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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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9 >
  • 한지윤
  • 승인 2014.03.2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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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엄마 아빤 하늘나라에서 만나셨을까? 엄만 그곳에선 편안하게 지내셔야 할 텐데. 너무 지독히 고생하셨어.”
수진의 말에 입원 3개월 만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퇴원명령을 내렸을 때의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 든. 병원은 돈만 집어먹는 곳이라니까. 어서 집에 가자”며 이를 악물고 일어나 보이시던 어머니의 해골에 가까운 검은 얼굴이 떠올랐다.
“언니, 엄마가 보고 싶어.”
수진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파묻었다. 수미의 눈에서도 한줄기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수미는 손등으로 볼을 훔치고 방으로 올라서며 수진의 어깨를 안았다.
“울지 마, 수진아. 우리가 울면 엄마는 하늘나라에서도 고생하셔. 우리가 웃으면서 잘 지내야 엄마 마음도 편하시지.”
코를 훌쩍이면서도 애써 눈물을 삼키며 수진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리가 울면 호진이는 어떡하니?”
수미는 눈물을 닦으며 가냘픈 숨소리를 내고 있는 호진은 내려다보았다.
“자, 피곤할테니 그만 자자.”
수미는 수진을 재우고 나서도 벽에 등을 기댄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지금의 수입으로는 집이 헐리면 길거리에 나앉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둠 속에 덩그마니 서있는 서랍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서럽장엔 손때로 너덜너덜해진 통장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으면서 수미를 머리맡에 불러 앉히고는 힘겹게 입을 열며 통장을 건네 주었었다.
“수미야. 수진이, 호진이를 잘 부탁한다. 어린 네게 힘겨운 일이겠지만 이젠 네가 그 애들의 엄마, 아빠 노릇을 해줘야겠구나. 미안하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나서.”
훌쩍이는 수미의 앙상한 손을 끌어당겨 아버지는 통장을 쥐어 주었었다.
“몇 푼 안되지만 네 엄마 죽고나서 푼푼이 모은 돈이야. 수미야. 절대로 약해져서는 안돼. 넌 아이들의 엄마 아빠다, 알겠지?”
죽음이 무언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 호진과 먹고 입는 것밖에 모르는 수진을 남겨놓은 채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었다. 그런데 100만원대의 두툼하던 통장은 몇 해를 거치면서 전세가 오를 때마다, 학년이 오를 때마다 빠져나가고 이젠 몇 천원대의 빈약한 통장으로 남아버렸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유난히 크게 방안을 울려댔다.
문득 옆집 정애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애는 아랫동네 봉제공장 여공이었다. 이사온 지 석달이 넘었는데도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야 돌아오기 때문에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언뜻 스친 모습은 병자처럼 창백한 얼굴과 엉덩이만 기형적으로 큰 몸매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의 이름이 정애라는 것도 순미엄마를 통해 들어서 알았었다.
‘그래, 우리 형편에 학교에 다니는 것도 사치일지 몰라. 정애언니도 아픈 몸을 이끌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라고 못할 건 없지.’
수미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어느새 시계바늘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빗줄기는 더욱 세게 천정과 창을 때려왔다.
그녀는 내일 아침 일찍 정애를 찾아가보리라 겨심하면서 힘겹게 다리를 펴고 누웠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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