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준 선생의 숨결이 깃든 땅에서 전통춤의 맥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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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 선생의 숨결이 깃든 땅에서 전통춤의 맥을 잇다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5.07.31 07:14
  • 호수 902호 (2025년 07월 31일)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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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몸짓, 춤의 본향에서 다시 깨어나다

김연정 이애주승무보존회장 인터뷰

‘법열곡 2025’ 무대에서, 김연정 회장을 비롯한 승무전수자·이수자들.

[홍주일보 이정은 기자] 한국 전통춤의 대가 이애주 선생의 이름을 딴 ‘이애주 춤 전수관’이 과천에서 홍성으로 자리를 옮기며 지난 11일 개소식을 가졌다. 이는 한국 근대무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명고명무(名鼓名舞) 한성준 선생의 정신이 다시 피어나는, 공간으로서의 상징적 귀환이다. 전수관의 새출발을 이끄는 이애주한국전통춤회(회장 윤영옥), 이애주승무보존회(회장 김연정), 한성준춤·소리연구소(소장 임진택)는 춤으로 말하고 전통으로 호흡하며 이 땅 위에 다시금 춤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21일 김연정 이애주승무보존회장을 만나 전통춤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의 스승인 故 이애주 선생의 예술세계에 대해 질문했다. 나아가 이애주 춤 전수관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 전통과 사상이 담긴 몸짓, ‘춤’
이애주한국전통춤회의 뿌리는 1991년, 전통춤의 거목 한영숙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자였던 이애주 선생은 전통춤의 맥을 잇고자 ‘전통춤연구회’를 창립했고, 이는 오늘날 ‘이애주한국전통춤회’로 이어졌다. 이애주 선생이 타계한 이후, 그의 제자들은 스승이 평생 탐구해 온 전통춤의 정신과 철학 계승을 다짐하며, 기존의 이름에 ‘이애주’ 세 글자를 더한 것이다.
이애주 선생은 춤을 단지 형식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전통춤이란 철학과 삶의 방식 그리고 시대정신까지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그는 평생의 화두로 ‘우리 삶에 진정 어울리는 몸짓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붙들었다. 전통적인 몸의 움직임에서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사유를 읽어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현대와 연결하려 했다. 그에게 춤이란 사라지지 않는 언어이자 시대와 교감하는 몸의 문장이었다. 특히 1970~80년대의 정치적 격변기에도 이애주 선생은 춤을 통해 시대의 아픔과 질문에 응답했다. 
이런 정신은 오늘날 이애주한국전통춤회를 이끄는 제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김연정 회장은 “과거의 양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를 되묻고 그것이 오늘날 ‘어떻게 살아 있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이애주한국전통춤회가 걸어가는 길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들의 길은 과거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과거와 오늘을 잇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살아 있는 여정이다.
 

지난 21일 ‘이애주 춤 전수관’에서 만난 김연정 이애주승무보존회장.

