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백산맥’의 배경도시, 전남 여수·순천·보성 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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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의 배경도시, 전남 여수·순천·보성 벌교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5.11.27 07:08
  • 호수 918호 (2025년 11월 27일)
  •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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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해방공간 문학의 배경도시, 역사·문화관광 로컬 브랜드로 〈6〉
전남 보성 벌교천 홍교에서 바라본 태백산맥 배경지. 지주인 김범우가 소작인들의 농사일을 감시했던 봉림리 집이 있는 곳이 앞 동네다. 

소설 ‘태백산맥’은 해방 후(1945~1948년) 혼란과 갈등을 그리고 있다
전남 여수·순천을 비롯 보성 벌교읍 일대,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
일제강점기 일본인 중도가 벌교 철다리 개펄, 방죽 쌓아 간척지 개간
‘소화다리’는 소설 속의 좌익과 우익 서로 간에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좌우 이념 대립과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전라남도 여수·순천과 보성의 벌교지역이며, 총 10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소설은 1948년 10월 여순사건(여수·순천 반란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 전후의 혼란스러운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한국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됐으며, 좌익과 우익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의 실상을 담았다.

한동안 ‘여순 반란 사건’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여수와 순천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여수·순천 주민들은 반란군과 진압군에 의해 무고한 학살을 당했다. 지금은 ‘여순사건’으로 정리됐지만 여수와 순천, 두 도시에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 내 ‘남로당 계열의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벌교를 장악했다.

당시 제주 4·3 사건의 일부 진압 임무를 하달받은 여수에 주둔하던 조선국방경비대 제14연대의 좌익 군인들이 ‘동족상잔’이라며 지휘관을 사살하고 장병들을 선동한 것에서 시작됐다. 그날로부터 무려 74년이 지난 2022년 10월 정부가 처음으로 여순 사건의 사망자 마흔다섯 명을 희생자로 인정했다. 여순 사건은 해방 이후,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단순한 이념 대립을 넘어, 한반도의 현실과 민중의 고통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좌익과 우익을 모두 비판하며, 이념보다 인간의 삶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소설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사실성과 리얼리즘이 강한 작품이며, 민중의 시각에서 시대를 조명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념의 광풍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고민을 오롯하게 담아낸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언제 떠올랐을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 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히 퍼진 것 같은 미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태백산맥 제1부 한의 모닥불 중에서-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태백산맥’은 앞으로 전개되고 펼쳐질 비극적 상황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는듯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염상진은 지주에게 착취당하던 가난한 소작농 출신으로 해방 후 공산주의를 신봉하며 좌익 세력이 된다. 또한 연봉구는 경찰  출신으로 반공주의자로 활동하며 우익 세력의 핵심 인물이다. 김범우는 서울대 출신 지식인으로 부모는 우익이지만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한편 소화는 기생 출신으로 염상진을 사랑하며 좌익 활동에 깊이 연루된다. 또 하대치는 마을 유지로서 이념보다는 현실적인 생존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소설 ‘태백산맥’은 해방 후(1945~1948년)의 혼란과 갈등을 그리고 있는데, 일제에서 해방됐지만 친일파가 다시 권력을 잡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지주와 친일 경찰들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며 민중을 탄압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농민과 노동자들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염상진은 공산주의 세력에 합류하고, 연봉구는 경찰이 돼 서로 적대적 관계가 형성된다. 김범우는 서울에서 돌아와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며 좌우 사상을 비교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대체적인 흐름으로 형성된다.

1948년 여순사건의 발단은 제주 4·3 사건 이후, 정부의 강경 진압이 계속되면서 남로당(공산주의 세력)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다. 결과적으로 군대 내 좌익 성향이 강했던 일부 군인들이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켜,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면서 여순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염상진과 소화 등 좌익 세력은 이에 동조해 활동을 시작하지만 정부군이 반란을 진압하며 좌익 세력을 대거 학살한다. 마을에서도 좌익과 우익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김범우는 이념의 혼란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군이 남하하고, 좌익 세력은 반격의 기회를 얻게된다. 염상진과 좌익 세력은 인민군을 지원하지만, 전세가 뒤집히며 다시 탄압을 받게 되고 정부는 좌익과 연관된 인물들을 색출해 무차별적으로 처형한다. 연봉구는 경찰로서 숙청 작업에 앞장서며 많은 사람을 학살하는데, 소화는 체포돼 고문당한 후 죽음을 맞이하고, 염상진 역시 끝까지 저항하다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김범우는 끝없는 이념 전쟁 속에서 회의를 느끼고, 결국 고향을 떠나 유랑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전쟁이 끝났지만, 마을은 폐허가 되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면서 생존자들은 가족을 잃고, 이념의 대립 속에서 상처만 남게 된다. 이처럼 소설 ‘태백산맥’은 “누가 옳았는가?”가 아니라 ‘이념이란 무엇이며,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물으며 결말을 맺는다.

■ 뗏목으로 연결한 다리 ‘벌교(筏橋)’
전라도 보성의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다. 벌교 읍내에는 철다리(鐵橋)를 비롯해 소화다리, 중도방죽, 남도여관, 현부잣집, 김범우집 등이 소설 속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작품 구절을 떠올리며 소설 속 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소설의 감동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 중에서 ‘철다리’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빨치산 대장인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제일의 주먹이던 땅벌을 제압하고자 스스로의 담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차가 올 때까지 오래 버티는 담력 결투를 벌였던 곳으로 아직도 소설 속 모습 그대로다. 

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인 이 다리는 1970년대까지 홍교, 소화다리(부용교)와 함께 벌교 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3개의 다리 가운데 하나였다. ‘소화다리’의 원래 이름은 ‘부용교’인데, 소설 속의 좌익과 우익 서로 간에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로 밀물 때면 여기까지 올라온 바닷물이 온통 피바다였다는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난간이 없는 탓에 처형할 사람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방아쇠를 당기면 시체가 그대로 벌교천으로 떨어졌고, 물 위로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고 한다. 소설은 당시의 학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 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

또 무지개 모양을 닮은 ‘홍교(虹橋·보물 304호)’는 원래 이름이 ‘뗏목으로 연결한 다리’라는 뜻의 ‘벌교(筏橋)’였다. ‘벌교’라는 마을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 소설 속의 이곳은 지주인 김범우가 소작인들의 농사일을 감시했던 벌교읍 봉림리 자택에서 농토로 연결된 다리로 ‘설을 쇠라’며 쌀을 쌓아두던, 빨치산과 토벌군 간 심리전을 벌이던 곳이다. 

양심적 지주로 그려진 김사용과 아들인 ‘고뇌하는 지식인’ 김범우의 집, 병원 원장이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인술을 펼친 ‘자애병원’이 있던 ‘벌교어린이집’과 토벌대가 머문 곳으로 왜색 건물 그대로인 남도여관, 마을 지주인 현준배의 집이자 소화와 정하섭이 사랑을 나눴던 ‘현부잣집’이 우뚝하고 야학이 열렸던 회정리 교회 등을 통해 우리 근대사를 관통했던 질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이렇듯 전남 여수·순천을 비롯해 특히 보성 벌교읍 일대는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이며 배경 도시다.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벌교금융조합.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남도여관.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벌교철다리.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채동선 생가.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
전남 보성 벌교 홍교에서 본 벌교천.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홍교.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현부자네 집.
전남 보성 벌교 조정래태백산맥문학관.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소화다리.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문학공원.
전남 보성 벌교 태백산맥 문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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