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최초 103년 역사 옛 나주정미소 ‘예술곳간’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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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 103년 역사 옛 나주정미소 ‘예술곳간’ 변신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11.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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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미소·양조장에 문화예술이 꽃피다 〈6〉
1920년대 호남권 최초로 설립된 옛 나주정미소가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920년대 호남권 최초로 설립된 옛 나주정미소가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000년 역사 전라도 나주, 100년 넘는 옛 정미소 문화예술공간으로
1920년 호남권 최초로 건립된 나주정미소, 학생독립운동 도모한 곳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자 박준채의 형이 지은 정미소로 역사적인 현장
精米所에서 ‘정(情)미(味)소(笑)’로 인정·맛·웃음 가득한 공간으로 변신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라도, 전남 나주에는 100년의 세월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옛 나주정미소가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라남도 나주는 충남 홍주(홍성)와 마찬가지로 천년 목사고을이다. 전라도 중서부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하며, 우리나라 4대강인 영산강이 도심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농업에 유리해 예부터 벼농사와 배를 비롯한 과수농업, 뽕나무 농사 등 잠사 농업과 원예농업이 활발한 곳이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라도’라는 명칭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에서 따왔을 정도로 과거부터 전라도의 대표도시로 꼽히는 지역이다. 전주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을’이라면, 나주는 ‘고려 태조 왕건의 고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전라도에는 많은 아름다운 산, 끝없이 펼쳐진 호남평야의 곡창지대, 드넓은 남서해안의 갯벌 등이 있다. 이것들이 주는 풍요로움은 축복인 동시에 침략과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전라도의 대표도시인 나주에 있는 옛 나주정미소는 호남 최초의 정미소로 전라도 최대 곡창지대였던 나주평야에서 수확한 곡식을 쌀로 생산하던 장소였다. 호남의 역사가 깃든 공간이지만 1980년대 이후 화재로 인해 버려졌던 폐건물로 존재하던 곳이다.

이러한 과거의 도시공간이 문화예술로 재생돼 도시민의 삶을 이끌어 가는 주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낡고 오래됐다고 해서 허물고 새로 짓는 것만이 도시 발전을 위한 방안이나 방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물어야 할 것과 허물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홍성의 경우도 충남도청신도시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원도심의 홍주성 복원과 군청사 이전 등이 예정돼 있는 만큼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동안 역사·문화의 일부분으로 간직했어야 할 많은 근현대의 문화유산들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키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함께 한 문화유산들을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낡고 오래된 시설물이나 역사와 문화 속에 오명으로 남은 시설물들을 문화예술로 극복해 성공한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낡고 오래된 유산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해 도시 활성화의 생장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재생을 앞둔 옛 나주정미소 부지의 4개동 건물에 담쟁이넝쿨이 덮였다.
재생을 앞둔 옛 나주정미소 부지의 4개동 건물에 담쟁이넝쿨이 덮였다.

■ 일제의 수탈, 나주항일운동의 역사적 현장
전라남도 나주시 성북동에는 1920년대에 세워진 나주정미소가 있다. 이 나주정미소는 전라남도, 전라북도, 광주광역시를 포함한 호남권에 최초로 세워졌으며 규모가 가장 큰 정미소였다. 정미소는 벼를 찧어 쌀을 생산하는 곳이다. 호남의 드넓은 평야에서 수확된 어마어마한 양의 곡식들이 나주정미소에 모여들어 천장 끝까지 가득가득 보관되곤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현실 속에 강제 수탈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겪기도 했다.

