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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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
  •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06.2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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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25>

 

향수는 밤이 되면 더한다. 깊은 회한도 마찬가지이겠거니 이를 달래는 방법은 지인을 만나 정담을 나눈다거나 녹차 한 잔에 정을 실어낸 사람도 많다. 개울물 졸졸졸 소리 내는 냇가에 앉아서 곡차 한 잔은 그 시름이나마 다 달랠 수 있었으리라. 향수를 달래는 마음은 수도승이나 범인들도 다 마찬 가지였다. 수도에 정진하면석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그저 등이라도 칠 양으로 서로 반기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지인 금봉선사를 만나 달 밝은 밤에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與錦峯伯夜唫 (여금봉백야금)
시와 술 서로 만나 생각이 무궁한데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꿈 없었다네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아니리.

詩酒相逢天一方 蕭蕭夜色思何長
시주상봉천일방 소소야색사하장
黃花明月若無夢 古寺荒秋亦故鄕
황화명월약무몽 고사황추역고향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與錦峯伯夜唫)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와 술 서로 만나 즐기나 천리 타향인데 / 쓸쓸한 이 한밤 생각 아니 무궁하겠네 //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꿈 없었으니 /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리]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시와 술이 만났지만 천리타향 이 한밤에, 애틋한 꿈없지만 어디인들 고향아니랴’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금봉선사 백야와 같이 읊다]로 번역된다. 친한 동료선사를 만나 곡주 한 잔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시를 짓고 잔술을 돌려가면서 읊었던 시가 진취적인 생각이 되고, 수도정진에 대한 덕담이 되며, 반야시상 대승불교의 한 축을 논의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에서는 그런 언급이 조금도 없다. 시인은 비유법의 달인임을 확인하는 것처럼 이 시에서도 그런 시적 흐름을 목도할 수 있다.
시인은 동료 금봉선사와 시를 교환하고 술을 마시면서 잠시의 외로움을 잊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와 술 서로 만나 오늘을 즐기고 보니 천리 타향인데도 타향 같지 않고 쓸쓸한 이 한밤에 정겨운 생각 아니 무궁하겠는가 라는 시상으로 출발한다. 정감이란 이 시간과 동료와 만나는 이 시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간곡한 염원을 담았다.
화자는 담담한 시적인 표정은 조금도 변함없이 자연을 감상하며 마신 이 술잔이 가장 흐뭇했다는 정감을 시상 얼게에 빚어놓았다. 오늘밤 같은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이런 꿈 없었다 하더라도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라는 반어적인 표현에서 묘미를 본다. 시와 술로 감상적 마음을 채우는 마음 담아 정감 넘치는 가을을 생각한다는 시상에 공감하게 된다.

<한자어 어구> 
詩酒: 시와 술. 相逢: 서로 만나다. 天一方: 천리다. 은유적인 표현임. 蕭蕭: 쓸쓸하다. 소소하다. 夜色: 밤의 빛깔. 思: 생각. 何長: 어찌 길지 아니하랴. // 黃花: 누런 국화. 明月: 밝은 달. 若: 만약. 無夢: 꿈이 없다. 古寺: 옛 절. 荒秋: 황량한 가을. 亦: 또한. 故鄕: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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