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통일과 광천 발전을 위한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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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통일과 광천 발전을 위한 우리들의 자세”
  • 홍주일보
  • 승인 2023.06.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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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삶의 길을 묻다 〈1〉

이 글은 지난 6월 8일, 광천문예회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홍성군협의회 주최로 열린 ‘평화통일, 광천 지기산 안보 체험장 유치, 광천 발전’이란 주제로 진행된 편기범 국제스피치학회장의 특강 내용이다. 특강 연사인 편기범(片基範) 회장은 광천 출신으로 전국스피치 웅변대회에서 대통령상(大統領賞)을 3회 수상한 웅변인으로 법무연수원, 경찰대학, 경찰종합학교 스피치학 초빙교수, 행정안전부 인재개발원 스피치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편기범 웅변연설집’과 ‘8주 완성 웅변 연설 비결’ 등 다수의 책을 집필, 책을 펴내기도 했다. 2021년 37년 만에 고향인 광천으로 귀향했다. 귀향 이후 2021년 광천중학교총동문회 체육대회 대신 연탄 나누기 봉사를 시작으로 ‘광천을 말하다’ 연사로 광천 발전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광천의 75세 이상 독거노인 130여 명에게 연탄과 쌀, 떡국 등의 나눔 행사도 하면서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지난 1979년 쌀 한 가마니가 3만 원이던 시절 광천초등학교 졸업생 10명에게 매년 장학금 50만 원씩을 후원하기 시작해 44년에 걸쳐 한 해 동안 모은 돈 30~40%씩을 떼어 66차례 7억여 원의 장학금을 기부해 오고 있다. 2000년 ‘너른내장학회’를 설립해 너른내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편집자 주>

지난 38년간 고향을 떠나 있다가 재작년(2021년) 8월 23일, 저희 부부가 광천읍민으로 정식 주민등록을 옮겼습니다. 고향분들을 보니까 가슴이 뜁니다. 고향은 컴컴한 밤길을 걸어도 돌뿌리에 채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광천초등학교(광동초등학교)를 나왔고, 광천중학교를 나왔고, 대전에서 고등학교,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1980년도에 아이 둘을 데리고 광천으로 이사를 왔다가 다시 1985년도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랬다가 37년 만에 다시 광천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1975년도에 대한민국 최연소 민방위 교관으로 연단에 섰습니다. 그 속에서 항상 느꼈던 것은 내가 우리 고향 주민들에게 안보에 대해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을 항상 느꼈었는데, 45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여러분들을 뵙고 최연소 교관의 그런 타이틀을 가졌던 제가 오늘 ‘평화통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그 다음에 ‘광천 지기산안보체험관’에 대해 말씀드리고, 오늘 이 자리를 메워주신 여러분들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광천 발전을 어떻게 하면 가져올 수 있는가?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퀴즈 문제를 하나 낸다면 ‘여러분! 있다고 준비하면 없고, 없다고 방심하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은?’이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정답은 여러분께서 저의 이야기를 5분 정도 듣다 보시면 저절로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있다고 준비하면 없고, 없다고 방심하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인류가 태어난 이후 이 지구상에는 수만, 수억 가지의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4가지의 전쟁 형태를 깊이 분석하고 따져 보니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 제2차 대전입니다. 또 하나는 조선시대, 일본 침략전쟁인 임진왜란입니다. 또 하나는 1950년 김일성이 일으킨 6·25 남침 전쟁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전쟁에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제가 공부를 해보니까, 첫째, 장기 독재를 노리는 자, 황제의 자리를 탐내는 자, 학살자, 노욕과 야욕으로 가득 찬 이러한 정치인들이 일으킨 것이 꼭 전쟁이더라고요. 통일 유럽의 총통이 되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자가 히틀러입니다. 그다음에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의 황제가 되겠다고 우리나라를 빌려달라고 했던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전쟁이 임진왜란입니다.  

