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심 홍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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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중심 홍성1
  • 범상<석불사 주지·칼럼위원>
  • 승인 2014.10.2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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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홍성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지체 없이 가능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것은 홍성의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듯이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노력하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미 여러 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그 정신을 발굴하고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 첫 번째가 석가모니의 심인(心印)을 이어오는 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이신 태고 보우 선사이다.

보우는 홍주 출신이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로 표현되는 수행과 선법은 불교의 진수로서 현재 세계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공민왕의 왕사로 책봉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홍주가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일제의 행정구역개편 이전까지 충청도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주자대전’, ‘주자어류’ 등에 실린 학설가운데 동일한 주제를 다르게 해설한 부분을 고증하고, 주자의 정론을 확정하여 ‘주자언론동의고’를 완성한 남당 한원진의 학문이라 하겠다.

주자는 불교와 유학을 통섭하여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였고,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정치이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적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세 번째는 만해 한용운이다. 한용운은 당시 조선독립에 있어서 조선과 일본과의 투쟁과 대립이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인권의 측면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기계문명을 바탕으로 한 약육강식의 무자비를 인류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게 진리로 신봉되었던 제국주의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한 유일한 사상가이다. 이 글은 위를 전재로 아직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만해의 입장에서 기술한다.

인간의 탐욕이 기계문명을 운용하면서 만들어낸 ‘살상무기’와 ‘환경오염’등은 모든 생명체들의 근원이 되는 지구를 파괴시키고도 남을 만큼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 원인이 되는 편리와 이익추구의 심리는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따라서 ‘그 일이 극단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오며,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라는 물극필반(物極必反),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의 가르침에서 본다면 탐욕과 파멸이라는 극단을 향해 질주하는 인류는 분명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물극필반 반자도지동’은 인류가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끝장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 연후에 또다시 살아남기 위한 방법(탐욕)으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의한 인류행복의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최근 이순신장군을 주제로 한 ‘명량’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만약 이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되었다면 어떤 반향이 일어났을까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만해는 ‘조선독립의 서’에서 인류는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며, 그 정점에는 권력을 이용하여 선량한 사람들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는 지배세력의 비양심적 행위를 지적한다.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기술력과 무력은 인류평화를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일본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만해는 자비를 공부하고 실천했던 승려이다. 자비란 ‘숨을 쉬지 않으면 (나는)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공기와 내 생명이 다르지 않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는 (종교, 국가, 민족 등)사람과 사람을 차별하고, 그것이 진리와 정의로 교육되면서 헤아릴 수 없는 목숨들이 살육되었으며, 죽고 죽임을 찬양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어리석음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만해의 독립운동은 일반적 인식과는 그 궤를 달리 하는 것으로 ‘일본인은 악하고, 조선인은 선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침략과 전쟁이라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으려했다는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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