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얼굴, 소박한 미소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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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얼굴, 소박한 미소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
  • 취재·사진=한관우·한기원·김경미·최진솔 기자, 협조=홍주일보·홍주신문 마을기자단
  • 승인 2023.06.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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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신도시 주변마을 문화유산 〈3〉
  •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보물 제508호)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리 산16번지의 수암산 자락에 있는 고려 시대 석조보살상인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보물 제508호)’이 있다. 

본래 예산 삽교읍 석조보살입상은 삽교읍 목리의 시냇가에 무너진 채로 있던 것을 덕산온천의 이한경이 문화재청에 보고해 지난 1971년 지금의 수암산 중턱의 현재 위치로 옮겨 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가리미륵불이나 인근인 삽교 목리에 위치하고 있던 예산삽교석조보살입상은 모두 바닷길에 들어가는 곳, 또는 포구에 위치한 불상이라고 설명한다. 이 불상들은 모두 이 지역을 장악한 해상세력에 의해 조성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지역의 해상세력은 아산만권의 해상세력인 안성의 해상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서로 교류를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지난 1969년 6월 21일에 보물 제508호 ‘예산삽교석조보살입상(禮山揷橋石造菩薩立像)’으로 지정됐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인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禮山揷橋邑 石造菩薩立像)’으로 변경됐다.

홍성 홍북읍과 예산 덕산면 사이에는 충남도청 내포신도시를 감싸며 품에 안고 있는 용봉산(龍鳳山)과 수암산(秀岩山)이 있다. 용봉산과 수암산 자락 아래를 가로지르는 지방도 609호선 도로 옆에 위치한 수암산(秀岩山)에는 보물 제508호인 ‘예산삽교석조보살입상(禮山揷橋石造菩薩立像)’이 서 있다.
 

■ 충청지방서 유행하던 고려 시대 불상 양식
용봉산과 맞닿아 있는 수암산 끝자락에 있는 세심천 온천장에서 수암산으로 오르는 초입 중턱에 남향으로 자리한 보살입상으로 고려 시대 불상의 하나로 꼽힌다. 

높이 5.49m의 거상(巨像)으로 3개의 돌을 조립(組立)해 조상(彫像)했는데, 머리에는 장식 없는 보관(寶冠)을 쓰고 그 위에 6각형의 보개(寶蓋)를 올려놓았다. 보개의 모서리에는 풍탁(風鐸)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있다. 거의 사각형의 평면적인 얼굴이지만 눈과 입 등에 미소를 표현해 딱딱함을 부드럽게 해주고 있으며, 귀는 목까지 늘어질 만큼 크고 목에는 3도(3道)가 없다. 괴체화(塊體化)된 신체(身體)는 양감(量感)의 표현이 투박한 느낌을 주며 간단한 옷주름 만을 표현한 천의(天衣) 역시 투박한 기법을 나타내고 있다.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석장(錫杖) 같은 것을 짚었는데, 이 석장은 두 다리 사이로 내려와 대석(臺石)까지 이른다. 왼손은 하품중생(下品中生) 모양으로 배꼽 왼쪽에 붙이고 있다.

이 불상은 관촉사(灌燭寺) 미륵불상(彌勒佛像)이나 대조사(大鳥寺) 불상(佛像) 등과 유사한 충청지방에서 유행하던 고려 시대의 불상 양식으로 고려 조각사(高麗 彫刻史)에서 차지하는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이 보살상은 발견될 당시 목과 단전 부위가 잘려있었는데, 다시 세우고 이어 놓은 불상이다. 가로와 세로 7m 정도의 정방형 축대를 쌓아 만든 평지에 세워져 있다. 보살 입상 뒷편 10m 지점에는 절터로 추정되는 100여 평의 분지가 있다. 분지의 왼편은 비교적 가파른 경사인데, 이곳에 2m 정도 높이의 축대를 쌓아 분지가 허물어지는 것을 막고 있다. 분지 오른편에 조그만 암자가 들어설 수 있을 만한 작은 공터는 축대에 둘러싸여 있다. 전에는 이곳에서 산재(散在)한 기와 편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발견할 수 없다. 

