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년 세월 품은 일제시대 정미소, 문화예술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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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년 세월 품은 일제시대 정미소, 문화예술을 품다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10.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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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미소·양조장에 문화예술이 꽃피다 〈3〉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전북 익산시 춘포면의 옛 춘포도정공장의 전경.

전라선 ‘춘포역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 가치를 인정
옛 ‘춘포도정공장’ 문화예술을 품는 문화예술 전시장으로 변신
문화예술공간인 현대미술전시장‘대장공장’ 변모 관람객들 북적
창고 세 칸과 정원 4307m²(1300평) 규모의 공간을 모두 활용

 

전라북도 익산은 미곡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만경강과 만경평야는 농경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대교농장을 포함해 당시 익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농장만 13곳이나 됐다고 한다. 일본인 지주들은 익산뿐만 아니라 완주와 전주, 김제와 군산까지 만경강을 따라 수백만 평의 농지를 관할하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 대표적인 흔적을 춘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장촌(大場村)’으로 불리던 춘포면 춘포리는 요즘으로 치면 대규모 농업을 위해 만들어진 신도시다. 소재지인 대장촌리는 당시 수리조합과 경찰주재소, 학교와 병원, 신사까지 갖춘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마을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도로와 반듯하게 구획 정리된 가옥들, 대규모 도정공장 등에서 지금도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춘포가 한때 쌀 수탈의 전진기지라는 대표적인 증거는 전라선 ‘춘포역사(국가등록문화재)’다. 지난 1914년 개통된 전라선은 일제의 수탈 계획에 따라 이리~대장(춘포)~삼례~전주 구간을 운행했다. 열차는 일대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 날랐다고 한다. 광복 이후 쌀 대신 학생들을 실어 나르던 기차는 1997년 운행이 중단됐고, 2011년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폐역이 되면서 선로마저 뜯겨나갔다. 기차역으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춘포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아담한 역사의 벽면에는 ‘대장역’과 ‘춘포역’ 시절 이곳을 오갔던 학생들의 교복과 기차 시간표, 사진 등이 빼곡하다. 역사 주변으로는 기차 조형물과 포토존이 설치돼 있고, 고속열차가 새로 깔린 전라선 위를 수시로 오가고 있다. 

애초 ‘춘포역’의 명칭은 ‘대장역’이었다. 일제강점기 춘포 일대에는 일본인 농장과 이주민 촌락이 들어서며 마을이 형성됐다. 구마모토에서 200여 명이 농장 관리인이나 노동자로 이주해 전체 주민의 10%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일본인은 새로 개설한 마을을 ‘대장촌(大場村)’이라고 불렀고 ‘대장역’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 너른 들판이라는 의미인데, 지금도 중촌(中村)이라는 일본식 지명이 남아 있고, 1902년에 설립된 대장교회도 옛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 옛 ‘춘포도정공장’ 문화예술전시장 변신
전북 익산시 춘포면 춘포4길 66-6에는 109년 된 옛 ‘춘포도정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춘포역에서 일직선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춘포의 중심이었던 일본인 마을이다. 당시 마을에서는 다사카·이마무라·호소카와 3개의 농장을 중심으로 일본인 지주가 고용한 일본 이주민들과 소작농, 농장에서 일하던 한국인이 함께 어울려 살았던 곳이다. 지금도 마을에는 일본인 가옥이 여럿 남아 있다. 패망 후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국인들에게 넘겨주거나 버리고 간 곳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호소가와 농장의 주임관사이던 김성철(6·7대 국회의원) 가옥이다. 호소카와 농장의 직원이던 김성철은 광복 이후 일본인에게 집을 넘겨받아 평생을 이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일본식 정원까지 갖춘 저택에는 현재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호소카와(細川) 농장가옥(국가등록문화재)’은 농장의 농업시술자였던 일본인 에토가 살았다고 한다. 1904년 춘포에 자리 잡은 호소카와농장은 후작이라는 정치력을 등에 업고 일대에 철도, 도로, 학교, 신사, 수리조합 등을 유치했다. 국가 소유의 미개간지였던 만경강 일대를 간척하고 땅을 불하받는 방법으로 농지를 점유해 나갔다. 이 농장이 소유한 땅만 99만 2000㎡(30만여 평)가 넘는다. 이 정도 크기의 농장은 당시 일본에도 9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전라북도에만 이런 농장이 또 9개였다고 하니, 만경강 유역 드넓은 들판은 일본인 지주들에게 노다지나 마찬가지였다. 1940년께 지어진 2층 건물로 나무판자를 잇댄 일본식 가옥인데 사유지로 집 내부까지 둘러볼 수는 없지만 마당에서 구경하는 것은 가능하다. 194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건축물대장에는 1922년 건립한 것으로 나온다. 익산 시내에 있는 익옥수리조합사무실(현 익산왕도미래유산센터) 역시 일제강점기의 수탈정책을 보여주는 상징적 건물이다.

