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양평 ‘지평양조장’에선 ‘문화예술을 빚다’
상태바
국내 최고의 양평 ‘지평양조장’에선 ‘문화예술을 빚다’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11.26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년 정미소·양조장에 문화예술이 꽃피다 〈7〉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에 있는 지평양조장(국가등록문화재 제594호)은 1925년에 설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다.

1925년 설립 국내 가장 오래된 지평양조장, 한국전쟁 잔존 유일 건물
양평군, 2018년 8억 원 들여 복원, 막걸리·역사가 있는 문화공간 활용
지평양조장 ‘복합문화예술공간’ 본격 활동 시작, 프랑스 예술작가 초청
지평막걸리·지평의병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한 ‘지평전통발효축제’개최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위치한 지평양조장은 우리나라에서 최고(最古) 양조장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한옥 축조방식을 기본으로 일식 목구조를 접합한 절충식 구조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축의 특징이 담긴 근대 시기의 건축물이다. 

지평양조장은 지상 2층 목조건축물로, 2층에는 환기를 위한 높은 창을 내고, 벽체와 천장에는 보온을 위해 왕겨를 채웠으며, 서까래 위에 산자(橵子) 대신 대자리 형식으로 짜고, 외벽 일부에 흙벽돌을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일제강점기 양조장이 대부분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지평양조장은 한식 목구조 바탕에 일본식 목구조를 접합한 절충식 구조로 당시 막걸리 생산공장의 기능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건축사적 평가를 하고 있다.

지평양조장은 최초 설립자 이종한 씨에 의해 1925년에 설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양조장 건물은 1939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고 전한다. 특별히 지평양조장 안에는 100년이 넘었다는 우물이 있는데, 지평막걸리의 제맛은 이 우물 덕분이라고 주민들도 설명하고 있다. 지평양조장은 지난 2014년 7월 1일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됐다. 양평에서 등록문화재가 지정된 것은 양평 구둔역이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된 이후 두 번째다.

지평양조장은 6·25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프랑스 대대 지휘소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한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설립 이후 98년여의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66년 김교섭 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이후 아들과 손자로 이어져 현재는 김기환 대표가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지평막걸리는 강원도 춘천과 충남 천안에서 각각 생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평양조장은 한국전쟁 당시 인근에서 잔존한 유일한 건물로, 지평리 전투 당시 UN군 사령부로 사용됐고, 당시 사령부였음을 알려주는 기념비가 양조장 입구에 세워져 있다. 1951년 2월 미군과 프랑스군은 지평 일대에서 중공군을 맞아 사흘 동안 밤낮으로 처절한 전투를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연유로 지평양조장 앞에는 한국전쟁 당시 사령부였음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문에는 ‘-자유를 위하여- 1951년 2월 한국전 참전 유엔군 프랑스 육군의 전설적인 사령관 몽클라르 장군께서 지평리 전투를 지휘하시는 동안 이곳을 사령부로 삼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평양조장은 6·25한국전쟁 때 UN군사령부로 사용됐다.

■ ‘지평막걸리’ 생산지, 등록문화재 제594호
‘지평막걸리’의 생산지이자 국가등록문화재 제594호인 경기도 양평의 ‘지평양조장’은 지평면의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건너편에 지평중학교와 지평고등학교가 있고, 주변에는 상점들이 늘어섰다. 시골 지역 중심지에 터를 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양조장의 입지 선택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접근성이 좋은 곳을 택했다고 봐야 할까.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조사 보고서 ‘우리 술 문화의 발효 공간, 양조장’과 ‘양조장의 시간·공간·사람’에서 오래된 양조장이 대부분 지역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이유를 일제강점기 주세령에서 찾고 있다. 일제는 1916년 주세령 시행규칙을 통해 “부·군·도청 소재의 부·면 또는 조선총독이 지정한 시가지 이외의 장소에 주류 제조장을 설치하고자 하는 때에는 면허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 보고서에는 “일제가 양조장을 시가지에 둔 이유는 주세를 효율적으로 걷고 단속에 용이했기 때문”이라며 “1934년에 개정된 시행규칙은 ‘세무서 소재’라는 말을 넣고 ‘시가지’라는 말을 제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에 양조장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공간 중 하나였다”며 “입지만 봐도 양조장이 지역사회 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민속박물관 조사팀이 ‘근현대 생활문화조사 중장기 계획’ 첫 사업으로 지난 2018년부터 2년간 전국 양조장 54곳을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는 근현대 술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집이다. 양조장 탄생과 흥망성쇠, 술 제조 과정과 도구,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은밀한 양조장 공간과 구조, 양조장 사람들이 사용한 물건, 양조장 노동자 이야기, 양조장과 지역사회에 관한 글을 수록했다. 아울러 전국 양조장 목록, 양조장 실측 도면을 실어 학술 가치를 높였다.

