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품은 마을의 기억과 향기, 논산의 고택과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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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품은 마을의 기억과 향기, 논산의 고택과 돌담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5.10.02 07:14
  • 호수 911호 (2025년 10월 02일)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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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문화유산 재발견, 옛담의 미학-돌담이 아름다운 마을〈13〉
논산 상월면 상도1리마을의 돌담 모습. 자연석 강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적이다.

충청남도 논산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전통 유교문화가 뿌리 깊게 내려온 지역이다. 이곳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지켜온 고택들과 돌담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기품을 보여주는 종택에서부터 평범한 농촌 마을의 농가들까지, 고택과 돌담은 단순히 옛 건물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을 담은 ‘살아있는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논산의 고택들은 대체로 남향 배치를 따르며, 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안채·행랑채가 둘러선 전형적인 전통한옥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건축양식이 아니라 풍수적 지혜와 공동체적 삶의 생활방식이 반영된 결과다.

논산지역의 고택이나 서원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흙돌담이나 토석담 등이다. 규격화되지 않은 자연석 강돌을 황토 진흙과 섞어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담장은 소박하면서도 묵직한 멋을 지니고 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기와지붕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이곳의 돌담이나 토석담은 단순히 경계를 나누는 구조물이 아니라 세월과 사람의 손길이 고스란히 스며든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부 돌담은 이끼와 잡초가 어우러져 마을 사람들의 삶의 세월을 증언하고 있으며, 또 다른 담장은 정갈히 정비돼 현재까지 주민들의 생활과 이어지고 있는 문화유산으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논산 시내를 비롯해 연무읍, 강경읍, 노성면, 상월면, 연산면과 가야곡면, 부적면 일대에는 명재 고택, 돈암서원 등 비교적 잘 보존된 고택과 서원의 돌담길이 많다. 특히 오래된 향교나 종택, 서원 주변에서는 고택과 돌담이 조화를 이루며 마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돌담길을 따라 산책하거나, 여름이면 담장 너머로 흐드러지는 꽃과 나무를 감상하며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의 정과 정신을 이어가며, 돌담과 돌담길은 삶 속에서 벗이 되고 있다.

■토석담·돌담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마을
세도가와 부농이 모여 살아 인물이 많이 난 마을로 알려진 논산지역의 마을에는 돌담과 토석담이 전형적인 농촌의 전통한옥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논산지역의 마을에 있는 옛 담장은 아름다움과 보존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논산지역에서 쌓은 돌담은 아래에 큰 돌을 이용해 60~90cm 정도 메쌓기를 한 후 그 위에 좀 더 작은 자연석 강돌과 황토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린 것이 특징적이다. 논산지역은 예로부터 ‘황산벌’이라 불리듯 황토가 많이 나는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흙돌담의 위쪽에는 기와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넓고 평평한 돌을 담장 안팎으로 6~7cm 정도 나오게 쌓은 후, 그 위에 기와를 올려 마감을 했다. 담장의 높이는 2m 정도이나 사람의 키를 못 미칠 정도로 쌓아 올려 사람이 지나가거나 말을 타고 가도 집안을 일정 부분 볼 수 있도록 쌓았다. 

돌담은 전형적인 부농의 주거 형태이다. 논산지역엔 고택도, 서당도 많이 남아 있고, 유교 정신이 면면히 살아 흐르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꼭 양반집이 아니더라도 서민들의 농가에도 자연석 강돌과 흙으로 쌓은 담장이 집안을 잘 둘러싸고 있다. 옛 성터와 돌담길을 걷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숨결과 삶을 함께 느끼는 여행이기도 하다. 담장과 벽의 돌 사이로 스며든 세월, 돌담 위로 고개를 내민 들꽃, 그 길을 걷는 현재의 나까지, 이 모든 것이 논산지역의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돌담은 단순한 ‘벽’이 아니다. 돌담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울타리이자,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생활의 흔적이다. 돌담을 쌓는 방식만 보아도 그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돌담은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구멍을 내어 바람이 빠져나가도록 만들고, 경상도의 돌담은 단단하게 맞물려 외부의 시선을 막는다. 특히 돌담길은 사계절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봄에는 담 너머로 매화와 살구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이 짙은 초록빛을 드리운다.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잎이 돌담 위에 흩날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포근하게 덮힌 모습이 아름답다. 이 변화무쌍한 모습은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영감을, 여행자에게는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한다. 논산지역에서는 고택과 서원, 농촌 마을의 어귀나 오래된 골목길에서도 의외의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돌담길은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이며, 문화이자 사람들의 살아온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살아있는 생활의 교과서다. 논산의 고택과 서원, 서민 농가의 돌담은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유물이 아니라, 그 속에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기억,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지혜와 향기가 담겨 있는 삶의 미학이다. 

