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도시, 군산 째보선창과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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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도시, 군산 째보선창과 ‘금강’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5.07.17 07:54
  • 호수 900호 (2025년 07월 17일)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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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해방공간 문학의 배경도시, 역사·문화관광 로컬 브랜드로 〈3〉
일제강점기 시대 영화를 누렸던 째보선창은 ‘탁류’의 배경으로 이제는 수제맥주의 중심지가 됐다. 

 

채만식은 금강의 ‘탁류’를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에 비유해 소설을 썼다
군산항, 호남지역 쌀·농산물 수탈 전진기지 ‘째보선창’ 씀씀이 푼푼했던 곳
충청·전라도 접경타고 흘러온 금강이 끝나는곳에 걸터앉은 항구도시 군산 
‘탁류’ 일제 치하의 식민지에서 우리 민족의 삶·고통을 풍자와 냉소로 그려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다시 일제강점기 시절의 전북 군산의 군산항과 금강을 바라본다. 채만식의 ‘탁류’는 바로 금강(錦江)이다. 금강(錦江)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금강 하류에 달하면 만조 시 홍수가 겹칠 때 하류 평야 지역의 지류들로 물이 역류해 황토색으로 흐려지는 ‘탁류’가 된다. 이 ‘탁류’를 채만식은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에 비유해 소설을 썼다. 

군산항은 부산항이나 목포항보다 큰 항구였다. 당시 군산항이 호남지역 쌀과 농산물 수탈의 전진기지로 기능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산지역의 여러 항·포구 가운데서도 째보선창은 채만식(1902∼1950)의 소설 ‘탁류’와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의 공간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근대이전까지 ‘째보선창’ 주변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한 정미소에서 쏟아져 나온 인부와 만선 후 배에서 내린 선원들을 맞는 술집이 새벽까지 불을 밝혔던 곳이다. 우스갯소리로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돈이 넘쳐나던 곳이었다고 한다. 조기가 지천이었고, 소금과 배, 상고선, 화목선(장작 배) 등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고깃배가 들어오는 조금을 전후해서는 어부들 씀씀이도 푼푼했던 곳이 바로 ‘군산 째보선창’이다. 그토록 번성했던 째보선창은 1970년대 이후 도로 건설을 위한 매립 등으로 더는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그 원형과 기능을 잃었다는 평가다. 지금은 어시장·선박 엔진 수리공장·철물점·여관 등이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며 그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다.

군산시가 이처럼 쪼그라진 상권을 되살리고 지속하는 쇠락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이다. 이 도시재생사업은 째보선창∼신영시장 일대, 옛 수협창고 리모델링, 행복주택 건설, 마을기업을 통한 소득 창출 사업 등이 핵심이다. 기능 상실로 흉물스럽던 옛 수협창고를 리모델링한 ‘군산 째보스토리 1899’는 침체한 째보선창 부활의 거점 시설로 역할을 하고 있다.

■ 군산·금강,식민지 암울한 상황 그려
전북 군산을 대표하는 두 명의 문인이 있다. 소설가 채만식과 시인 고은이다. 이들은 모두 군산에서 태어나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가다. 그중에서도 채만식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0년대의 사회상을 소설에 녹여낸 작가로도 유명하다. 채만식의 소설이 곧 군산의 과거이며 우리나라의 산 역사로 꼽는 이유이다. 당시 군산은 항구도시이면서 주변의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어 수확한 대량의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던 곳이다. ‘탁류’에 나오는 ‘미두장’은 이 과정에서 나온 일제강점기의 흔적이다. 실제로 군산시 내에 있는 근대 건축관에는 탁류의 배경을 토대로 군산의 이러한 역사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의 ‘탁류’에서도 당대의 어지러운 세태를 짐작케 하는데, 소설의 첫 문장에서부터 채만식은 군산을 돌아 흐르는 금강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한강(漢江)이나 영산강(榮山江)도 그렇기는 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소설 ‘탁류’ 중에서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향은 서서남(西西南)으로 빗밋이 충청 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타고 흐른다. 이로부터 물은 조수까지 섭슬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 넓이가 훨씬 퍼진 게 제법 양양하다…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소설 ‘탁류’ 중에서

이렇듯 채만식(1902~1950)의 ‘탁류(1939)’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접경을 타고 흘러온 금강이 끝나는 곳에 걸터앉은 항구도시 군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일제의 억압과 자본주의의 억압이라는 이중의 억압이 조선 민중을 내리누르던 1930년대가 시간적 배경이다. 소설에서 여주인공 초봉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조선인 남성들이지만, 그 배후에는 식지 조선의 암울한 상황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 부산과 함께 당대의 대표적 물류기지였던 군산은 일본의 식민지 수탈의 전초기지였다. 지금껏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은 이제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얻어 외지인들의 발걸음을 모으는 독특한 볼거리가 있는 문화유산의 거리로 자리 잡았다.
 