혹자는 여지도서(輿地圖書: 덕산현 사찰조(德山縣 寺刹條)에 ‘수암재현 남이십리팔봉산하(修庵在縣 南二十里八峯山下)’라 기록돼 있는 것을 들어 이곳이 ‘수암지(修庵地)’일 가능성이 큰 위치(位置)라고 주장하고 있다.
 

■ 수암산 북쪽 끝자락 위치, 내포신도시 바라봐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에 대한 문화재청의 기록 설명에는 “2개의 돌을 이어서 조각한 석불로 충청남도 예산군 수암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머리에는 두건 같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 6각으로 된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을 올려놓았다. 어깨의 윤곽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넓어지지만 양감이 전혀 없이 밋밋해 마치 돌기둥 같다. 왼손은 몸에 붙인 채 아래로 내리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돌지팡이 같은 것을 잡고 있는데, 양발 사이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다. 거구이면서 볼륨이 없는 돌기둥 형태, 간략한 신체표현 방법 등이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유사한 양식을 가진 지방적인 특징이 보이는 고려 시대의 작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은 사각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네모난 얼굴은 소박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듯 하다. 높이는 5.49m이고 어깨너비는 1m, 둘레는 3.74m다. 고려 시대 석조보살 입상으로 2개의 돌을 이어서 조각한 석불로 예산군 삽교읍 신리 수암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산권역에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옛길과 바닷길로 가는 주변에 40여 기의 석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산삽교읍석조보살입상’은 삽교읍 신리의 수암산의 북쪽 끝자락에 있으며 동쪽 방향의 삽교평야와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흑운모화강암으로 조성된 삽교석조보살입상의 높이는 5.49m이며 머리에는 보개(寶蓋)를 착용하고 있다. 삽교석조보살입상이 착용하고 있는 보개의 형태는 위가 솟아오른 평면의 육각형이다. 우리나라의 석조 불상 중 머리 위에 보개를 착용하고 있는 사례는 약 80여 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의 보개는 원형과 사각형이다. 

평면 육각형 보개를 착용하고 있는 불상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삽교석조보살입상과 북한에 위치하고 있는 고성군 월비산리 석불좌상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육각형 보개 밑에는 사각형 보관(寶冠)이 있다. 삽교석조보살입상이 착용하고 있는 사각형 보관은 고려 초기 보살상들이 착용했던 원통고관형(圓筒高冠形) 보관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머리와 보관이 만나는 지점인 보관의 아래 부분은 넓은 띠가 머리 뒤쪽까지 둘러져 있다. 이 띠는 머리 뒤에서 양 끝 부분이 운문 형태를 이루며 만나고 있다. 보살의 머리 뒤 보발의 형태는 보발의 끝 부분이 목 윗부분에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마무리돼 있다. 

예산삽교읍 석조보살입상의 상호는 방형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 구멍이 있다. 눈·코·입이 얼굴 중앙에 모여 있으며, 귀는 목 아래 부분까지 내려뜨린 모습으로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다. 석조보살입상의 머리는 한때 파손돼 부러져 있었으며, 목 부분에는 이를 수리해 붙여 놓은 흔적이 남아있다. 석조보살입상이 입고 있는 옷은 일반적인 보살이 착용하는 천의(天衣)가 아니라 여래상이 착용하는 통견(通肩) 형태의 대의(大衣)를 입고 있다. 명치 부근에서 시작된 ‘U’자형의 옷 주름은 허리 부근에서 지물과 왼손의 표현 등으로 인해 생략됐으나 다리 부근에서 다시 넓게 표현돼 있다. 가슴 중앙에 올린 오른손은 석장(錫杖: 승려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의 끝부분을 잡고 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은 내려뜨려 아래 배 부근에 있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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