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가을시름으로 세월만 아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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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의 가을시름으로 세월만 아득해라
  •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장희구
  • 승인 2014.07.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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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27>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전화를 한다거나 시간을 내서 극진히 찾아뵙는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편지를 써서 안부를 여쭌다. 사람들이 세상사는 이치와 인간관계를 하면서 사는 이치는 늘 그랬다. 영호화상이 시인이 수도하는 사찰을 찾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출타중이라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뵙지 못한 서운함을 미처 달래지 못하여 차마 가눌 길이 없었던지, 창밖에는 아직도 가을 시름으로 세월만 가득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贈映湖和尙述未嘗見(증영호화상술미상견)

버드나무집 고운님 거문고 타는 소리
봉황은 춤을 추고 신선이 내려오네
창밖엔 가을 시름으로 세월만 가득해라.

玉女彈琴楊柳屋 鳳凰起舞下神仙
옥녀탄금양유옥 봉황기무하신선
竹外短壇人不見 隔窓秋思杳如年
죽외단장인부견 격창추사묘여년

창밖의 가을시름으로 세월만 아득해라(贈映湖和尙述未嘗見)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버드나무집 고운님의 거문고 타는 소리에 / 봉황은 춤을 추고 신선이 내려오네 // 대밭 건너 담 안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데 / 창밖엔 가을 시름으로 세월만 아득해라]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거문고 소리 춤춘 봉황 신선이 내려오네, 담 안엔 사람 없고 가을 시심 아득해라’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영호화상을 만나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말함]으로 번역된다. 영호화상과의 끈끈한 인연은 많았던가 보다. 인연이라기보다는 뭇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선사이었기에 시인 역시 존경의 깊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인은 선사를 만나 뵈었더라면 추사의 아름다운 정경을 자상하게 말하려고 했겠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마음을 시적 상상력으로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은 문학적인 표현을 넘어서서 화가의 상상력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움을 한 폭의 화선지에 그려냈다. 버드나무집 아가씨가 섬섬옥수로 거문고 타는 소리에 하늘로 솟구치던 봉황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가 싶더니만 신선(神仙)이 은근하게 취해서 내려온다는 상상을 했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화가가 아닌 시인이었기에 이만한 상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리라.
화자의 넉살은 이제 후정(後情)의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밭 저 건너 담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데, 창밖에 펼쳐지는 가을 시름만으론 무수한 세월이 아득했다는 시상의 밑그림이다. 선경(先景)의 정(情)도 상상을 초월했지만, 후구의 정(情)은 어느 구절도 손에 잡혀지지 않는 명구라 해야 할 것 같다.

 

 

<한자어 어구>
玉女: 옥녀, 고운님. 彈琴: 거문고를 타다. 楊柳屋: 버드나무집. 鳳凰: 봉황. 起舞: 일어서서 춤추다. 下神仙: 신선이 내려오다. // 竹外: 대밭 건너. 短壇: 짧은 담장. 人不見: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隔窓: 창 밖. 秋思: 가을 시름. 香: 향내. 가득하다. 如年: 세월만. 세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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