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외산 ‘반교마을 돌담·돌담길’ 충청도 유일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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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외산 ‘반교마을 돌담·돌담길’ 충청도 유일의 문화재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5.09.18 07:16
  • 호수 909호 (2025년 09월 18일)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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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외산면 반교마을의 밭담 풍경.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마을은 반교천과 아미산 사이 배산임수의 작은 산촌마을이다. 1687년 나주 정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이 마을은 옛날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골, 돌이 많아서 도팍골(돌팍골) 이라고도 불렸으며, 널판을 다리로 쓰는 마을이라 해서 ‘판교(板橋)’라고 불리다가 ‘반교(盤橋)’로 변한 지명이 자리 잡은 동네. 이 마을에는 문화재로 등록된 돌담길이 있다.

국내의 문화재로 등록된 돌담길 대부분은 경상도와 전라도에 분포해 있다. 충청도에서는 돌담길 문화재(국가등록문화유산)가 있는 곳은 이곳 ‘부여 외산면 반교마을’뿐이다. 이웃한 공주 ‘상신마을’에도 아름다운 돌담길이 있지만 말이다. 

충청도의 자연석 강돌담을 만날 수 있는 곳, 이곳 부여군은 서북이 높고 남동이 낮다고 한다. 낮은 땅에는 강이 흐르기 마련인데, 부여군의 남쪽은 이른바 금강이 흐르는 축복받은 지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부여는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기도 하다. 반면에 부여군의 서북쪽은 늘씬한 산하가 미소를 짓고 있는 곳이라고 불린다. 차령산맥이 낳은 아미산의 늘씬한 자태가 마을 너머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이 바로 부여 외산면의 반교마을이다. 나주 정씨가 이곳에 정착했을 당시에도 그랬을까. 척박한 땅을 일군 선조들에게는 조금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반교마을 초입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연석 강돌로 쌓아 올린 강돌담이 보인다. 이 돌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가는 반교마을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널판 위에서 걷는 듯 다리를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금방 눈치를 채게 된다. 돌담이 있는 마을을 가게 되면 경사 높은 산사면 또는 깊은 골짜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 강도가 더욱 세기도 하다. 마을에 들어서자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산자락을 감싸고도는 골바람이 거칠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이 마을 돌담의 용도는 우선 방풍용이라는 것도 눈치챈다. 집과 돌담 사이의 간격이 좁고 높이도 가슴높이로, 또는 집을 지으면서 지붕 처마에 닿을 정도로 높은 돌담도 보인다. 경사진 땅에 집을 짓기 전 돌을 깔아 수평을 잡은 축대의 모습도 눈에 띈다. 척박한 땅에서 돌을 골라내 여러 용도로 쓴 마을 개척민의 수고가 느껴진다. 밭에는 밭담도 보인다.

■ 반교마을 돌담, 메쌓기 방식으로 쌓아
반교마을의 돌담은 돌만으로 쌓은 것도 있고 돌과 흙을 같이 섞어 쌓은 담도 가끔 눈에 띈다. 한번 허물어진 적이 있는지 부분적으로 시멘트가 발라진 돌담도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신석기, 구석기의 유물의 경우 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로는 이해된다고 하지만 가슴을 때리는 그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현장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돌담길에서는 살아있는 삶의 흔적이랄까, 자연과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산촌마을의 돌담에서 아득하면서도 생생한 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반교마을의 돌담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건성쌓기 또는 메쌓기라는 방식으로 쌓았다. 말처럼 건성건성 쌓은 듯 보이지만 나름의 방법과 규칙이 있다. 큰 돌을 지대석으로 사용해 두 줄 깔고 점점 작은 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도 규칙이다. 돌담을 쌓으면서 돌과 돌 사이 또는 가운데에는 자잘한 돌과 흙 등을 넣으면서 속을 채워 공간을 메우는 방식이다.

자연석 막돌인 호박돌로 쌓은 반교마을의 옛 돌담은 어쩌면 사실 특별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돌담이다. 마을의 밭이나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막돌인 호박돌을 이용해 쌓은 돌담이다. 호박돌이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돌을 말하는데, 이런 호박돌은 마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돌을 이용해 길을 따라 늘어선 담장이 이렇게 아름다운 토속적 내음이 풍기는 경치를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담장은 밑의 폭이 90cm 정도로 조금은 넓고, 위로 쌓으면서는 60cm 정도의 폭으로 조금은 좁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추며 안정감을 주고 있다. 초입에는 옛 돌담의 축대가 무너질 것을 대비했는지, 시멘트로 발라 놓은 곳도 있다. 축대를 쌓거나 밭담을 쌓을 때도 역시 막돌을 이용해 쌓았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돌아보니 강돌로만 담을 쌓은 곳이 많다. 흙 한 덩이 이용하지 않고 강돌로만 쌓아 올린 담이, 이렇게 견고하게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또한 돌담을 사람의 가슴높이를 넘나들며 키 높이를 넘지 않게 쌓아 올려 집안의 풍경도 볼 수 있도록 소통의 의미를 담은 옛사람들의 지혜와 미학을 엿볼 수도 있는 ‘돌담’이다.

