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
기후시민팀 연구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달력의 숫자는 줄어드는데, 정작 동네 풍경은 조용하기만 하다. 누가 나오는지, 어떤 공약을 들고나오는지 도통 보이질 않는다. 심지어 행정구역 통합 논의에서도 지역주민은 보이지 않고 중앙 정치인들만 보인다. 기후위기, 인구소멸, 지역소멸…. 우리 삶을 위협하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정작 지역 정치는 표 셈법에 골몰하며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유권자들의 한숨이 깊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이야말로 시민들이 정치에 ‘대담한 기대’를 품어야 할 때라고 제안하고 싶다. 최근 임기를 시작한 미국 뉴욕의 최연소 시장 조란 맘다니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무상버스와 공공보육 확대, 공공 식료품점 설립, 임대료 동결 등 파격적이고 비현실적이라 여겨지던 공약을 내걸었다. 이 급진적인 공약을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 감각적인 선거전술과 결합했다. 그 결과는 당선이었다. 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상상력이 낡은 정치 문법을 이긴 것이다.
우리 지역이라고 불가능할까? 나는 얼마 전, 그 가능성의 씨앗을 목격했다. 연말연시 녹색전환연구소가 개최한 ‘기후정책 아카데미’와 ‘기후시민 네트워킹 데이’ 현장에서다. 기후정책 아카데미에서는 한 달 내내 주말 아침잠을 반납하고 모인 120여 명의 시민·활동가·공무원·정치인들이 교통, 주거, 경제 등 지역 살림살이 전반에 기후위기 대응의 철학을 어떻게 녹여낼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토론했다. 기후시민 네트워킹 데이에서는 각 지역의 기후·에너지 활동가와 공무원, 전문가들이 각자 지역의 좋은 사례를 소개하고,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2026년 새로운 성과를 위한 협력과 연대의 물꼬를 텄다.
두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교통, 주거, 경제 등 내 삶을 둘러싼 모든 정책에 ‘기후’ 관점이 심어져야 한다는 것. 흔히 기후정책이라 하면 ‘착하지만 불편하고 비싼 선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태양광 발전 수익으로 마을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식당을 운영하는 경기 여주 구양리 사례, 지역의 공공시설을 잇는 무상 공공버스를 도입한 서울 성동구 사례처럼, 기후위기 대응은 곧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민생정책’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기후정책이 분야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라면 전문가보다는 시민, 중앙보다는 지역, 행정보다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할 테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낼 ‘한국의 조란 맘다니’들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두 현장에서 만난 이들처럼 뜻 있는 활동가, 정치인들이 이미 곳곳에서 열심히 시민들을 모으고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공공 무상버스를 실현하려 법령을 뒤지던 공무원, 성당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올려 복음을 확산하는 협동조합 활동가, 지방선거를 기후선거로 만들자고 지역 정치인을 설득하는 시민들 말이다. 이들은 ‘한 탕’ 개발 공약이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대신 주민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 조금 멀지만 지역을 되살릴 유일한 길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남은 시간, 유권자가 해야 할 일은 ‘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우리 동네 곳곳에서 묵묵히 대안을 만들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화려한 경력보다는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당선 가능성보다는 그가 내놓은 공약의 내용과 깊이를 살펴보자.
그렇게 살펴보다 마음에 와닿는 후보나 활동가를 찾는다면, 선거사무소나 단체의 문을 열고 직접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조언을 건넬 수도 있다. 정치 후원금은 연 10만 원까지 세액공제되니, 소액 후원금을 보태보는 것도 좋겠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지지율이 1%대였지만, 56년 만에 최다 득표수로 당선된 맘다니 뉴욕시장의 사례처럼, 변화는 유권자들의 알아보는 눈길과 행동하는 손길에서 시작된다. 남은 130일, 우리 동네의 미래를 바꿀 보물찾기를 시작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