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 당해 묻힌 암장지엔 독립 향한 기개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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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 당해 묻힌 암장지엔 독립 향한 기개 '오롯이'
  • 전하수(월진회 이사)
  • 승인 2013.07.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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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길 의사 일본 가나자와 유적지 방문기

▲ 윤봉길 의사 암장지 입구, 월진회 회원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21년전 인근에 순국기념비 건립
처형전 묵었던 감옥터 공원 변모
동굴 군수공장 많은 조선인 희생

21년전 인근에 순국기념비 건립 처형전 묵었던 감옥터 공원 변모 동굴 군수공장 많은 조선인 희생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4일까지 매헌 윤봉길 의사 암장지 유적 답사와 제2회 동북아시아 평화연대 가나자와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그간은 (사)매헌 윤봉길 월진회 이사와 임원 위주로 가나자와시 백만석 축제와 관람을 겸해 시행했으나 올해는 월진회 이사, 예산군 관계공무원, 군의회 의원, 월진회 회원 및 가족 등 42명이 참여했다. 지역별로는 예산군 22명, 서울시 6명, 안산시 9명, 홍성 4명, 경북 상주시 1명, 몽골인 2명 등이다. 제6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윤 의사의 암장지 등 일본 유적지를 돌아본 방문기와 소감 등을 적어 본다.

일본 방문은 새벽 4시 40분에 충의사 주차장 광장에서 관광버스로 출발케 되어 새벽잠을 설치고 정시간에 나갔다. 충의사 사당의 윤 의사 영정에 묵념을 올리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저녁 일본 월진회 회원의 환영자리에서 부를 노래인 '만남'을 우리말과 일본어로 연습을 하는 동안 버스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지역에서 모인 일행을 만나 4개로 조를 편성한 뒤 각조에 조장이 태극기와 월진회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탑승수속을 마쳤다. 전국에서 모인 방문단 42명의 연령층은 11세부터 90세까지 다양했으며 남성이 29명, 여성은 13명이었다. 몽골인 2명도 동참했다.

비행기가 약 40분 지연 출발해 일본 토야마 공항에 11시 30분에 도착했다. 공항 밖에서 마중 나온 월진회 일본지부 회원과 인사를 나누고 중형버스 2대로 약 40분을 달려 화룡정이란 중국음식점에서 중식을 한 뒤 첫 방문지인 윤 의사 암장지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일본지부 박현택 지부장과 일본측 회원 20여명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하여 모여 있었다. 암장지 유적 시설 앞에서 이우재 회장과 윤규상 명예회장, 친손녀 윤주경 순으로 참배를 하고 헌성함에 금일봉을 넣었다. 암장지 시설은 윤 의사가 1932년 12월 19일 인근 육군부대에서 총살형을 당한 후 가나자와시 전몰자 묘지 측면의 계단길 옆에 암장되어 있었다. 그동안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박인삼 단장)에서 관리해 오다 1946년 5월 조국의 품으로 유해를 모셔 효창공원에 봉안되었다. 암매장 자리에는 약 4평 규모의 부지를 일본으로 부터 제공받아 석재 조형물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이란 표지석과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푯말을 세워 놓고 암장 당시 규모 형태로 하얀 인조 조각돌을 깔아 놓았다. 입구에는 한국 월진회 회원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도 설치해 있었다. 일행 모두는 묵념을 올렸으며 옆에서는 남자 승려가 일본말로 계속 염불을 올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윤규상 명예회장과 박현택 일본지부장의 암장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자리를 옮겨 측편으로 70m 지점에 있는 윤 의사 순국기념비 앞에 가서 일동이 묵념을 올렸다. 생각 외로 기념비의 규모가 큰 시설에 놀랐다. 3개 계단의 좌대 위에 세워진 비신은 2m 규모로 컸으며 비문은 서예대가 안동 김씨 김충현 선생의 순한문 글씨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1992년 4월에 세워졌으므로 20여년이 지났으나 비신에 조그만 흠집도 없었으며 광장도 50여평이 넘을 것 같았다.

▲ 윤봉길 의사 암장지에서 월진회 회원들이 참배하고 있다.


