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도보순례 가능한 내포지역 천주교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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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도보순례 가능한 내포지역 천주교 순교성지
  • 취재·한관우/사진·김경미
  • 승인 2014.12.0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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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성역화·관광자원화가 ‘답’ <19>

 

기차와 도보순례로 홍주성지를 찾은 서울 구의동 성당 신자들의 홍주성지 야외 미사 광경.

내포지역 천주교 순교성지

충남 서북부지역인 당진·아산·서산·예산·홍성·청양·보령 등을 포괄하는 ‘내포지역’은 한국 천주교가 시작된 곳이자 많은 순교자들이 나온 곳이다. 이 지역을 통해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된 배경을 이해하고 천주교 신자들이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내포지역의 성지인 공세리성당, 신평성당, 여사울성지, 합덕성당, 솔뫼성지, 신리성지, 해미성지, 삽교 배나드리, 홍주성지, 갈매못성지, 청양 다락골줄무덤 등. 한국의 천주교는 25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다름 아니라 순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에 있어 순교는 최고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천주교 신자들을 체제를 위협하는 사학의 무리라 매도하며 가혹하게 탄압했다. 특히 충청도 지역에는 초대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최양업 신부 등 정신적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지리적 여건을 이용해 곳곳에 교우촌을 형성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순교의 피를 뿌린 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순교성지도 많고 인근 지역의 성지들을 잇는 순례길도 자연스럽게 조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충청도 내포지역 천주교성지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성지 순례’가 종교를 넘어 ‘여행의 또 다른 형태’로 자리 잡은 것과 함께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이 이뤄지면서 충청권 성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충남 내포지역 천주교성지는 한국 천주교가 시작된 곳이자 많은 순교자들이 나온 곳이다.

한국 천주교의 4대 박해로 꼽히는 신유·기해·병오·병인박해를 겪은 아픈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기도 하다. 충청지역 최초로 천주교가 전파된 예산 신암의 여사울성지는 충청 첫 천주교 신자인 이존창 사도의 생가 터가 있는 곳이다.

 

 

 

 

 

내포지역 천주교성지 순례길 안내판.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집안은 이존창 사도에게 교리를 배우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곳은 1866년~1871년까지 계속됐던 한국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가 있기까지 올곧게 신앙의 맥을 이어온 성지이기도 하다.

당진 합덕의 신리성지는 조선시대 가장 큰 신앙 공동체로 참혹한 박해시기를 거치며 순교자들의 본향이 되고 순교자들의 안식처가 된 곳이다. 주민 400여명이 모두 신자인 마을로 기록됐던 곳으로, 조선시대 천주교 수용 초기부터 형성된 가장 큰 교우촌(비밀 신앙 공동체)을 형성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를 겪으며 한 때 텅 빈 마을이 되기도 했던 신리는 마을 전체가 피난했다가 다시 모이고, 주민 모두가 죽음을 당한 순교지다. 교황 방문으로 가장 많이 주목 받은 당진 우강의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생가지가 있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진후부터 4대에 걸쳐 순교자가 살던 이곳은 ‘한국의 베들레헴’으로도 불린다.

천주교에 대한 탄압과 박해가 끝난 후 건립된 첫 번째 성당인 당진 합덕성당과 아산 공세리성당, 신자들이 압송돼 고문과 형벌을 받은 홍성의 홍주성지, 천주교 박해기에 처형된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서산의 해미성지 등도 내포지역 천주교 순례길을 형성하고 있다.

충남도는 교황 방문을 계기로 이곳을 재정비해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세계적인 순례지로 조성하겠다는 복안이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서 스페인 북서쪽 도시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800㎞에 이르는 길이다.

박정주 충남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교황 방문을 계기로 대외적으로 충남의 이미지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며 “내포지역 성지 순례길 88.1㎞를 정비해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교황 방문 이후 본격적인 천주교 순례 상품을 개발,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한 내포(內浦)라는 명칭은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 들어간 부분’을 일컬어 왔다.

내포는 예로부터 물과 통하는 지역이라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천주교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도 지리적 여건이 작용했다. 프랑스 사제들은 바닷길을 따라 내포지역으로 들어왔고, 이 지역에 천주교 교리를 널리 퍼트렸다.

