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는 진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진영의 콧잔등에 땀이 서렸다. 명 번이나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진영의 성의에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 고개를 끄덖이고 대답도 하게 되었다.
“야! 놀라운데”
진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웃으며 환성을 질렀다.
“너 IQ가 얼마나 되냐?”
“짜식! 뜬금 없이 웬 호들갑이야?”
현우가 겸연쩍은 듯 웃으며 진영의 어깨를 쳤다.
“아냐. 내가 보기에 네 IQ 150쯤은 될 것 같은데.”
“뭘. 네가 워낙 잘 설명해주니까 그렇지.”
수줍은 듯 손으로 얼굴을 부벼대는 현우의 모습이 유치원생같이 귀엽게 느껴져서 진영은 덥썩 손을 잡았다.
“이대로 나가면 너 대학 가는 것쯤 식은 죽 먹기겠다.”
진영은 수미에 대한 근심도 잊은 듯 입이 벌어져 어쩔 줄 모르고 좋아했다.
“이런 일 처음 해보니?”
“네.”
“고생 좀 해야겠구만.”
수미는 50은 넘어보이는 아주머니의 혀를 차는 소리를 귀로 흘리며 커다란 TV의 겉부분인 플라스틱 케이스를 분홍색 합성수지 포장지에 담아 박스에 넣었다. 네 개를 채워 담고는 박스 테이프로 위를 봉하고 박스째 들어서 한구석에 쌓아 놓았다.
집채만한 플라스틱 사출기계 앞에 서있는 깡마른 남자는 1분마다 한씩 금형에서 튀어나오는 제품을 꺼내 칼로 이바리(금형이 정확하지 않아 제품 옆에 너덜거리게 생겨나는 것)를 잘라내고, 글씨를 인쇄하고 앞으로 쓱 밀어냈다. 그러면 수미는 사출기의 압력으로 생긴 허연 자국을 콤파운드라는 약품을 묻힌 헝겊으로 힘껏 닦아내고는 포장을 했다.
1분에 제품이 한 개 나오니까 4분이면 1박스가 생기고 1시간이며 15박스가 나온다. 2시간이면 박스로 주변이 꽉 차서 수미는 기계를 잡아주어야 한다. 기계를 잡는 기수가 쌓인 박스를 밖으로 내다놓고 분해되어 있는 박스를 가져오게끔 해야하기 때문이다.
수미는 150온스나 사출해낸다는 커다란 기계에 매달려 몸 전체가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금형 속으로 팔을 집어넣어 제품을 꺼냈다. 몸이 휘청거리며 왼손에 잡은 안전문이 흔들거렸다. 깜빡 잘못해서 안전문이 닫히고 수미의 몸이 안쪽으로 빨려들어가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오징어포 신세가 된다. 그런 식으로 해서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를 여기 와서 몇 번 들었다. 3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조장의 손가락 세 개가 없는 이유도 금형에 손이 끼어서 잘렸기 때문이라는 것도 앞의 아저씨에게 들어서 알았다.
수미는 제품을 빼내기가 바쁘게 이바리를 잘라낸다고 손을 놀리지만 반도 못하고 옆으로 밀어놓았다. 20여군데나 되는 이바리를 자르기엔 수미의 손놀림은 아직 너무 느렸다. 10여번을 반복하고 난 수미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기계에서 뿜어나오는 60도의 열기와 서둘러 움직여대는 몸놀림에 입에서는 단내가 훅훅 끼쳐왔다.
“힘들지?”
어느새 왔는지 아저씨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기계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네. 조금. 저 이거 다 못했어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수미는 그냥 밀어놓은 제품을 가리켰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