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
칼럼·독자위원
올해는 유독 바깥일이 많다. 사정상 반은 농부로, 반은 다른 일을 하며 지내는 탓에 해마다 조금씩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올해 농사는 가히 망했다고 할만하다. 여기저기 다니며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도 잠시, 논밭을 가보면 봄부터 가을까지 제대로 되는 것이 없으니 매번 일상에서 패배감을 느끼기 일쑤다. 우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올가을 날씨는 이런 상황을 악화시켜 김장 농사는 물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벼마저 물속으로 수장시키는 중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문, 현수막, SNS에서는 축제 홍보가 한창이다. 누군가 가을을 축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전국의 축제 일정을 모아놓은 웹사이트를 확인해 보니, 확실히 10월에는 압도적으로 축제가 많다. 매일 평균 31개의 축제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지경이다. 특히 10월 18일에는 무려 57개의 축제가 열렸다.
왜 축제하기 좋은 날은 일하기도 좋은지, 번번이 놀러 다니기 좋은 시기마다 일을 해야 했던 내가 《전국축제자랑》이라는 책을 집어 든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저자인 김혼비·박태하는 전국의 다양한 축제 중 12개를 엄선했다. 그리고 전작들에서 보여준 입심을 살려 “황당(왜 저래?)과 납득(왜 저런지 알겠어!)이 엉켜들고, 수긍(저럴 수밖에 없겠네.)과 반발(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과 포기(그러든지……)와 응원(이왕 이렇게 된 거!)이 버무려진”(8쪽) 생생한 K-축제 여행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분명 두 저자의 예리하면서도 시원한 유머는 어지간히 근엄한 사람이 아니라면 두세 페이지에 한 번씩은 웃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정신없이 웃으며 책을 덮은 후 떠오른 감정은 의외로 무겁다. 책의 말미에 적혀 있듯, 화려한 축제 현장을 나와 마주한 ‘읍내’ 혹은 ‘구도심’에는 정겨움보다 스산함이 더 크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그 많은 축제가 쇠퇴해 가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관심을 끌어보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저자는 이를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지방 중소 도시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다들 하는 마당에 안 할 수도 없어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뽑아내야 할 숙제 같은 것”(289쪽)이라고 정의한다. 책에서는 그러한 지자체의 사정과 축제를 위해 애쓰는 주민들의 열정을 응원하지만, 정작 지역 소도시의 주민인 나는 우리 지역이 겹쳐 보여 마음이 무거워진다.
홍성에는 글로벌바비큐페스티벌, 남당항 축제가 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관광객을 위해 서부면에는 스카이타워와 골프장을, 홍북읍 용봉산에는 모노레일을, 홍성읍에는 양반마을을 조성하고 있지 않냐고, 혹자는 반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공적인 축제’와 ‘관광 명소’가 지역민의 좋은 삶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5년(2019~2024) 사이 지역축제는 32%가량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지역 주민들의 지역축제 참가율은 10%가량 감소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를 지역 주민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외면하는 것이 주민만일까. 홍성군은 올해도 축제와 관광에 진심이다. 10억 원 이상이 드는 글로벌바비큐페스티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스카이타워와 스카이브릿지에 131억 원, 홍주읍성 일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복원 사업에 538억 원, 용봉산 개발에 1200억 원을 사용했거나 사용할 계획이다. 이 많은 돈이 투입될 사업들은 홍성군민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하루 이틀 홍성을 방문할 이들을 위한 것인가. 혹은 지역 정치인, 개발업자, 컨설턴트와 같은 일부 소수를 위한 것인가.
지역의 위기를 말하며 인구 감소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뜻밖의 사실이 있다. 지난 10년간 대부분 지역에서 인구가 감소하는 사이 예산은 94.3%나 증가했다. 그리고 이는 작은 지자체일수록 1인당 예산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2025년 주민 1인당 예산이 가장 큰 경북 영양군은 1년에 주민 1명에게 산술적으로 2400만 원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도시는 1인당 예산이 매우 적다. 예로 서울 송파구는 1년에 주민 1인당 예산이 180만 원 수준이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서도 우리 지역은 인구가 적은 대신 주민 한 명에게 쓸 수 있는 돈도 많고, 그만큼 주민을 더 신경써 줘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바라건대 이 책의 후속편은 방문객을 위한 축제, ‘K’로 뭉뚱그려지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주인과 손님이 돼 즐기는 진짜 ‘지역’ 축제 자랑 이야기가 듣고 싶다. 각 지역이 관광객 유치, 축제 흥행처럼 지역 밖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주민들의 삶을 살피길 바라는 마음이 샘솟는 책, 《전국축제자랑》을 추천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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