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법’과 절차적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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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법’과 절차적 민주주의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4.0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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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4일자 홍주신문에 필자가 ‘검수완박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법)’ 입법의 부당성에 관한 칼럼을 올린 바가 있었다. 지난달 23일에는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 국회 입법과정에서 절차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실질적 내용에 비춰 법률이 무효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수완박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법률은 없다. 다만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의 일부 규정을 개정해서 검찰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한 법조항들을 다 합쳐서 알아듣기 쉽게 속칭 ‘검수완박법’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고 있다.

개정된 ‘검수완박법’에 따르면, 검찰은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같은 범죄를 수사할 수 없게 됐고, 검사는 경찰이 수사한 범위를 넘어서 추가 수사를 할 수 없으며, 검사가 직접 수사한 사건을 스스로는 기소할 수 없으며, 범죄를 고발한 사람은 경찰의 불송치결정(무혐의결정)에 대해 검찰에 다시 수사해 달라는 취지의 이의신청도 할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전두환,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이 검찰의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여야를 막론하고 고위 정치인들이 검찰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지난해 3월의 선거로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러한 검찰 트라우마가 작동한 더불어민주당이 곧바로 “검수완박”을 추진하자고 나섰다는 것은 작년의 칼럼에서도 말한 바 있다.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해 국민의 권익을 해치기 때문에 검수완박해야 한다는 입법 추진자들의 명분은 거짓말이다. 정치 모리배들에게 있어서,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다른 많은 법률안은 결코 시급한 의제가 아니며, 당시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나 많은 형사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던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사법리스크에 대해선 시급히 안전망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검수완박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토론이나 심의 절차도 없이 더불어민주당의 뚝심으로 국회의 각종 절차를 무시하고 한달 만에 입법을 마무리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날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 법률을 공포하고 청와대를 떠난 매우 의미있는(?) 법률이 됐다. 

지난 ‘검수완박법’ 칼럼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세계 주요 국가의 수사권과 기소권에 관한 제도는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하고, 이를 경찰에 넘겨주는 우리나라 ‘검수완박’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제도상으로도 그러하지만, 실질적으로도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는 ‘검수완박법’으로 검찰의 권한을 제한해 경찰에 넘겨주면 국민의 권익보호가 이뤄진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검수완박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에서 절차상의 위헌이라고 제소된 부분은 <더불어민주당이 당 소속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 신분으로 법사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로 보냄으로서, 전체 안건조정위원 6명 중 과반수인 4명을 사실상 자기 당 의원으로 채워넣었고, 야당이 소집을 요청하는 안건의 경우에는 연장자가 위원장을 맡는 안건조정위원회 규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75세로 국회 최고령인 김진표 의원을 갑자기 법사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로 이동시킴으로써, 어떤 일이 있어도 ‘검수완박법’이 무조건 법사위를 통과할 수 있도록 꼼수를 썼으며, 본회의에서 국회법이 보장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회기 쪼개기 전략으로 무력화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국회의원의 심의·의결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절차적 문제가 있는 ‘검수완박법’ 입법에 관해 헌법재판관 9명 중에서 5명이 합헌 의견을 내고 4명이 위헌 의견을 내어 ‘검수완박법’은 법률로 확정됐다. 심지어 그중 1명의 재판관은 “법률상 절차상 어긴 위법한 입법이지만, 법안의 내용은 합헌이니, 결과적으로 합헌”이라는 해괴망칙한 결론까지 냈다. 심지어 그 이유 중에는 “국회의원의 자율적 표결권 행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런 결론을 도출해낸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결과를 보면서, 이 나라가 반으로 쪼개졌다는 실감이 난다. 이 문제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이념적 진영대결에 대한 심판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 리가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처하는 법조인인 헌법재판관들이 내린 결론이라는 것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의 보장 같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가치가 존중돼야 마땅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옳고, 내가 주장하는 의견이 더 많은 국민들을 더 평등하게 하며, 더 자유롭게 하고,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구실로 법질서가 요구하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퇴출돼야 마땅하다.

적법한 입법절차를 거치지 못한 법률이 무효이어야 하는 것은, 적법한 선거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치인이 퇴출돼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상권 <변호사·전 국회의원·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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