그다음 1950년 독재자 스탈린의 한반도 공산화에 따른 명령과 스탈린의 꼭두각시 일개 소련국 소좌였던 김일성이의 야욕 합작 한반도를 공산화 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6·25 한국전쟁입니다.

그다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1999년 12월 31일부터 총리 겸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23년 동안 독재를 하고 있는데, 권좌에 있는 장기 독재자로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데 앞으로도 4년 더 독재를 하기 위해서는 침공을 할 수밖에 없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후에도 독재자로 군림하기 위해 그 대비책으로 전쟁을 일으킨 자입니다. 이 넷을 비교해 보면 모두가 독재자가 일으킨 것이 전쟁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점이 있느냐. 공통점으로는 영토 확장, 나라를 자꾸 키우려고 땅을 빼앗아 가려고, 더 큰 권력을 잡기 위해, 국내 불안정한 문제를 밖으로 돌려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으킨 것이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내가 못살고 힘들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독재를 계속하려면 뭐로 풀었느냐, 국내문제를 밖으로 전쟁으로 풀었다.

독일이 1차 대전에 패망하고 나서 1차 대전 패배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태와 국내 경제적 불황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6000만 명 이상의 최대 사상자를 낸 세계 2차 대전입니다.

또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 후 국내 장수들의 불만을 외부로 관심을 돌리고, 국내 전란의 장기화로 부족한 자원과 물자를 얻기 위해 명나라 침범해 황제가 되고, 조선은 가능청정에게 주고 이렇게 배분하기 위해 일으킨 것이 임진왜란입니다. 

한반도를 공산화 통일해 공산권 국가를 만들기 위해 김일성을 시켜서 일으킨 전쟁이 6·25 전쟁입니다.

그다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정복해서 서부국경을 강화하고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을 본격화해 푸틴의 장기집권을 더 연장하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무엇이냐?
평화선언, 평화조약 등으로 상대를 안심시키고 허술함을 보일 때를 노려 전쟁을 일으켰는데 특히 휴일, 공휴일, 명절 등을 노렸다.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날 때, 1933년 영국 수상 쳄버린이 뮌헨에서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맺은 지 몇 달 후에 영국 런던에 독일의 폭탄 세례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는 승려 간첩을 통해 조선의 사정이 재정이 허약하고, 곳간이 비었고, 조정에 당파싸움이 난무하고, 사회 기강이 완전히 무너졌고, 문약에 빠져 국방이 형편없음을 알았다.

임진왜란 발발 전 조선 통신사 2명이 일본의 히데요시를 만나러 갔는데 정사 황윤길이는 병선이 준비됐고, 히데요시의 안광이 빛나고 담략이 있다. 그래서 왜적의 침공이 있을 것이라고 임금에게 고했고(당파는 당시 서인으로), 부사 김성일이는 히데요시는 눈이 쥐같이 생기고, 허풍이 센 것이 전쟁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못 된다(당시 동인으로). 파가 달랐다. 우리나라의 현재 정치 상황과 똑같다. 안보는 여야가 없다는데 2023년 지금이나 임진왜란 당시나 정치판은 왜 이런지 한심합니다. 안보는 여야가 없어야 합니다.

에치슨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발표할 때 일본과 필리핀은 미국이 지켜주겠다고 하는 방위선에 넣고, 한국은 방위선에서 빼버리자 그 기회를 이용해 김일성이가 스탈린에게 남한 침략을 요청했고, 그전에는 미군 때문에 승인하지 않던 스탈린이 마침내 승인하자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38선 전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속의 친러 세력 늘리고 확장시키기 위해, 내부 갈등 조장을 성공시키자 2014년 전략적 요충지인 크림반도를 탱크를 동원해 강제 합병시키고 2년 전부터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 국제정세가 조성되자 우크라이나 본토 침공을 단행해 오늘날까지 1년 4개월 넘게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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