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가는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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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가는 사회복지사
  • 최선경 기자
  • 승인 2013.05.25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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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홍성군 사회복지 공무원의 하루

1인당 소외층 2000명 관리
매일 야근… 가사 무신경
"나도 복지혜택 받고 싶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충남에서도 지난 15일 임용 1년차 사회복지 공무원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사회복지사들이 왜 잇따라 극단의 선택을 할까?

지난 20일 홍성읍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 공무원 이양의(31) 씨와 하루 일과를 함께하며 그들의 애환을 지켜봤다.

이 씨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일어나 4살 된 아이를 친정집에 맡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편 역시 공무원이라 아내 이 씨의 어려움을 알기에 나름 집안일이며 아이를 돌보지만 가사와 양육은 어쩔 수 없는 이 씨 몫이다. 오전 8시30분 출근해 자리에 앉자마자 울려대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보통 하루에 처리하는 민원 전화가 50여건에 이른다. 현재 홍성읍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은 4명이며 모두 여성이다.

사회복지 업무 7년차에 접어든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이 씨가 돌봐야 하는 기초생활수급자는 627가구에 928명, 차상위계층은 614가구에 1069명이다. 이 씨 혼자 1200여가구 2000여명을 관리하고 있으며 해마다 관리 인원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한부모가족 지원을 신청하러 온 주민은 이미 초·중·고 학생 교육비 지원을 한 상태였다. 이씨는 "중복지원은 안돼요. 일단 신청서를 작성해두시고 교육비 지원에서 탈락하시면 지원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신청서와 지출실태조사서 등 관련 서류의 항목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서류 작성을 도왔다.

주민이 서류를 작성하던 중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돌보미 지원제도에 대한 문의전화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리고 집수리를 해달라는 민원인과 10여분간의 상담전화를 끝낸 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주민에게 노인일자리 등에 대한 안내를 해줬다. 기초수급자 60대 할머니부터 70대 노인 일자리 지원자 등 이어지는 민원인들의 상담요청으로 이 씨가 자리를 뜬 유일한 시간은 화장실에 갈 때뿐이다. 바쁜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술을 먹고 와서 욕설을 해가며 생떼를 부리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것이 이 씨는 가장 힘들다고 토로한다.

돈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의자를 걷어차고 심지어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상담을 하다가 갑자기 나가버리는 민원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 씨는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상담 사이사이 부지런히 서류 작업에 매달리지만 방문상담이 많은 날이면 퇴근 이후까지 처리하지 못한 전산 업무에 파묻힌다. 특히 보육업무가 집중되는 2~4월에는 전 직원이 밤 9시, 10시까지 매일 야근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이날은 현장 근무가 없었다. 자주 현장에 나가 민원인들의 상황을 파악해야 하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은 현실이라 이 씨는 정작 어려운 사람을 돕지 못하는 게 아닌지 안타깝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끊이지 않고 상담을 기다리는 민원인 덕분에 여유있게 인터뷰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상담이 진행되는 중에도 2분에 한번 꼴로 전화가 걸려 오는 상황이다. 몇 년 전 홍성군에서도 지병이 있던 30대 초반의 사회복지직 여성 공무원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과도한 업무스트레스가 사망의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또 지난 2007년에는 수급자에서 탈락해 불만을 품은 한 민원인이 광천읍사무소에 찾아와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러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심한 화상을 입은 사건도 발생했다.

현장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복지 공무원들을 지켜보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느낀다. 현장 사회복지사가 고질적인 민원인이 휘두르는 폭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또 현장에서 문제제기를 하면 범정부차원에서 안정적으로 처리해주는 체계가 있었으면 한다. 사람을 위한다는 복지가 정작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조차 보호해주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그건 이미 복지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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