이 시설을 잘 보존 관리해 주는 일본인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또한 근처에 있는 윤 의사 순국기념사업과 암장지 관리에 공로가 큰 박인조 선생의 묘비 앞에서 일동이 참배하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밤 8시에 가나자와시 주최 환영연에 참석하여 부시장, 시의원, 대학교수, 월진회 일본지부 회장의 환영사와 이우재 월진회 회장의 인사말을 끝으로 '만남'이란 노래를 합창(한국어, 일본어)하였다. 월진회 일본지부 회원들이 자기 집에서 마련한 음식과 술로 저녁 식사를 즐겁게 했으며 참석한 일본회원 중에는 갓난아이를 안고 참여한 여성도 두명이나 있었다.

둘째날은 동북아 평화연대 심포지엄이 오전 9시부터 4시간동안 시 문화홀에서 있었다. 먼저 일본의 윤 의사 우호회 사무국장인 모리가즈토시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의 역사를 다시 보며'란 주제로 동북아시아를 평화지역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제 국경을 넘어 각 나라 자치단체간의 상호 존중과 지속적인 교류로 월진회와 우호회 일본지부는 더욱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진지한 뜻이 담긴 내용이었다.

이우회 회장의 '전쟁은 상호 공멸한다'는 발표에서 사악한 소수 집단의 전쟁 노름에 평화가 파괴되는 싸움이었다며 앞으로 문화적 교류와 이해·연대 세력을 확대해야 하고 더욱 조직을 강화하여 동북아 평화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자고 역설하였다.

다음으로 예산군 문화관광해설사 오가와 데루요 씨는 '국경을 넘어 서로 입장 차이를 넘어'란 주제로 국가간에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녀는 일본 국적으로 한국의 문화관광해설사를 맡고 있는데,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하여 양국간의 의사 소통을 위한 통역 역할을 담당하고 심포지엄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몽골의 남질더르지(몽골한국농업센터소장) 씨는 동북아 국가 발전의 NGO 역할에 대하여 설명했다. 예산군에서 몽골에 심어준 사과나무를 잘 가꾸고 있다는 말과 몽골인이 윤 의사의 고향 예산을 많이 알고 있으며 '웃는 사람한테 나쁜 생각이 없다'는 몽골의 격언을 이야기하고 웃을 때는 통역이 필요없다는 말도 하였다. 끝으로 윤 의사 기념관 이무희 관장이 윤 의사의 생애와 기념관의 운영 상황을 설명하고 평화주의 사상을 본받아 한·중·일·몽골이 함께 노력해야 된다고 강조하면서 주제 발표를 끝냈다.

그리고 각 나라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여 평화지향의 여론을 환기하고 그 노력을 합하여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공동결의문을 낭독했다. 또한 토론시간에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내용을 속히 개정해야 할 것이라는 우리측 질의가 있었으나 확실한 답변은 회피하였다.

다음날(6월 2일) 아침 9시에 인근에 있는 가나자와 시립공원과 수목원(겸육원)을 관람했다. 시립공원 입구에서 안내원은 윤 의사가 사형되기 전 약 13시간 동안 감금되었던 감옥터는 공원의 잔디밭 옆 큰 나무들이 서 있는 곳이라고 했으며 그 자리는 지역 대학교의 운동장이었다가 지금은 공원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 공원의 외곽에는 높은 성이 있는데 성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았다. 높은 곳은 10m가 넘고 보통 4~5m의 높이로 직각으로 쌓이지 않고 성 안쪽으로 약간의 경사를 둬 성의 무너짐을 방지토록 축조했다. 성밖의 요소에는 해자(垓字)시설로 폭 8m, 깊이 2m 정도에 물을 채워 성벽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도록 축조 설계가 되었다. 겸육원 공원은 우리말로 인쇄된 안내 팸플릿을 한국 관광객에게 배부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의 군수 공장터를 방문했다. 일방통로 좁은 길의 험준한 산계곡을 3km 정도 올라가니 200m 지점의 동굴 앞에 도착하였다. 지형이 산과 산 사이 폭이 50m도 안되는 협곡이었다. 폭격기의 폭격도 불가한 지역에 10여개의 큰 동굴이 있다고 한다. 동굴의 입구 폭은 6~7m, 높이는 4~5m가 넘는 대형인데 내부는 컴컴해 30m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동굴을 파는 데는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이 위험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입구에 세워 놓은 안내판에 조선인 노무자 다수 희생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서 고생하다 숨진 동포들을 생각하며 전쟁의 참상을 느꼈다. 다음날 입산 관광 등의 일정을 마치고 6월 4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서 충의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이번 유적지 방문과 심포지엄 등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충의사에 도착한 일행은 윤봉길 의사 영정 앞에서 윤 의사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묵념을 올린 뒤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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