‘탁류(濁流)는 금강이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금강을 배경으로 채만식은 소설 ‘탁류’를 썼다. 

■‘탁류’도시 군산, 근대문화유산 그득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농사를 짓다가 군산으로 온 정주사는 미두에 빠져서 집안살림을 어렵게 한다. 초봉은 제중당약국에 취직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 초봉은 의학을 공부하고 있던 남승재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정주사는 매파의 말에 넘어가 은행원인 고태수와 초봉을 결혼시킨다. 고태수는 도박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불륜을 저질러 죽게 되는데, 장형보는 초봉의 집에서 초봉을 겁탈하자 순식간에 남편을 잃고 겁탈까지 당한 초봉은 죽을 생각까지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집을 나오게 된다. 그때 우연히 박제호를 만나 서울에서 살림을 차리는데, 얼마 뒤 초봉은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어 고민하던 초봉은 약을 먹는다. 다행히 일찍 발견돼 아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마침내 딸을 낳고 안정을 찾은 초봉에게 어느 날 장형보가 찾아온다. 장형보는 자신이 딸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면서 박제호에게 초봉과 딸을 달라고 하자 이에 박제호는 순순히 초봉과 딸을 장형보에게 양보한다. 초봉은 자신의 신세를 망친 인물을 원망하다가 어린 딸을 생각해 마음을 바꾸고 몇 가지 조건을 말하고 이 조건을 수락하자 초봉은 딸과 함께 한집에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생활도 오래가지 못하고 장형보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초봉은 그를 살해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한편 계봉은 남승재와 함께 언니를 구해 내고자 초봉의 집을 찾아가지만 살인 사건이 일어난 뒤로 둘은 초봉을 설득해 자수하게 만든다.’는 내용이 ‘탁류’의 줄거리다.

장편소설 ‘탁류’의 작가 채만식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1914년 임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8년 경성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 은선흥과 결혼했으며,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 부속 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다. 1924년 경기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하고, <조선문단>에 ‘세 길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25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이듬해에 그만두고 고향에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에 심취하며 문학 수업에 전념했다. ‘레디메이드 인생(1934)’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문예 활동을 펼치다 카프 2차 사건이 발생하자 잠시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1936년 개성으로 옮겨가 본격적인 전업 작가 생활에 들어간 뒤 ‘탁류’와 ‘태평천하’ 등을 써내면서 당대 문단의 중진 작가로 인정받았다. 일제 말기에 귀경과 낙향을 반복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집필 활동에 전념해 주옥같은 해방기의 명 작품을 남겼으며, 1950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탁류’에서 ‘군산’이 차지하는 의미가 절대적이듯, 지금 군산에서는 ‘채만식과 탁류, 일제강점기 근대문화유산’이 군산시민과 많은 국민에게 식민지시대 고통과 절망만큼이나 절대적 가치와 의미로 역사와 민중을 올곧이 잇고 있다. 군산에서는 소설 ‘탁류’와 관련된 곳에 표지석이나 동상, 기념물 등을 세우면서 배경도시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군산을 온통 ‘탁류’의 도시로 알리고 있다. 2001년에는 소설 ‘탁류’에 묘사된 금강의 강변에 ‘채만식문학관’을 지었다.

1937~38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채만식의 대표 장편소설 ‘탁류’는 일제 치하, 고통의 식민지하에서 우리 민족의 삶을 예리한 풍자와 냉소로 그려낸 대표적 작품이다. 비련의 여주인공 초봉을 중심으로 딸을 팔아 장사 밑천을 삼는 정주사 내외, 은행에 근무하는 사기꾼이며 호색인 고태수, 인간말종 장형보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의 삶과 멸망이 항구도시 군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엄청난 세태의 걷잡을 수 없는 탁류에 휘말려가는 한 여인의 생애를 통해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사회상을 보여주며 몰락해가는 중농의 모습을 통해 처절한 식민지의 현실을 풍자한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1916년 개성에서 거주할 때의 채만식.
째보선창 주변 어판장(1930년대). 군산시 제공.
백릉 채만식선생 문학비.
군산 탁류,미두장.
정주사 집터.
장항에서 본 금강.
채만식 소설비.
탁류, 군산 선양동 정주사 집터.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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