■ 춤의 본향에서 새롭게 피어나다
“내 춤의 뿌리는, 춤의 본향은 홍성이다.”
이애주 선생은 생전 이렇게 말하곤 했다. 김연정 회장은 홍성으로 터를 옮긴 데 있어 “이 선택은 전통춤의 역사적 흐름을 회복하는 일이자 춤의 정신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와 조선을 거쳐 몸에서 몸으로 전해져 온 우리의 전통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큰 위기를 맞았다. 한성준 선생은 이 혼란 속에서도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며 무대예술로서의 전통춤을 정립하고 체계화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춤을 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을 담은 그릇으로 바라보았고, 이를 지켜낼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때문에 이애주 선생은 한성준 선생의 고향인 홍성을 ‘춤의 본향’으로 여겼다.  홍성을 찾아 전통춤을 보급하고 ‘춤학교’를 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그의 제자들이 뜻을 이어받아 이 땅에서 본격적으로 전통춤의 역사를 잇고자 한다.
김연정 회장은 말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전통예술, 그 전통성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홍성은 분명히 핵심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을 춤의 도시, 더 나아가 K-전통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이미 한국무용계에선 ‘홍성’을 춤의 뿌리가 살아있는 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애주 춤 전수관의 행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이애주 선생이 남긴 예술 유산
이애주 선생은 제자들에게 “춤은 삶의 몸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삶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몸짓이 달라지고, 정신의 깊이에 따라 춤의 결이 달라진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의 제자들은 지금도 질문한다. ‘나는 얼마나 깨어 있는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몸짓은 내 삶의 진실한 흔적인가?’
김연정 회장에 따르면 이애주 선생은 승무라는 전통춤에 담긴 철학을 깊이 파고들며, 한국 전통춤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춤에 우리 민족의 역사성과 동양철학,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 낸 예술가였다. 특히 춤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열었고, 춤은 ‘정신이 살아 있는 몸의 언어’임을 강조했다.
전통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서양 무용이 중력을 거슬러 오르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 동작이 많은 반면, 우리 춤은 ‘어떻게 땅과 조화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낮추고,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동작들 속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함께 살아온 우리 민족의 지혜가 녹아 있다.
또한 우리의 전통춤은 곡선의 미학을 중요하게 여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법고(法鼓)에 새겨진 태극의 물결처럼, 춤사위는 언제나 부드러운 곡선으로 흐르며 이어진다. 불필요한 힘을 덜어내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내면의 힘, 그것을 곧 춤의 본질로 보았다.
이러한 철학은 춤을 추는 태도로 연결된다. 외형적 화려함보다는 유연한 마음가짐과 자연에 순응하는 내면의 조화, 이는 이애주 선생이 평생 강조한 예술의 자세였다.
김연정 회장은 “저희 제자들은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며,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이 시대의 삶과 연결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시대에 전통춤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전통춤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 훈련된 이들만의 영역이라는 고정적 관점이 있다. 하지만 김연정 회장은 그 생각을 부드럽게 흔들어 놓는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춤출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어린아이 때는 그게 자연스럽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화될수록 점점 그 본능을 잊어버리게 되죠. 우리는 그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깨우고 싶습니다.”
이애주문화재단(이사장 유홍준)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홍성에서 ‘한성준춤학교’를 다시 열고자 하는 것이다. 1980년 이애주 선생이 홍성에서 춤학교를 열었듯, 이번에도 일반 대중 누구나 몸을 움직이고 춤을 접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구상 중이다.
또한 ‘한성준춤소리예술제’를 통해 한성준춤의 후예들과 함께 무대를 나눌 계획이다. 전국의 전통춤 이수자들과 젊은 세대의 무용인들을 초청해 공연을 통한 교류와 확산의 장을 여는 것이다. 이애주 춤 전수관은 김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 다수가 현직 무용가이자 교육자이며, 승무 이수자들로 구성돼 있어 전통춤을 널리 알릴 기반은 이미 갖춰져 있다. 이렇듯 이애주 춤 전수관은 무대 위의 실천과 무대 밖의 교육, 두 영역을 넘나들며 전통춤을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전달할 계획이다.
오는 8월에는 1일과 2일 양일간, 이애주 춤 전수관에서 김연정 회장의 승무 특강이 펼쳐진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이번 특강에서는 승무에 대한 이론적 이해와 장단, 기본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춤전공자 또는 일반인 등 승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문의는 041-631-5385, 010-6420-5351로 하면 된다.
“전통춤의 정신이 깃든 고장이 바로 홍성이라는 사실에 지역민들께서 자긍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지역민과 전국민 나아가 외국인들까지도 ‘한국의 깊이 있는 춤을 보려면 홍성에 가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전통춤 전용 극장도 생기고, 소리와 연희 같은 전통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된다면 ‘전통예술 도시 홍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가 그 길을 잘 꾸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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