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곳곳에 ‘의병’ 호국의병의 발상지 ‘의령의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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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곳곳에 ‘의병’ 호국의병의 발상지 ‘의령의병박물관’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11.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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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병기념관, 충남의 항일·의병정신 어떻게 담을까 〈13〉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에 있는 의령의병박물관.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에 있는 의령의병박물관.

1972년 군민 성금으로 건립된 의병탑, 전체 모양은 횃불 상징해
곽재우 장군, 1592년 임진왜란 일어나자 가장 먼저 의병 일으켜
의령 사람들 의지, ‘의령박물관’ 아니라 ‘의령의병박물관’ 만들어
곽재우 장군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17인의병장의 조형물 세워져

 

경남 의령은 언제나 ‘호국 의병의 고장’이라는 말이 앞에 따라붙는다. 이를 대표하는 곳이 ‘충익사’와 ‘의령의병박물관’이다. 의령 9경 가운데 첫 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곳이 ‘충익사’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과 그 아래 17 장령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곽재우 장군은 1552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급제도 했지만, 시정을 비판해 벼슬에서 물러난 이후 초야에 묻혀 지냈다고 한다. 곽재우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장수 17명과 수천 명의 의병을 거느린 곽재우 장군은 기강·정암진·현풍·창녕·영산·진주성 전투 등에서 승리했다. 이들 전투에서의 승리 의미는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으로의 진출을 차단했고, 왜군 군수품 수송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하는데, 특히 의병들의 선전으로 관군의 재정비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러한 의병 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지난 1972년 처음 열렸고, 1978년에는 이곳에 사당이 마련됐다. 충익사에는 의병탑과 충의문, 곽재우장군유적정화기념비·충의각·사당·홍의문 등과 의병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의병탑이다. 지난 1972년 군민 성금으로 건립된 의병탑의 전체 모양은 횃불을 상징하고 있다. 중간에는 백색고리 18개가 있으며, 18개의 고리는 곽재우 장군과 그 아래 장군 17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충의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유적 정화기념비’가 있는데, 의병들의 공적을 후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비로 1978년 만들어졌다. 그 옆에는 ‘충의각’이 있다. 곽재우 장군과 17명 장군의 명판을 모신 곳으로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상여 모양을 하고 있다. 지난 1910년 지어진 것을 1978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목조건물로 의장·기술적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22호로 지정됐다. 이곳을 지나 홍의문을 거치면 사당이 나온다.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장군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의병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그 뒤편에는 의병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보물 제671호인 ‘곽재우 유물’이 전시돼 있는데, 곽재우 장군이 사용한 장검, 말갖춤, 포도연, 사자철인, 화초문백자팔각대접 등 6점이 있다.

이곳에는 눈에 띄는 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1978년 사당 건립 때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 식수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4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은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 8.5m짜리 모과나무도 있는데, 수령 500년이 됐다고 전한다. 애초 가례면 수성마을 하천 변에 있던 것을 1978년 충익사를 조성할 때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83호로 지정돼 있다. 또한, 수령 500여 년이 된 뽕나무도 자리하고 있다.
 

의령의병박물관 제2전시관 조감도.
의령의병박물관 제2전시관 조감도.

■ ‘의령의병박물관’ 지난 2012년 개관
경상남도 의령군으로 들어서면 곳곳에서 ‘의병’이란 두 글자가 아로새겨진 입간판과 깃발을 볼 수 있다. 입간판과 깃발에는 ‘호국 의병의 발상지’라는 구호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자부심을 강력히 나타내려는 의령 사람들의 의지는 박물관도 ‘의령박물관’이 아니라 ‘의령의병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의령의병박물관’은 지난 2012년에 개관했다. 

이전까지는 의령에도 다른 시·군들처럼 평범한 이름을 한 ‘의령박물관’이 있었다. 의령박물관은 군민 문화회관 건물 안에 있으면서 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각종 유물 등을 전시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보물 671호인 ‘곽재우 유물 일괄’ 등 의병 관련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던 ‘충익사 기념관’과 내용을 합치고 새 건물을 완공하면서 ‘의령의병박물관’으로 발전적 통합을 이뤘다는 설명이다. 바꿔 말하면, ‘의령의병박물관’의 대표 전시실은 본래 ‘의령박물관’의 자랑이었던 ‘고고역사실’과 충익사의 정체성이었던 ‘의병 유물전시실’이었다는 설명이다.