김승유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1934년부터 1995년까지 술은 양조장에서만 만들 수 있었기에 근현대 술 문화 중심에는 양조장이 있다”며 “충남 논산의 양촌양조장은 반지하 발효실, 반지상 냉각실 형태여서 온도 관리에 탁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하고 “과거에 농촌에서 양조업자는 대개 부자라고 했는데, 오늘날 양조장 운영자들도 지역사회 활동에 많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비교적 오래된 충남 당진의 신평양조장, 충북 진천의 덕산양조장, 광주 금천주조장, 전남 나주의 남평주조장, 경남 양산의 천성산양조장, 강원도 정선의 여량양조장도 외딴곳이 아니라 시가지나 읍·면·동의 소재지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평양조장의 프랑스 예술작가 초청 전시 모습.

■ 지평양조장,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양평군은 지난 2018년 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평양조장을 1925년 건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실행에 옮겨, 2년의 공사 끝에 지난 2022년 5월에 양조장 복원을 완료했다.

양평군이 세금까지 들여 ‘지평양조장’의 복원사업을 결정한 것은 지평주조가 양조장 건물을 막걸리와 역사가 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전제로 했다. 따라서 양평군은 ‘지평양조장’을 역시 지평면에 건립 예정인 ‘근현대 역사박물관’과 일제강점기에 철도역이었다가 폐역이 된 ‘구둔역’을 예술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구둔역 기술스테이션’과 묶어 양평 동부권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벨트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평주조가 지평양조장을 복원한 후 ‘막걸리박물관’ 혹은 카페 형식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고, 지평의 제1공장에서는 양산 막걸리 대신 프리미엄 수제 막걸리를 생산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양평을 떠나 서울에서 시작하면서 지역사회에서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지평양조장’의 뿌리인 지평주조는 4대 김기환 현 사장이 경영을 물려받으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김 사장이 경영을 시작할 당시 3억 원 정도였던 연매출액은 불과 7~8년만인 2021년에는 350억 원을 돌파해 100배 이상 커졌고, 지평막걸리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춘 유명 막걸리 브랜드로 성장했다. 따라서 양평의 제조시설로는 급성장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던 지평양조는 양평에 제2공장을 지으려 했지만, 상수원보호구역 등 규제가 심해 공장을 짓지 못하자 대신 춘천에 제2공장을 지었고, 천안에 3공장을 추가로 건설했다. 현재 양평은 상수원 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로 사실상 지평에서는 단 한 병의 막걸리도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이 수년째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평주조 측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비록 양평에 제조시설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양평에 뿌리를 둔 향토기업으로 계속 남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고 한다. 최초의 제조시설이던 지평양조장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며 지평양조장의 주소를 법률상의 본점 소재지로 계속 유지하겠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 걸까. 지평양조장은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지평양조장에서는 지난 5월 15일부터 6월 9일까지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프랑스 예술작가 초청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전시는 ‘신체의 표현(Prendre Corps)’을 주제로 프랑스 실력파 예술작가인 앙토안 자노(Antoine Janot), 아가트 르푸트르(Agathe Lepoutre) 등이 참여했다. 역사와 전통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평양조장에서 영감을 얻은 두 작가의 특별한 조형 작품도 함께 선보였다. 앙투안 자노는 양조장 바닥에 쌀을 뿌리고 그 속에서 사람을 닮은 형상들이 점점 자라나는 모습의 설치 작품 ‘횡단’을 전시했다. 술을 빚는 양조장에서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100년이 된 이 건물을 스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가트 르푸트르는 ‘산’이란 제목의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천과 실로 만들어진 산 모양의 구조물에 나뭇가지와 소라껍데기, 쌀과 같은 오브제를 걸어두고, 이것들이 실과 천으로 이리저리 얽혀있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작가가 이번 전시를 맞아 한국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얻은 이미지들을 모아 자신이 태어난 곳과 자신에 대한 감상을 표현했다.

한편 양평군은 오는 10월 28~29일 양일간 지평면 일원에서 지평막걸리와 지평의병 등 지역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제1회 지평전통발효축제’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쏠린다. 이번 축제는 발효제품 판매와 전시, 의병출정식, 지평의병 의상 입기 등 지역 특색을 활용한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지평은 을미의병이 처음 봉기한 곳이자, 지평막걸리를 빚는 지평양조장은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군 본부로 활용돼 승리의 기틀을 다진 상징적인 곳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