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 철마산 ‘3·1공원’ 26개 마을·11개 읍면 상징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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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 철마산 ‘3·1공원’ 26개 마을·11개 읍면 상징 태극기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3.05.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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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43〉

금마면에는 금마를 상징하는 산이 있다. 금마 봉서리 뒤편에 솟은 산은 예산에서는 대흥산, 홍성에서는 봉수산 또는 봉서산이라 부르고 있다. 또 하나는 금마 화양리, 죽림리, 부평리의 세 마을에 걸쳐 나지막한 산이 가로 놓여있다. 바로 이 산이 철마산(鐵馬山, 131m, 금마면 죽림리 산23-1)인데, 철마산은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영 장군이 철마산에서 말을 타고 훈련을 했다는 이야기와 예전부터 힘센 장수에 얽힌 사연이다.

철마산은 지금처럼 낮은 봉우리가 아니었고, 험준한 모습의 우람한 산으로 장수들이 말을 타고 달리며 화살을 쏘는 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에 우렁차게 들렸다고 한다. 어느 날 장수가 나타났는데, 장수가 탄 말은 여느 말이 아니라 쇠로 만든 철마((鐵馬)였다고 한다. 장수의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와 화살이 지나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 때 한 농부가 고개를 들어 용봉산을 바라보니 바위 꼭대기에 말을 타고 있는 장수가 보였고, 장수는 갑자기 바위산으로부터 말 한 마리가 날아서 봉수산 쪽으로 치솟아 날랐다. 순간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났고, 서 있던 자리도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흰구름이 산봉우리를 감싸더니 산이 움푹 파이며 그 자리에 낮은 묏부리만 남았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장수가 돌아가신 거”라며 철마를 타고 용봉산에서 봉수산으로 뛰어 넘다가 저 산에 떨러진거라는 믿음 속에 호랑이 등 무서운 짐승들이 살지 못하도록 산을 없애 마을 사람들의 근심을 없애 준 것이라는 장수의 뜻이 담긴 산이 바로 철마산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금마는 최영 장군과 철마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데, 최영장군이 철마산에서 백월산을 향해 활을 쏘고, 애마인 금마(金馬)에게 화살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했다. 금마(金馬)가 화살을 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렸지만 도착한 곳에는 화살이 없었다. 화살이 더 먼곳으로 갔다고 생각한 최영은 단숨에 말의 목을 잘랐다. 순간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나무에 박혔다. 그제서야 말이 화살보다 빨리 달려 왔는데, 자신의 실수로 말의 목을 잘랐다는 것을 알고 최영은 말의 무덤을 크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곳이 ‘금마총(金馬塚)’이며, 여기서 ‘금마(金馬)’라는 지명이 비롯됐다.

이러한 ‘금마(金馬)’는 민족의 독립운동에서도 다른 지역보다도 활발하게 전개됐다. 금마에서는 1919년 3월 7일 홍성장터 만세시위의 영향으로 동북부 4개 면(홍북, 금마, 홍동, 구항면)의 24개 촌락에서 횃불시위를 전개했다. 4월 1일 금마 가산리의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민영갑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금마면에 살던 평범한 농민들도 철마산 정상으로 올라가 3·1만세를 외쳤다. 당시 만세운동에 가담했던 184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2년 이들의 이름을 새긴 ‘기미독립운동기념비’를 세우고 숭고한 선현의 뜻을 기리고 있다. 이후 2005년 3월 1일 금마면 3·1운동 유공자 165명에 대해 독립유공자 훈포장을 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뜻이 있는 면민 100여 명은 철마산에 올라서 봉화를 올리며 선봉이 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1953년 7월에도 휴전 반대 봉화를 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홍성에는 결성 청룡산 봉화대와 갈산 봉화산 봉화대, 금마 철마산 봉화대가 남아 있다. 또 철마산에는 삼일공원이 조성이 돼 있다. 철마산 3·1공원에는 삼일독립운동기념비, 철마산 유래비, 철마산공원조성기, 봉화대, 팔각정, 금마상(철마상), 운동기구등 나무 쉼터, 운동장, 화장실 등이 조성돼 있다. 

철마산은 삼한 시대부터 오곡이 풍요롭게 자라던 평야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명산이다. 높지는 않지만 주변에 평야가 있어서 그런지 주변이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산에 얽힌 최영 장군의 전설과 184 선열의 독립운동, 주민들이 봉화를 올린 사실을 추모하는 삼일기미독립운동기념비가 대한노인회금마면 분회의 주관으로 세우고 기록에 남겨뒀다. 산정상의 공원은 아기자기하게 공간을 구성했다. 철마산 3·1공원에는 기념비 주위에 금마면 26개의 마을을 상징하는 26개 태극기와 11개 읍·면을 상징하는 11개의 태극기 게양대가 설치돼 있다. 진입로변 1.5km에는 철마산 3·1독립만세 무궁화 가로수길이 조성돼 있다.

철마산과 금마천은 금마의 상징이며,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과 관련이 있다. 홍북 노은리 출생인 최영 장군은 철마산에서 무예를 닦고 자신의 실수로 사랑하는 애마 ‘금마(金馬)’를 잃은 후 말의 무덤인 ‘금마총’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철마산은 조선 후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 1759~1765)’의 홍주(洪州) 산천조(山川條)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조선 말기 온건 개혁파 관료인 김윤식(金允植)의 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에 1901년 10월 18일 철마산에 올랐던 경험을 기록했다. 김윤식은 집에서 멀지않은 홍주(洪州)에 방문하게 됐고, 현순소(玄舜韶) 등 세 사람과 함께 ‘철마산(鐵馬山)’에 오르게 됐다고 전한다. 지금과 달리 철마산에 오르려면 가파른 길을 힘들게 걸어야 했고, 당시 철마산 꼭대기에는 볼품없이 작은 철마 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던 1900년대 철마산의 모습과 주변의 경관을 추정케 하는 글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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