이렇게 많은 돌의 근원도 궁금해진다. 부여군의 서북쪽 산지의 특징은 암괴류와 암괴원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차령산맥은 충북에서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낮은 맥을 유지하다가 바다에 이르기 직전에 높아지는데 이 지점이 반교마을과 가깝다는 설명이다. 충청도의 유일한 돌담길 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제280호)가 이곳에 있는 이유와도 상통하는 얘기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관리하고 있는 ‘부여 반교마을 옛 담장’은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지정된 돌담길 등록문화재이다.

■ 충청도의 유일의 돌담·돌담길 문화재
부여 반교마을의 돌담과 돌담길은 충청도에서 아산의 외암마을 돌담·돌담길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충남의 문화유산이자 우리나라의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이다.

반교마을은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등록문화재 제280호(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돼 관리하고 있는 ‘부여 반교마을 옛 담장’은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지정된 돌담길 문화재이다.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석 막돌인 호박돌을 사용해 쌓은 이 담장들은 하부가 90cm 정도로 조금은 넓고,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져 안정감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길이가 2500m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래된 마을이 몸이라면 오래된 담은 마을의 얼굴일 수 있다. 집의 구성요소 중에 제일 바깥에 자리 잡아 바깥세상을 보고 듣고 바깥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게 담이다. 너와 나 사이에 담이 존재하지만 담은 벽이 아니라 서로 등을 대고 기댈 수 있는 의지와 협력, 소통의 등받이기도 하다. 서로가 등을 맞댄 사이에는 언제나 공간이 존재하듯 벽은 선이지만 담은 공간이기 때문에 언제나 공간에는 그 어떠한 관계가 존재한다.

오래된 옛 담장은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마을 공동체 사람들의 삶의 세월이 쌓인 징표다. 주름살은 세월의 자국이고, 그 자국이 사람마다 다르듯 마을마다 역사와 문화, 생활방식이 조금은 다르다. 그렇듯 담장의 모양이나 쌓은 방식과 맛은 서로 조금씩은 다를지라도 말이다. 삶의 세월이 쌓인 것이니 향토적 서정이 그만큼 더 깊을 수밖에. 삶의 세월이 쌓여 농익은 맛이 나는 단순하고도 소박한 아름다움 이상의 미학이 그렇게 담겨있다. 소통을 할 수 있는 높이의 담장을 쌓은 지혜로움을 느낄 수 있기에 더 그렇다. 담장의 높이는 조금씩은 다르지만, 길가에 쌓은 담장의 높이는 어른들의 키보다는 낮게 쌓았다. 담장 너머로 울안이 들여다보이고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담장을 어른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쌓은 것은 소통을 위한 아주 편리한 방편일 수 있다. 어쩌면 양반가의 담장들이 폐쇄적이라면, 민초들의 담장은 누구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조금은 낮게 쌓지 않았을까. 이것이 바로 민가의 담장이 보여주는 멋과 삶의 미학이 아닐까.

부여 반교돌담마을의 한쪽 터전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휴휴당(休休堂)’이 낮은 돌담에 감싸여 자리하고 있는 모습에 반교돌담마을에 마을공동체의 의미를 더하고 있는 듯하다.

오래된 마을은, 그래서 거짓 없는 진실이 통하고 위계와 위선이 발붙이지 못하는 곳이 아닐까. 끈끈한 공동체의 삶이 살아 숨 쉬고 핏줄과 이웃들의 정이 쌓아 올린 돌담처럼 얽혀 그 무엇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그런 곳이 아닐까. 강자만이 살아남는 부질없는 그런 세상의 너머에 있는 돌담 사이로 서로 소통하면서 소중하게 보듬고 다정하게 정을 나누는 곳, 마을 사람들의 끈끈한 정과 배려, 세월이 쌓아 올린 옛 담장이 쌓인 곳, 그런 삶의 공동체, 돌담이 가지런하게 쌓여 마을을 감싸고 도는 동네, 그곳이 바로 충청도 부여의 반교마을 같은 곳이 그렇지 않을까. 세월의 흐름은 역사를 타고 흐른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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