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탈 저항·조국광복 염원’ 문학에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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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탈 저항·조국광복 염원’ 문학에 고스란히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4.01.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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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서거 70주기 ③ 저항시인

 

▲ 홍성 만해문학체험관 전경


근대적 시인․일제 강점기 살았던 대표적 저항시인
1916년 암울한 시대상 타파 위해 본격적 저술활동
‘님의 침묵’등 다양한 작품에 조국독립 여망 담아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시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은 한국문학사에서는 근대적 시인이자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손꼽힌다.
만해 한용운은 식민지 체제 당시 민족주의에 입각해 독립운동을 벌여온 독립투사로서,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의 종교인으로서, 또한 시집 ‘님의 침묵’(1926년 회동서관 간행)을 창작함으로써 시인까지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만해는 흔히 알려진 ‘님의 침묵’을 비롯한 숱한 문학작품들을 통해 암울한 시대상황에 저항했고 민족 모두가 겪고 있는 통증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 불교대중화 등 만해의 생애 일부분이 그의 문학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만해는 그의 문학작품들을 통해 전인적인 구도자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을 얻고 있다.
만해는 이육사, 윤동주 등과 함께 한국 근대 문단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만해가 문학작품 속에 일제침거를 규탄하고 조국광복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강건한 성품의 만해는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에 귀국해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또 같은 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에 입각해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했다.
이후 1916년에는 서울 계동에서 기미년 독립선언의 전위지로 평가받는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하고 암울한 시대상을 타파하기 위한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만해는 불교잡지 ‘유심’ 창간호에 ‘청년과 수양’, ‘동정 받을 필요 있는 자 되지 말라’, ‘가정교육은 교육의 근본’, ‘자기의 생활력’, ‘수양총화’, ‘항공기 발달 소사’, ‘과학의 연원’, ‘먼저 이상을 세우라’ 등 목차 구성을 과감하게 시도하며 종교잡지가 아닌 일반잡지의 형식을 갖췄다. 당시 불교의 승려가 만든 잡지 중에서 일반잡지의 성격을 띠는 것은 매우 희귀한 예이다.
또 매호마다 마지막 장에 현상문예란을 마련해 보통문, 단편소설, 신체시가, 한시 등 1918년대 당시 문학 장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전보삼 신구대 교수는 “만해의 문학 장르 분류법은 글의 형식과 기교, 신사조의 영향을 배제하고 사상을 갖는 문학정신을 강조하였다는 데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며 “장단과 격조, 내용을 담아내는 그 정신이 바로 전통을 생생하게 간직한 우리의 정신문화란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만해는 1926년 ‘님의 침묵’ 등의 시를 발표하고 이전까지 유심지에 실었던 시들을 한데 모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한다. 이 시집에는 총 88편의 시가 수록됐다.
서시에 해당하는 ‘님의 침묵’에서 종시에 해당하는 ‘사랑의 판’에 이르는 전편의 시에 ‘님’과의 이별과 만남이 극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각기 독자적인 의미영역을 갖는 개별 시편들은 상호 연관성을 가지며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사랑의 드라마를 구성해 낸다. 이처럼 우리의 근대시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은 연작시 형식을 갖추며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독특한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님의 침묵’ 이전에 발간된 근대적인 개인 시집으로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 주요한의 ‘아름다운 새벽’(1924), 변영로의 ‘조선의 마음’(1924), 노자영의 ‘처녀의 화환’(1924), 박영희의 ‘흑방비곡’(1924),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정도가 전부다.
님의 침묵에서는 만해가 기존에 써 오던 시조의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로 시를 썼다.
만해를 저항시인으로 알린 대표적 시 ‘님의 침묵’은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해 불교적인 ‘님’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고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 1926년 간행 시집 '님의 침묵' 초판본

‘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독립정신으로 일관한 그의 생애에 비추어 보면 ‘님’은 결국 잃어버린 ‘조국’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평단의 분석이다.
‘님의 침묵’은 만해가 사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 그의 삶과 역사, 종교와 사상을 진지하게 다시금 성찰해 보는 순간에 완성됐다.
사십대 중반에 이르러 한용운은 경성에서의 활동을 잠시 접고 강원도 내설악의 오세암, 인제 백담사 등으로 내려와 여름 한철을 보내며 창작에 몰두한다. 시집 ‘님의 침묵’은 1925년 8월 29일 밤에 최종 탈고된 것으로 시집 말미에 밝혀져 있다.
만해는 이후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1930년대부터는 장편소설 ‘흑풍(黑風)’, ‘후회’, ‘박명(薄命)’, 단편소설 ‘죽음’ 등을 비롯한 몇편의 장편, 단편 소설들을 발표했다.
만해는 일평생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으로 점철되는 일관성 있는 행보를 걸었고 그에 따른 실천의지와 저항정신은 소수의 문학작품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만해의 문학정신과 미학은 어려운 시대일수록 향기를 더하는 풍란화처럼 고고한 자태로 더욱 그 빛과 향기를 더해갈 것이다. 

 

 

 

 

 

 

 

 

▲ 만해 한용운 시비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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