한편 나주정미소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바탕이 된 나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나주정미소를 건립한 사람은 박준삼이다. 박준삼의 동생이 박준채인데, 박준채는 나주역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열차로 통학을 했다. 1929년 10월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 열차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학생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학생들이 나주역에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중 광주중학을 다니는 일본인 학생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기옥의 댕기를 잡아당기며 희롱을 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박기옥의 사촌 동생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을 나무랐고,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을 멸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을 주먹으로 치며 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당시 박준채는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싸움은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중학 학생들의 패싸움으로 확대됐다. 일본 경찰은 일본인 학생 편을 들며 조선인 학생들을 구타했다. 이 소문이 퍼지며 광주 일대의 대규모 학생 시위가 벌어지게 됐고, 이듬해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따라서 ‘나주정미소’는 근·현대 우리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소다. 1920년 무렵에 만들어진 나주정미소(박준삼 건립)는 쌀을 생산하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1929~1930년 무렵에는 학생독립운동을 도모하던 곳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였던 나주학생만세시위 등 항일운동의 주역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나주항일운동의 역사적 현장이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나주역 사건의 주인공 박준채는 박준삼의 동생이다. 금호그룹 창업자 고 박인천 회장이 1950년부터 1971년까지 그룹의 기반을 다질 무렵 ‘죽호정미소’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

■ 도시재생사업으로 다시 태어난 나주정미소
일제 수탈의 역사를 지니고 항일운동 관련 회의 공간으로 기능했던 나주정미소가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나주읍성 주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방치됐던 정미소 건물을 새롭게 정비하면서다.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지 않고 기존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구조물을 보강했다. 1920년경 지어져 그렇게 100년의 세월이 쌓인 붉은 벽돌에는 정미소가 간직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됐다. 

동네 토박이들의 지난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곡식이 귀하던 시절, 마을의 보물창고로 대접받았던 나주정미소는 현재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 시민들을 맞고 있다. 벼, 보리 등 곡물을 찧는 곳이란 의미의 ‘정미소(精米所)’에서 나주의 ‘정’과 ‘맛’ 그리고 ‘웃음’이 피어나는 ‘정미소(情味笑)’로 간판도 새로 달았다. 주린 배를 채워줬던 곳간에서 마음을 살찌우는 공간으로의 변화다. 예나 지금이나 귀한 터임은 분명해 보였다.

‘정미소(精米所)’라는 이름에는 ‘정(情)미(味)소(笑)’라는 한자를 부기해 ‘인정과 맛, 웃음’이 가득한 공간으로 거듭났음을 드러냈다. 나주정미소 부지에 남은 여러 건물 중 제일 먼저 단장을 마친 곳은 ‘난장곡간’이다. 난장곡간이라는 이름은 ‘곳간(庫間)’에서 비롯됐다. 음악을 뜻하는 곡(曲)과 곳간이 합쳐져 ‘곡간(曲間)’이라는 단어로 탄생했다. 난장곡간은 ‘문화콘서트 난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통해 음악과 추억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곳은 광주 MBC의 음악 프로그램의 무대로 활용돼 나주정미소를 홍보하는 데 일조했다. 나주정미소는 총 5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그중 가장 먼저 단장을 마치고 공개된 ‘난장곡간’은 지난해 광주MBC의 음악프로그램 ‘난장’의 공연 무대로 활용됐다. 1980년부터 비워져 사실상 버려진 공간이나 다름없던 곳이었기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내어줬다. 실제 ‘매스컴’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전한다. 정미소 안쪽에는 음료와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새롭게 탄생한 옛 ‘나주정미소 난장곡간(曲間)’은 나주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옛 나주정미소 부지에 자리한 정미소와 양곡창고 등 4동의 건물을 업사이클링 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난장곡간이 첫 번째 시도로 알려지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옛 나주정미소 부지에 남아 있는 4개의 건물 중 한 곳은 재활용을 넘어 디자인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새로운 활용)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주정미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인데 특히 ‘도심캠핑’이 큰 인기다. 정미소 안쪽 마당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면서 야외무대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나주정미소는 전체를 리모델링을 통해 전반적인 공간 조성이 완료될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나주정미소와 5분 거리에 나주나빌레라문화센터도 있다. 이곳은 옛 잠사공장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으로 나주정미소와 함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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