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은 생태교육·농도순환의 우수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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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은 생태교육·농도순환의 우수한 현장”
  • 홍순명 홍동밝맑도서관장
  • 승인 2014.07.3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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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둥오리의 호소


닭과 오리에도 한 송이 국화를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다. 찬 바다에 가라앉은 학생들 죽음에 민족공동체의 애도가 그치지 않고 있다. 홍성의 복개주차장에도 노랑 리본이 걸린 가운데 매주 목요일 추모 모임이 열린다. 사건이 났을 때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이 온 국민의 마음에 스쳐간 생각은 “생명이 돈보다 귀한데..” 가 아니었을까?
생명은 사람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포함될 것이다. 모두 한 근원이고 서로 관계가 얽혔기 때문이다. 귀를 기울이면 국화 한 송이 놓여지지 않은, 올해만 1400만이나 되는 또 다른 생명들의 죽음의 호소가 들리지 않을까? 조류 독감으로 전국에서 생매장된 양계장의 닭들과 억울하게 피해를 본 철새들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철새들은 아무르강, 바이칼호에서 여름을 나다가 늦가을부터 먹이가 풍부한 한국 서해안에 날아와 겨울을 났다. 철새 경로를 따라 이동했던 알타이족은 곳곳에 나라를 세웠고, 오리가 내리 앉은 솟대를 세워 고향을 기억하고 하늘에 풍년을 빌었다. 멀리 날아온 철새는 생명의 리듬에 따라 서해안 하늘에 장엄한 무리춤(群舞)을 연출했다.
철새에게 큰 비극이 닥쳤다. 2003년부터 조류독감의 원인이라는 누명으로 눈총을 받다가 아예 적대시하여 폭음기로 쫓고 농약을 뿜어대어 철새 수천년에 가장 혹독한 겨울을 났다. 숙주와 기생충은 어떤 생물 개체에도 잠재하면서 공생하고 있다. 오리도 자연 속에서 면역력을 길러 대거 폐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햇빛도 공기도 안 통하는 손바닥만한 공간에서 모든 본능을 억제 당하고 눈을 톡 쏘는 배설물의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며 수상한 사료를 먹여 키우면서 바이러스를 이길 체력은, 바라는 자체가 무리다. 이미 유럽서는 이런 공장식 양계장을 폐지했다.

오리는 ‘하늘이 보낸 일꾼’
1989년에 우리 지역에 처음 들어와 전국 각지의 논에서 활기를 띄었고 유기농업의 대표주자로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던 오리농법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오리가 사라진 들판은, 한국농촌이 그런 것처럼, 조용하다. 아시아와 세계의 쌀 농사 지역과는 대조적이다. 필리핀에서는 안토니오 레데스마 주교가 농사철이면 오리 논에서 미사를 올려 “구원의 선물”, 오리와 농민들을 축복한다. 중국의 강소성, 안휘성 등에 는 오리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퍼마 컬쳐의 창시자 빌 몰리슨 씨는 오리농사야 말로 퍼마 컬쳐(영속 농업)이라면서 직접 오리농업 책을 번역했고, 유기농업 강국 쿠바에서는 일본의 오리농업 창시자 후루노씨를 5년째 초청해 지도를 받고 있다.
오리농사가 처음 우리 지역에 소개되었을 때, 농업과 농촌의 새 차원이 열리는 듯했다. 오리는 훈련이 필요 없는 역축(짐승 일꾼) 이고 풀과 벌레를 잡고 논바닥을 휘저어 사람 일을 돕는 용축(일을 부리는 짐승)이고 고기와 똥으로 흙에 양분을 제공하는 분축이고, 어떤 가축보다 적은 사료만으로 불포화지방의 우수한 고기를 제공하는 육축(축산)이고, 각인으로 사람을 졸졸 따르는 귀여운 완축(애완용 짐승)이다.
그간 일본에서 선호하는 청둥오리가 아닌 흰 체리밸리를 논에서 기를 경우 몸무게가 배 가깝고, 고기는 요리의 고장 중국을 비롯해 프랑스에서 고급 요리로 친다. 오리는 논을 놀이터와 일터로 삼아 제초, 제충, 흙탕, 촉감, 양분 효과에 온난화의 주범인 메탄 발생을 억제하며, 좁은 면적에서 유축복합농업을 가능하게 한다. 정말 어디에 감추어두었다가 홀연히 등장시킨 ‘하늘이 보낸 일꾼’이었다.
오리농업의 단점으로 망을 치고 걷는데 품이 든다지만 값싼 태양광 발전으로 한번 치면 안전히 오래 쓸 수 있다. 전선만 제대로 치면 오리 집은 야생오리처럼 간단해도 된다. 우렁이는 멸구 대책이 안 되고, 일본, 대만에서 그랬듯이 한국 환경에 적응해 월동하면 큰 해충이 된다. 생물다양성도 두 달 동안 논에 풀었다가 거둔 뒤 조사 결과 곧 복원된 것이 확인됐고, 질산염에 대한 우려도 오리똥 자체보다 기비나 추비로 퇴비의 과다시비가 문제였다는 것도 밝혀졌다. 폭증하는 세계 인구와 육류소비에 대비하려면 농지의 집약적 이용과, 칼로리 베이스로 곡물이 덜 드는 가축을 길러야 하는데, 폴 로버츠는 ‘식량의 종말’(김서영/민음사 2011)에서 오리농사를 그 해답으로 들었다.


