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학량 이응노생가 기념관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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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학량 이응노생가 기념관 명예관장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4.07.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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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8>

인터뷰 - “동양의 미학으로 서양의 논리를 다룬 화가,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 김학량 명예관장은 지난해 고암 이응노의 작품세계를 두고 박사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 고암 이응노 연구와 관련 국내에서 독보적인 연구세계를 구축한 김학량 교수에게서 고암의 작품세계와 향후 이응노생가기념관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고암은 어떤 화가였나 
“고암은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몹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선배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고암은 새벽부터 자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만드는 일을 쉬지 않았다. 재료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했다. 쉼 없이 그림을 그리고 무엇이라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한 행동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몸으로 태어난 천상 예술가였다. 또 고암은 낯설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했던 사람이었다. 예술가들이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과감함이 있다.”
-한국 근현대화단에서 고암의 위치는
“1950년대 후반의 한국미술계는 전통화단에 서양화의 기류가 폭포수처럼 흘러드는 변화의 시기였다. 당시의 대부분의 화가들은 전통의 제도에 주눅이 들어 현대적인 감수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게을렀고 안목도 없었다지만, 고암은 달랐다. 이상범과 변관식 등이 정통산수화를 근대화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고암은 근대화를 한국적으로 현대화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프랑스인들은 ‘동양의 미학으로 서양의 논리를 갖고 논 화가’로 고암을 평가한다. 전통의 지필묵을 이용해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사람이 고암 이응노였다.”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어떻게 가야하나 
“이응노 기념관의 특징은 다수의 습작과 스케치를 보유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지금까지는 이응노 기념관이 고암의 고향에 들어서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무엇보다 창작활동의 모태가 된 국내활동기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향후 기념관의 역할이 무척이나 많다. 무엇보다 자료를 충실하게 수집해야 한다. 고암의 고향인 홍성에 위치한 곳이니 만큼 기념관은 고암의 삶과 예술을 오롯이 담아내는 소박하지만 질리지 않는 그릇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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