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 고국서 첫 미사 올린 곳 용수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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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고국서 첫 미사 올린 곳 용수성지
  • 취재 ·한관우/사진 ·김경미
  • 승인 2014.11.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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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성역화·관광자원화가 ‘답’ <18>

제주표착 라파엘호 복원 현장
 

 

용수성지 전경. 김대건 신부상과 제추표착 기념성당(사진 왼쪽)과 기념박물관(사진 오른쪽)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안드레아 김대건(1822~1846) 신부의 제주도 표착을 기념하는 성당이 지난 2008년 9월 완공됐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귀국하다 풍랑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표착한 것을 기념해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포구의 천주교성지에 성당과 기념관을 짓고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기념성당은 연면적 445㎡ 규모의 2층 건물로 내부에는 성전과 강당, 회합실, 유아실 등을 갖췄다. 성당의 정면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의 김가항(金家港)성당 정면 모습을 재현했으며, 지붕은 거센 파도와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

또 등대모양의 종탑은 어둠속에서 빛을 비추어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교회와 김대건 신부의 선교 의지를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제주교구는 이보다 앞서 지난 2006년 60여억 원을 투입해 용수리 성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450㎡ 규모의 기념박물관을 지어 김대건 신부의 편지 사본 등 관련 자료와 제주 천주교 역사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용수성지에 전시하고 있는 원형복원된 라파엘호.

외부는 김대건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의 모형을 형상화 했다. 용수리 포구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9월 상하이에서 한국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귀국하던 도중 풍랑을 만나서 표착했던 곳이다.

이렇듯 제주도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용수 포구는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바다에는 형제 섬으로 불리는 차귀도가 나란히 떠있고 옆쪽으로는 수월봉이 절경이다.

포구 옆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절부암의 푸른 숲이 우거져있고, 숲 뒤로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성당의 하얀 첨탑이 서있다. 이곳이 용수성지이며 성 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성당, 제주표착 기념관이다. 기념관 앞에는 원형 복원된 라파엘호도 전시돼 있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서, 천주교 박해가 한창이던 조선 말기가 그의 시대였다.  김대건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라는 곳에서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 때부터 독실한 천주교도들이었던 그의 집안은 천주교가 배척받던 시대적 상황을 피하지 못해 증조부와 부친도 순교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순교자 집안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10대에 세례를 받았던 김대건은 1836년 12월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마카오로 가게 됐고, 선교사들의 입국통로를 개척하라는 명령을 받고 서울에 들어온 것은 1845년 1월이었다. 다시 선교사를 영입하기 위하여 그해 4월 30일 작은 무동력 목선인 라파엘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를 출발,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그해 8월 17일에는 상해 연안에 있는 금가항성당에서 조선교구 제3대교구장으로 임명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나이 24세였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등 13명이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를 출발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라파엘호는 도중에 큰 폭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고,  상해 출발 29일 만인 9월 28일 지금의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게 됐다.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 일행은 죽을 위험에서 구해준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며 고국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김 신부 일행은 이곳에서 선박 수리를 마친 후 전라북도 금강 하류의 나바위로 입국했다.

김대건 신부는 경기도 용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1846년 6월 5일 외국 선교사의 입국을 돕기 위해 백령도를 답사하고 중국 선원에게 편지와 지도를 건넨 후 돌아오다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1년 후 9월 16일 김대건 신부는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국문효수형으로 25세에 순교했다.   

제주교구는 지난 1999년 11월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 한경면 용수리 포구를 성지로 선포한 이후 각종 순교·헌양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용수리 마을.

당시 순례길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현문권 신부와 용수성지운영위원회 허승조 신부는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가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타고 온 배, 라파엘호가 지난 1999년 8월 154년 만에 다시 닻을 올렸다.

김대건 신부가 표착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 포구에서 라파엘호의 복원 진수식을 거행했다. 지금은 용수성지 제주표착기념성당 앞에 전시돼 있다.

 남제주군 성산읍 오조리 간이조선소에서 복원된 라파엘호는 길이 13.5m, 폭 4.8m, 선체높이 2.1m 크기의 한선(韓船)으로 교회사는 물론 조선사(造船史) 연구자료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원형 복원된 라파엘호를 살펴보면 당시 이런 무동력 목선으로 중국을 넘나들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845년 중국 상하이를 출발한 이 배에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 나중에 5대 조선교구장이 된 다블뤼 신부 등이 타고 있었으며 풍랑을 만나 6개월가량 바다를 떠돌다가 제주에 닻을 내렸다.

당시 제주교구와 가톨릭신문사는 라파엘호 복원을 기념해 1999년 8월 8일부터 19일까지 라파엘호를 타고 상하이에 들렀다가 다시 김대건 신부의 행로를 따라 제주로 돌아오는 해상성지순례를 개최했다.

당시 해상순례단의 책임을 맡은 현상보 신부를 비롯해 성직자 20명, 수도자 10명, 평신도 50명 등이 참여했다”며 “특히 성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1846년 9월16일을 기념해 치러져 그 의미가 더욱 숭고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제주지역 천주교 110여 년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천주교성지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제주도는 종교문화의 관광자원화를 위해 천주교 제주교구, 제주관광공사와 공동으로 성지 순례길 6개 코스 68km를 조성했다.

6개 코스는 김대건길 12.7km, 정난주길 7.0km, 김기량길 8.7km, 신축화해길 10.8km, 하논성당길 10.6km, 이시돌길 18.2km 등이다. 김대건길은 고산성당∼수월봉 해안도로∼당산봉∼용수성지∼신창성당 코스로 한국인 최초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풍랑을 만나 표착한 제주시 한경면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제주의 도보성지순례코스 중 ‘빛의 길’인 김대건길과 제주올레 12코스가 성김대건해안길을 지난다. 또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의 정난주길은 정난주 묘∼보성초등교∼모슬포 제1훈련소∼모슬포성당 코스로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제주로 유배돼 살다가 생애를 마친 정난주 마리아를 기리는 길이다.

제주시 조천읍 지역 김기량길은 김기량 순교 현양비∼서우봉 함덕해변∼신흥포구∼조천성당 코스로 조천읍 함덕마을 출신으로 제주 최초의 천주교 신자이자 순교자인 김기량의 흔적을 만나는 길이다.

제주시 구도심 지역 신축화해길은 황사평지∼별도봉∼관덕정∼중앙성당 코스로 1901년 신축교안 당시 희생된 신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다. 서귀포시 하논성당길은 서귀포성당∼하논 분화구∼홍로성당 터∼서귀포성당 코스다. 제주시 애월읍 이시돌목장에 만들어진 이시돌길은 새미은총 동산∼금악성당∼신창성당 코스로 복음테마공원을 지난다.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예수님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살다 갔다. 교회가 세상과 유리돼 유아독존하는 것은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다”며 “제주는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다. 제주도를 찾는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관광객의 증가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올레길과 숲길, 순례길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제주에도 ‘천주교 성지 순례길’이 열렸다.

제주는 7만여 명의 신자를 거느린 거대 종단으로 성장한 천주교에도 근대사에서 남다른 아픔이 밴 곳이다. 제주교구가 ‘박해 속에 피어난 신앙의 꽃’들의 자취를 묵상 순례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성찰할 수 있는 6개의 순례길을 개장한 의미다.

제주지역의 아픔을 함께 느끼면서, 순교 영성을 함께 느끼는 순례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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