■상월 상도1리, 석종리마을 돌담 잘 보존
논산지역의 돌담은 흙과 돌로 쌓은 토석담으로 농산촌지역 마을의 전형적인 돌담이다. 돌이 많은 바닷가라면 돌담을 쌓았겠지만 이곳 돌담은 밭을 일구거나 냇가에서 구한 돌과 산과 들에서 퍼온 황토로 적당히 반죽해 토석담 등을 쌓은 것이 특징적이다. 토담이든 돌담이든 마을에 들어오면 마을담이다. 담과 담이 서로 어깨를 나누어 골목이 되고 골목이 이어져 마을 길이 됐다. 논산지역에는 고택과 서당, 향교 등에는 강돌과 황토흙을 교대로 쌓아 올리고 기와를 올린 흙돌담이 많고, 계룡산 기슭에 감싸인 마을에는 밭이나 계곡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석 강돌로 쌓은 돌담이 많은 것이 특징적이다. 계룡산 자락의 마을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하천도 많다. 계곡과 하천에도 돌로 축대를 쌓은 곳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러한 계곡이나 하천들은 대부분 계룡산 갑사 계곡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고, 계룡산맥의 연천봉, 향적산, 국사봉 등지에서 흘러내리는 경천천, 대촌천, 대명천, 주천을 지류로 하면서 상월면, 노성면 일대에 젖줄을 형성하고 있다.

논산 상월면은 본래 노성군의 지역으로 노성천(魯城川)을 따라 내려오는 큰길을 위아래로 나눠 위쪽을 상도(上道)라 하고, 아래쪽을 하도(下道)라 했다. 또 노성군 상도면(上道面)으로 후동(後洞), 대명동(大明洞), 대우(大牛), 소우(小牛), 안산(棧 山), 신평(新坪), 궁동(弓洞), 촌산(村山), 반곡(反谷), 무동(舞洞), 와야(瓦也), 석전(石田), 만화(萬化), 지경(地境), 산직(山直)의 19개 리를 관할했다. 상월면 상도리(上道里)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리(上里)와 수정리(水井里) 일부를 병합, 상도리(上道里)라 해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됐다. 상월 상도리 마을은 계룡산의 품 안에 감싸여 있는 상도1, 2, 3리 마을이 행정리로 구성돼 있고, 자연마을은 박살미, 바리바위, 쇠점, 수정골, 왯골, 용동 등이 있다. 계룡산 자락의 마을들이다.

논산 상월면 상도1리 마을의 안쪽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룡산 자락에 있는 이 마을의 길가에는 오래된 돌담으로 쌓여 있는 집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상도리 마을에서 상월면 소재지로 향하다 만나는 석종리(石宗里) 마을은 노성군 상도면(上道面)의 지역으로 돌이 많아서 돌마루, 또는 석종(石宗)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전리(石田리), 대명동(大明洞)의 각 일부와 공주군 익구곡면(益口谷面)의 양화리(陽化里) 일부와 가척리(加尺里)를 병합해 석종리(石宗里)라 하고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됐다. 석종1, 2, 3리의 행정리가 있으며, 자연마을은 가재울, 돌마루, 돌뿌니, 산직말, 상촌, 주내 등이 있다. 이 마을에는 자연석 강돌로 쌓은 돌담도 많이 보이지만 일부는 큰 강돌을 다듬어 작은 강돌과 맞춰 쌓은 돌담도 간혹 보인다. 사람의 허리 높이쯤 돌담을 쌓았다. 

논산의 연무읍 안심8리 개태골한옥마을, 상월면 상도1리마을, 석종리마을 등의 돌담마을은 토석담과 돌담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마을들이다. 옛 담장은 황토흙 다짐에 주변이나 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석 강돌을 박은 형식인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며, 자연석 강돌로 돌담을 쌓은 돌담마을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이나 곡선으로 구성돼 있어 질서 정연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전통가옥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들고 있는 돌담길은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우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인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네 삶 속에서의 생활문화유산이다.

논산지역의 마을에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 내력을 이어오는 고택과 서원 등에는 토석담과 돌담이 많다. 하지만 이들 고택보다도 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고샅길이다. 이곳 고샅길의 담장은 황토흙과 자연석 강돌을 섞어서 쌓은 죽담이다. 황토흙 사이사이에 크기, 색깔,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석을 군데군데 박아 쌓았다. 그래서인지 언뜻 무질서해 보일 수도 있지만, 현대적 감각으로는 감히 흉내조차 어려울 만큼 멋스럽고 자연미가 넘쳐나는 돌담이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돌담에는 이끼와 잡초가 어우러져 마을의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인정이 살아있는 전통마을에 사는 사람들답게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공동체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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