‘의령의병박물관’은 현관에서부터 이름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 의병장이 백마를 탄 채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도 ‘의령박물관’ 시절의 소장품들은 ‘고고 역사실’에 잘 보관·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고고역사실에는 선사시대 유물, 의령군 용덕면 운곡리와 부림면 경산리 고분군 등 가야 시대 유물, 그 이후의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과 근대로 이어지는 각종 유물과 전적류 등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의병 유물 전시실’에는 보물 제671호로 지정된 장검, 말안장, 팔각대접 등 ‘곽재우 유물 일괄’과 윤탁, 오운, 이운장, 강언룡, 안기종 등 모두 열여덟 명의 장군과 관련되는 유물,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조선 관군과 의병 관련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의령의병박물관’은 스스로 ‘전국의 의병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누리집에는 ‘의령의병박물관’은 “의병의 역사와 기록들을 중심으로 전시돼 있으며, 특히 경상우도 의령지역의 곽재우 의병부대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유물 나열형의 보여주기식 전시가 아닌 각종 관련 영상이나 모형, 디오라마 등을 통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남으로써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홍의장군 기마상 오른쪽의 의병유물전시실로 들어서면 관람객을 위한 관람 이동 동선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최근 의령군은 ‘의령의병박물관 제2전시관’ 증축 공사를 의령읍 중동리 일원에 총사업비 57억 원을 들여 연면적 990㎡에 2층 규모로, 내년 6월 1일 의병의 날 개관 목표로 조성하고 있다. 현재 ‘의령의병박물관’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 활동을 중심 테마로 전시를 진행했다면, 제2전시관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까지 의병을 테마로 확충한 전시를 통해 ‘의령의병종합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의령의병박물관의 현관에는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 의병장이 백마를 탄 채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의령의병박물관의 현관에는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 의병장이 백마를 탄 채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의령의병제전, ‘의령홍의장군축제’ 새 출발 
1592년 4월 13일 일본 군선 700여 척이 부산을 침략하며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불과 18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는 일방적인 전세 속에서 조선을 지탱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이끈 수군과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항쟁이었다. 의병 중에서도 붉은 옷을 입어 홍의장군으로 불린 의령 출신 곽재우의 활약이 눈부셨다. 4월 22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경남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정암진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쳐 호남 진출을 저지했다. 의병하면 의령이 먼저 떠오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충의의 고장, 의령읍으로 들어서면 의령천을 끼고 남산에 안겨 있는 ‘충익사’와 ‘의령의병박물관’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의령읍행정복지센터 앞의 의병교를 건너면 양쪽 기둥을 세워 둥근 고리로 층층이 쌓은 ‘의병기념탑’을 만날 수 있는데, ‘가운데 둥근 18개의 흰색 고리는 홍의장군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이끈 17명의 의병장을 뜻하고, 양쪽 기둥의 팔자형은 의병 창의 때의 횃불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남산의 푸른 숲을 뚫고 우뚝 선 의병탑이 임란 당시 의병들의 기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홍살문을 지나 충익사 안으로 들어서면 잘 다듬어진 나무와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충익사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망우당 곽재우 홍의장군과 17 의병장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데, ‘충익’은 곽재우 장군의 시호다. 충익사에 가기 전에 왼쪽으로 단청이 매우 화려한 작은 목조건물 하나가 시선을 끈다. 곽재우와 17 의병장에게 사후에 내려진 관직명 등을 봉안하고 있는 ‘충의각’이다. 충의각은 어느 한 곳에도 쇠못을 치지 않은 우리나라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설명이다.

발걸음을 옮겨 홍의문을 들어서면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17 의병장, 수많은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충익사’가 나온다. 의병 창의 일인 매년 4월 22일, 이곳에서 추모 제향을 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충익사를 나와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은 기념관이다. 이곳에는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유물과 전투도 등이 전시돼 있어 임진왜란 때의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기념관 뒤쪽에 있는 작은 문으로 나가면 바로 ‘의병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곽재우 장군이 입었던 홍의의 도포 자락을 형상화해 직선과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으로 설계됐다고 설명한다.

의병박물관은 크게 고고역사실과 의병유물전시실로 나눌 수 있다. 의병유물전시실에는 임진왜란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는데 발 벗고 나선 17인 의병장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보물로 지정된 곽재우의 장검과 말안장 등의 유물도 볼 수 있다.

정암진 전투가 벌어진 현장을 재현해 둔 디오라마나 의령지역 의병들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유물도 중요한 전시 테마다. 의병박물관을 나오면 잘 조성된 수변공원 위로 우뚝 솟은 구름다리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충익사에서 경남 창녕 방면으로 20번 국도를 타고 15분쯤 가면 호젓한 유곡면 세간마을이 나오고, 그 중심지에 곽재우 장군의 생가가 있다. 곽재우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9일째 되는 날 이곳 마을에서 17 의병장들과 함께 책과 붓을 던지고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큰 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았던 나무인 현고수가 아직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뒤편으로 잘 정비된 생가가 나온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곽재우 장군과 17 장령의 기개가 곳곳에 배어있는 느낌이다. 생가 앞에는 수령이 600년이나 되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의령 사람들은 ‘습속이 굳세고 용맹함을 숭상’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 시대를 넘어 가히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의령군은 지난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의령 서동생활공원 일원에서  ‘의령홍의장군축제’를 개최했다. 올해부터는 반세기 가까이 열렸던 ‘의령의병제전’이 축제명을 ‘의령홍의장군축제’로 바꿔 새 출발을 했다고 전한다.
 

의령의병박물관 내부 모습.
의령의병박물관 내부 모습.
곽재우의병장과 17장수를 상징하는 의병탑.
곽재우의병장과 17장수를 상징하는 의병탑.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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