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역 최초 순교자 원시장(베드로)<1>
상태바
충청지역 최초 순교자 원시장(베드로)<1>
  • 박정현(홍성읍)
  • 승인 2014.08.14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이 세계 4위의 성인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증명 하듯 8월 교황 방한에 맞춰 시복(성인이 되기 전 단계)될 124위중 4명의 순교자가 홍성에서 탄생 하는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님을 말해 준다. 홍성은 순교 성지 중에서도 순교지 3곳, 증거터 3곳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를 갖고 있다. 공식적으로 치명일기(致命日記)에는 212명이나 다른 문서를 종합하면 700여명 이상일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은 충청지역의 첫 순교자 원시장(베드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원시장은 홍주(洪州)군 응정리(鷹井里)에서 부유하고 예모있는 집안에 태어났다. 그 성질은 야생적으로 사나워 ‘호랑이’란 별명을 들었다. 1788년이나 1789년 그의 나이 50여세 되었을 때 천주교에 대한 말을 들었다. 그는 천주의 특별한 성총으로 곧 회두하였지만 아무에게도 이런 말을 아니 했다. 하루는 집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50여년 동안 헛살았다. 내가 돌아올 때는 내가 왜 떠났던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니 안심하고 있을 것이며 나를 기다리지는 말라” 그는 곧 길을 떠났고 10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도 없었다. 원시장이 다시 돌아오니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여들어 무수한 질문을 던졌다. 원시장은 미소를 띠며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내가 5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죽을 뻔하였는데 이제는 만세에 생명을 보장할 약을 가졌으니 내일 그대들에게 이것을 설명하겠노라” 그가 입교한지 대략 2년 후 그 가문이 전부 천주교를 신봉한다는 소식이 군수의 귀에 들어갔다.


군수는 포졸을 보내어 그의 사촌 원시보(야고보)를 잡아오라 하였으나 원시보는 자기 친구들부터 정보를 듣고 피신하였다. 포졸들은 원시장에게 물었다. “네 사촌이 어디 갔는냐?” “그는 죽기가 무서워 숨어버렸으니 내가 어떻게 그를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관령에 의하여 천주교인인 그를 체포하러 왔는데 그가 없은 즉 그 대신 너를 체포하겠노라” 원시장은 “그래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곧 체포되었고 아문 어떤 부관앞으로 압송되었다.

“네 사촌은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네 사촌은 천주교를 신봉한다는데 너도 신봉하느냐?” “나도 신봉합니다” “천주를 네가 배반하고 그 교를 버린다고 말하면 내가 사또께 그런 풍문은 완전히 모함이라고 여쭈리니 너는 즉시 방면될 것이다” 여러 날 동안 배교를 독촉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원시장은 항상 거절하므로 부관은 노하여 그를 군수에게 보냈다. 그는 물었다. “네가 천주교를 신봉하다는 말이 사실이냐?” 그는 다시 주리형을 당하고 전날보다 더 혹독한 치도곤을 맞았다.

그의 살점은 너덜거리고 어깨는 으서지고 상처투성이인 등에는 뼈가 드러났다. 이런 참혹한 상태 그대로 옥에 다시 그를 가두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그의 얼굴은 만족감과 즐거운 기색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옥졸 아전 등 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며칠 후 그를 심방하러온 교우에게도 성세성사를 받았다. 그는 아직까지도 예비교우에 불과하였다. 군수는 도감사에게 사건을 보고하였던 바 감사로부터 범인을 때려죽이라는 지령을 받았다.

형사판관 앞에서 하는 셋째 심문에는 신덕의 증거자를 무섭게 하기 위하여 그 주변에 많은 포졸들을 둘러서게 하고 어마어마한 차비를 갖추어놓게 하였다. 판관은 원시장에게 말하였다. “네 생명을 보존하려는 욕망으로 네 마음을 고치게 하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너는 아무것도 듣기 싫어하고 죽기를 원한다고 고집하므로 감사께 이를 알려드렸더니 너를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 마침내 이 방법으로 죽이기를 단념한 군수는 그를 더욱 결박하고 물을 퍼부어 추운 밤중에 밖에 내놓아 얼어 죽게 하라고 분부하였다. 형역들은 굵은 동아줄로 그를 묶어놓고 그 전신위에 물을 퍼부었다. 미구에 원시장은 완전히 얼음으로 덮였다. 이 형벌 중에 그는 오주 예수의 고난만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를 거듭하였다.

 “나를 위하여 전신에 편태를 받으신 예수여 내 구령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생명의 영광을 위하여 내 육신을 덮고 있는 얼음을 보소서” 그 후 주은을 감사하며 자기 생명을 천주께 바쳤다. 닭이 두 번 울 때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때는 임자년(壬子年) 음력 12월 17일(1793년 1월)이었다. 그 때 베드로의 나이는 61세였다.

홍주의 의병들이 홍주를 지키지 위해 몸 바쳐 싸웠듯이 홍성의 천주교인들도 원시장처럼 초인적으로 신앙을 지키지 위해 자기의 목숨을 전혀 아끼지 않는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이렇기에 충청 내포지역의 첫 순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글은 조선에 파견되었던 선교사들이 프랑스인 샤를르 달래신부에게 보낸 것을 수집하여 편찬한 ‘한국천주교회사’와 경향잡지를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