형 ESG 경영실천의 일환으로 ‘밀양 다랑논 활성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난달 LH 경남본부, 밀양시,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밀양다랑협동조합과 ‘환경 지키고, 지역 지키고! 多가치 다랑논 지키기’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다랑이논이 한눈에 펼쳐지는 ‘감물리 다랑이논 전망대’.

■ ‘다랑협동조합’ 활동 다랑이논 보전이 목표
한편 경남 밀양 단장면 감물리마을에는 자연재배로 다랑이논과 토종 벼를 지키는 모임인 ‘다랑협동조합(다랑)’이 있다. 밀양 단장면 감물리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다랑이논 보전 활동에 나서고 있는 ‘다랑협동조합(다랑)’의 활동을 살펴보면 ‘다랑’은 방치돼 온 다랑이논에서 농사를 직접 지으며 다랑이논을 보전하고, 종의 다양성과 종자 자원 확보를 위해 사라져가는 토종 벼를 다랑이논에서 재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밀양 단장면 감물리마을로 귀농한 청년들은 ‘다랑협동조합(다랑)’을 만들어, 지금도 감물리 다랑이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다랑은 △방치된 다랑이논에서 농사를 지으며 다랑이논 되살리기 △잊혀진 토종벼의 재배 △농약, 화학비료는 물론 유기농 자재도 투입하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농사짓기 △자립을 위한 목공 실습 등을 실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랑이논을 보전하려면 이곳에서 농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랑은 논농사에 관심 있는 도시민이 신청하면 최소 20평 이상의 다랑이논을 분배해 농사를 직접 지을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신청자는 다랑이논 임대료를 내고 희망하는 벼 품종(개량종 벼인 고시히카리·아키타고마치와 토종벼인 북흑조·다다조·다백조·졸장벼)을 골라 농사를 짓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랑’ 회원들은 다랑이논 보전과 관련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말마다 시간될 때 와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늘리고자 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전면적 귀농은 아니더라도 종종 와서 농사짓는 사람이 많아져야 다랑이논을 보존할 수 있고, 또 보전을 위한 우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경남지역인 산청의 다랑이논은 그래도 경작자들이 많아 대부분의 다랑이논이 농지 기능을 유지 중인데, 밀양에선 점차 ‘묵은 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감물리도 주민 평균 연령이 80대에 가까워, 농촌 고령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에서 다랑이논을 경작하는 주민들은 격감했고, 방치된 채 농지로의 기능을 잃는 다랑이논이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랑’ 회원들에 따르면 “다랑이논 중엔 3년 묵은 데도 많고, 버드나무까지 자라난 곳은 5년 넘게 묵은 곳들인데, 3년 묵은 데는 트랙터로 갈면 되지만 버드나무 자라난 곳은 포크레인을 들여와 땅을 뒤집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다랑 차원에서 어떻게든 더 많은 다랑이논의 땅을 빌려 농지가 묵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우선적인 계획이며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고민은 점차 다랑이논에 깻잎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다랑이논이 있던 곳 중 일부 지역엔 전원주택 등이 들어서는 현실이어서 ‘다랑’ 회원들의 의지 실천의 제일 목표인 다랑이논 보전에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밀양 단장면 감물리 일대 다랑논 전경

■ ‘경남 다랑이논 경작 프로젝트’ 추진
현재의 농업정책은 다랑이논의 보전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질주한다. 다랑이논은 생태농지이자 조건불리 지역으로, 다랑이논 경작자들은 공익직불제의 선택형직불제 보강을 통해 즉각 지원해야 함에도, 정부는 선택형 직불제의 구체적 내용도 아직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지자체에서 다랑이논 보전 방안을 강구 중이라 사실은 천만다행이다.
 
경상남도는 지역 다랑이논 보전과 도시민 도농교류활동을 통해 마을공동체와 산간 농촌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경남 다랑이논 경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경남도는 산청 황매산과 밀양 감물리, 남해 가천마을, 함양 마천 등의 다랑이논을 대상으로, 경남도내 공공기관·공기업·민간기업 직원을 동아리 형태로 조직화해 연 4~5회 지역 농민들과 공동경작하는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 다랑이논 경작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 에서는 “궁극적으론 일본의 사례처럼 다랑이논 보전을 담보하는 법을 만들어, 다랑이논 보전 노력과 연계된 지역활성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경남지역 다랑이논 보전전략과 관련 윤원근 협성대 명예교수는 농업유산으로 다랑이논이 갖는 가치, 동아시아 각국의 다랑이논 현황과 보전 정책에 있어 다랑이논이 갖는 가치로 △식량생산과 주민 생계유지 △환경친화적 농법, 다랑이논 축조기술, 전통 수리체계 등 지역 전통지식의 보고 △한국의 전통적 농촌 경관 형성 △농업 생물다양성 확보 등의 예시를 들었다.

윤 교수는 일본과 중국의 다랑이논 상황에 대해 일본은 1999년 농림수산성의 다랑이논 100선 선정, 2000년 다랑이논 직불제 도입, 2019년 다랑이논 지역진흥법 제정 등을 통해 다랑이논의 다양한 기능 유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은 다랑이논 경작 농가들에 가산직불금을 한화 환산기준 ha당 370만 원을 지급하는 반면, 한국은 공익직불제가 만들어졌음에도 다랑이논 농가 대상 가산 직불금이 없다. 다랑이논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도 2010년 농촌진흥청이 한 번 조사한 것 외엔 없다. 중국의 경우 윈난성 다랑이논 지대에 하니족, 다이족 등의 소수민족들이 사는데, 중국에서도 다랑이논 지대의 경관 훼손 문제가 제기되면서, 다랑이논과 그곳에서 농사짓는 소수민족 문화의 포괄적 보전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다랑이논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점차 다랑이논 경작을 포기하는 농민이 늘고, 신규주택이나 창고를 짓는 등 다랑논의 타 용도 전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랑이논 주변의 난개발과 그에 따른 원형 훼손도 심해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다랑이논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함과 함께 다원적 활용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다랑이논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대목이다.

충청남도와 홍성군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의 ‘다랑이논’에 대한 보전 필요성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충남도의 경우 홍성을 비롯한 예산, 청양 등 시·군과 산간지역에 원형으로 잘 보전된 다랑이논이라는 농업유산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를 어떻게 지켜내고 활용할지에 대한 다양한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홍성의 경우 옥암리 소새울과 구항 온요마을, 장곡 광성리 등의 ‘다랑이논’에 대한 농지로써 본연의 기능, 경관적인 가치, 공익적 기능 등 ‘다랑이논’이 가진 가치 보전에 대해 주목할 일이다. 지역 농업유산의 다원적 기능과 가치의 실현을 통한 인간과 농토의 건전한 결합방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생태적 가치와 자연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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