일본인 농장주 입장에서 마을의 핵심 시설 중 하나는 수확한 쌀을 정미하는 도정공장이다. 일제강점기 ‘호소카와 도정공장(대장공장)’은 1914년 춘포 대지주였던 호소카와 모리다치(1883∼1970)가 세운 ‘정미소’다. 이 정미소는 12대의 정미기를 보유한 대규모 시설로 기록에 따르면 호소카와는 만경강을 따라 삼례부터 김제까지 850정보(842만여㎡)의 농지를 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도정공장은 광복 이후 대한식량공사가 운영을 했고,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지난 1998년 폐업하면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돼 있던 공장이 최근 땅을 매입한 개인이 ‘대장공장’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전시장으로 변신해 문화예술을 품는 곳으로 변신했다. 정미기를 제외한 도정공장의 옛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다.
 

■ 109년이라는 시간 담아낸 특별한 장소
춘포 일대에는 호소카와농장 외에 이마무라농장과 다사카농장 등이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호소카와농장이 소유했던 도정공장이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외관은 곧 허물어질 듯 낡았지만 내부는 의외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하늘타리 열매와 덩굴이 어지럽게 걸려 있는 대문 왼편에 글자 윤곽만 겨우 알아볼 정도로 낡은 간판이 걸려 있다. ‘대장공장’이라 쓰여 있다. 사무소에 걸린 공장 이력서에는 영업 시점이 1914년이라 적혀 있다.

1998년까지 실제 정미소로 이용했던 공장을 지금은 서문근 대표가 인수해 문화예술공간인 현대미술전시장으로 변모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정미소로의 역할은 다했지만 ‘대장공장’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서문(西門) 대표는 공장을 없애겠다는 소식을 듣고 이수했는데, 청소를 하는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 카페나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옛 감성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공장 외벽에는 ‘멸공’이나 ‘방첩’ 등 60~70년대의 반공 구호들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데, 이것만은 본래 모습이 아니라 영화 ‘강남 1970’을 촬영한 흔적이라고 한다.

넓은 마당 한쪽에 메타세쿼이아 몇 그루를 비롯해 건물 주변으로 늙은 뽕나무와 모과나무, 목련 등이 심어져 오래된 정원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하에서 수동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와 쌀가마에 찍는 등급 도장 등도 그대로 남아 있다. 듬성듬성 구멍이 난 낡은 지붕과 환기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캄캄한 실내에 떨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별이 되기도 하고, 물방울처럼 일렁거리기도 한다. 기계를 설치했던 콘크리트 기초는 자체로 설치작품이 되고,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 때마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차고 단단한 철판도 나이를 먹으면 물러지는 걸까. 녹물이 흘러내리고 페인트 농도가 흐려진 양철 외벽마저 따스함을 품고 있다. 장식 하나 없지만, 공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23일부터 오는 2024년 4월 22일까지 ‘109 and: I & Thou 조덕현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109 and’전은 조덕현의 실험적 개인전으로 앞서 열렸던 ‘108and’전에 이어지는 전시라는 설명이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춘포도정공장’에 전시를 추진한 주인공은 ‘기억’을 소재로 사진, 회화 등을 작업해온 조덕현 작가(66·이화여대 명예교수)로 지난 2021년 7월 15일 출사를 나갔다가 공장을 발견하고 소유주인 서문근 씨와 논의해 전시를 열기로 했고, 지난해 4월 23일부터 개인전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를 진행했다. 전시 기간은 올해 4월 22일까지 무려 1년 동안 진행했다. 총 54점이 놓인 전시장은 도정시설이 있었던 중앙 공간과 좌우에 각각 놓인 창고 세 칸과 공장 앞에 놓인 정원 등 4307m²(1300평) 규모의 공간을 모두 활용했다고 한다.

춘포도정공장은 20세기의 역사적 격변을 겪으며, 109년이라는 시간을 담아낸 특별한 장소다. 그동안 인근의 숱한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풍부한 기억을 깊이 저장한 공간으로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aura)를 내뿜고 있다. 전시는 그러한 장소성, 그리고 공간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비롯된다. ‘춘포도정공장’이란 공간을 무생물의 객체가 아니라 작가의 시간과 함께 흐르는 생명의 공간으로 이해하고 그와 대화하듯 전시를 유기적으로 이끌어 간다. 공간의 특성에 맞는 작품을 놓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체하는 등 ‘고정되지 않은 전시’는 ‘가드닝(gardening)’이란 방식으로 ‘108 and’전에서 이미 구현한 바 있다. 한편 ‘전시속의 전시’인 ‘안성기:트리뷰트’전은 배우 안성기에 헌정하는 조덕현의 현대미술전으로 미술과 영화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이 또한 부제와 연결되는 구도로 읽을 수 있다.

또 춘포에 실제로 살았던 인물 이춘기(1906~1991) 이야기는 감동의 백미로 꼽힌다. 3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일기 중 3년 분을 빼곡히 붙여 높고 넓은 양면의 탑 벽과 같은 설치물을 완성했다. 이춘기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다섯 남매를 키우며 정갈한 글씨와 그림으로 기록한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춘기가 남긴 글과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일기의 필사본을 프린트해 거대한 구조물과 함께 ‘미학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정미소 ‘춘포도정공장’의 문화예술 공간의 존재 이유는 우리의 삶과 문화예술, 문명의 삶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명소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조덕현 <history>
조덕현 <오마주Ⅱ>
조덕현 <안성기:트리뷰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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