신자가 많았던 만큼 박해 피해도 컸다.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는 1884년 보고서에 “잿더미에서 소생한 내포에 작은 신자집단이 생겼고, 이곳은 옛날 가장 혹심하고 잔인한 박해가 계속 일어났던 곳”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내포지역 천주교성지 순례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여사울성지는 한국인 사제 1·2호인 김대건·최양업 신부의 집안에 복음을 전한 ‘내포의 사도’ 이존창(1752~1801)의 생가 터다. 여사울은 서학이 학문 차원을 넘어 신앙으로 퍼져 나간 ‘복음의 못자리’ 역할을 한 곳이며,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신앙의 맥이 이어졌다.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는 “오늘날(1850년대)의 천주교 신자들 대부분이 이존창이 입교시킨 사람들의 후손들”이라고 기록했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됐고, 내포지역의 천주교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특히 합덕성당은 내포지역 첫 번째 성당이자 충청도 천주교회의 모 본당이다.

김성태 주임신부는 “현재 합덕주민 95%가 가톨릭 신자일 정도로 천주교의 영향이 컸다. 어느 동네를 가도 순교자가 있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합덕성당에서 3.2㎞거리인 솔뫼성지까지 순례길이 이어진다.

물고기 모양의 안내판이 순례길임을 알리고 있다. 물고기(익투스)는 천주교에서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표식이다. 솔뫼성지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생가 터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종조부 김한현, 부친 김제준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1836년 16세였던 김대건은 최양업·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갔다.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고 1845년 조선으로 돌아와 선교활동을 하다 이듬해 효수형에 처해졌다. 사제생활 1년1개월 만이었고, 이때가 스물다섯 살이었다.

이용호 신부는 “라틴어와 불어, 영어, 중국어까지 5개 국어에 능통했던 김대건 신부는 계급사회였던 조선에서 만인의 평등을 꿈꾼 사상가였고, 서세동점의 세계정세를 간파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합덕성당과 4㎞거리인 신리성지는 1860년대 조선에서 가장 컸던 교우촌이다.

1865년 위앵 신부는 400여명 주민 모두가 신자라고 기록했다. 이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완전히 초토화된다. 교회 기록을 통해 이름이 확인된 순교자만 42명인데, 단일 마을로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손 씨 집성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신리에는 손 씨가 한 사람도 살지 않는다.

‘조선의 카타콤바(지하무덤)’로 불리는 이유다. 서산 해미순교성지는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해미는 내포지역의 여러 고을 중 유일하게 진영이 들어선 군사요충지였다. 1790년대부터 100년 동안 천주교 신자 3000여명이 국사범으로 몰려 처형됐다.

사대부들은 충청감사가 있는 공주나 홍주진영으로 이송됐고,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은 이름 없는 서민들이었다. 해미읍성의 처형장이 부족해지자 관군들은 두 팔이 묶인 신자들을 ‘둠벙’(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에 마구잡이로 생매장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둠벙과 유해 발굴 터가 남아 있다.

 

 

 

 

 

 

 

바그네순례길 표지판.

기념관에는 유해 터에서 발견된 치아와 뼛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어린이들의 치아도 발굴됐다는 사실이다. 신자들을 오랏줄로 묶어 죽였던 돌다리 ‘자리개돌’도 보존돼 있다. 홍성의 홍주성지는 공주의 황새바위 다음으로 순교자가 많은 곳이다.

기록상으로는 212명의 순교자가 있는데, 이름 없는 순교자까지 7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정이었던 황일광은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우고 천주교 신자가 됐다.

백정이라 가까이 갈 수도 없었던 양반들이 ‘형제님’이라 불러주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다. 난 두 개의 천국을 봤다”고 말했다.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황일광도 홍주에서 순교했다.

내포지역 천주교 순례길은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당진 우강의 솔뫼성지와 병인박해 때 순교한 다블뤼 주교의 삶이 깃든 당진 합덕의 신리성지로 이어지는 13.3㎞의 버그네 순례길을 비롯해 신리성지에서 내포지역 순교자들이 해미읍성으로 압송되던 한티고개로 이어지는 34.4㎞, 한티고개에서 홍주성지, 갈매못성지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연결이 필요하다.

이곳은 특히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기차와 도보순례가 가능한 순례길로 꼽히는 곳이다. 내포문화숲길과 맞물려 충청 천주교의 못자리인 여사울성지, 박해시절 신자들의 압송로였던 한티고개, 최대의 순교지인 홍주성지와 해미성지로 이어지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순례코스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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