흙과 공동체의 문화
오리농업을 부활시키려면 유기농 쌀을 생산, 가공, 유통을 협동으로 조직하고 일원화해서 일손이나 제값받기 문제를 해결했듯이, 유축복합인 축산으로서의 오리고기를 오리농민과 행정, 협동조합, 가공업자가 머리를 맞대어 기술지도, 햇오리 부화, 사료 공급, 가공, 유통과정을 분담하여 일관 과정이 되도록 대협의를 해야 하리라. 오리 쌀처럼 오리축산을 협동의 궤도에 올려놓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판 두레가 아닌가? 오리는 좁은 면적에서 쌀, 짐승, 둠벙을 이용한 고기와 채소(동남아에선 둠벙채소 재배가 유행이다), 이모작으로 생산을 올릴 수 있는 창의적인 미래형 순환 집약농업이다. 각급 학교 학생이나 소비자에게 오리 논은 생태교육이나 농도순환의 우수한 현장이 될 수 있다.
근래 로컬 푸드 직매점, 농민시장이 도처에서 문을 연다. 좋은 일이다. “지금 세계는 두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다. 자본의 탐욕으로 자원 고갈과 생태를 파괴하는 공업기본주의(industrianism)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토지를 바탕으로 종교와 흙과 공동체의 일체적 건전을 추구하는 농업기본주의 (agrarianism)와 농업기본사회 (agrarian society)를 지향해야 한다” 현대의 예언적 통찰로 세계에서 존경받는 웬델 베리 씨의 말이다. 그에게 근래 높아지는 이런 먹을거리와 환경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비쳐질까? “ 걱정이 앞선다. 흙과 공동체의 기초가 없으면 정치, 경제, 교육 무어고 바르지 않지만, 흙과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제적 동기만으로 농업기본주의 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연에서 겸손히 배워 우선 망가진 흙을 살리고 서로 돕고 돌보는 공동체문화의 바탕을 꾸준히 가꾸어나가야 한다.”지난달 30일 켄터키 포트 로얄의 자택에서 만난 그의 진단이었다.

다시 평화스러운 오리논 풍경을
오리농업은 자연과 문화의 다양성을 가진 이웃나라 농민들과 능동적인 평화 교류에 이바지했다. 철새가 날아다니는 통로는 동북아시아 평화공동체의 국경 없는 약속의 땅’이다. 오리가 주는 지역 경제, 생태, 역사, 교육, 문화의 메시지는 크다.
하늘의 철새들은 내장된 본능의 신비에 따라 서해안의 석양 하늘에서 폭풍같이 무리춤을 추고 싶을 것이다. 흰 오리들은 다시 농민을 도와 푸른 논에서 희희 낙락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고 싶으리라. 하늘과 땅에서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일대 파노라마를 펼치게 되기를 오리들은 바랄 것이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이 드디어 눈앞에 닥쳤다. 제로 관세를 추구하는 자유무역 체계가 막을 올렸다. 역사 이래 처음 남의 흙에서 가꾼 먹을거리에 우리 식탁을 맡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생명을 기르는 흙과,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 문화가 더 거칠어질 것이다. 자영농의 몰락과 지역공동체의 붕괴는 경제적 손실로만 따져서는 안 된다.
지난 7월 25일에 지역의 젊은이들 33명이 일본 오카야마에서 열리는 한일오리농교류회에 다녀왔다. 오카야마는 체리밸리를 이용하는, 전국에 산재한, 오리농업의 한 거점이다. 후루노씨는 9월에 전기울타리와 직파를 알려주려 내한을 제안하였다. 교류하고 배우고 비전을 갖는 좋은 모임이었다고 한다. 과거 오리로 지역의 마을을 만들었듯이 이제는 전국 농업의 미래를 지역에서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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