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되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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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되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것들
  • 윤여문 <청운대학교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5.03.0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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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쯤 이야기다. 6살 차이의 막내 누이는 용돈을 절약했는지 아니면 부모님에게서 요령 있게 뜯어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당시 우리 집의 형편으로는 쉽게 살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가끔씩 사오곤 했다. 나이키 운동화처럼 말이다. 어느 늦은 여름 저녁, 누이는 진한 청색의 헝겊 재질에 흰색 나이키 로고가 멋지게 새겨진 운동화를 사왔다. 그 신발을 보자마자 나는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누이와 똑같은 신발을 사달라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떼를 쓰는 나를 어머니는 당해낼 수 없음을 알았는지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나에게도 신발을 사주었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구천팔백 원짜리 나이키 신발이었다. 제일 작은 사이즈였음에도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에게는 터무니없이 컸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신발 끈을 최대한 쪼여 매고 그 길로 앞집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에게 찾아가 느닷없이 백 미터 달리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단거리 육상선수로 대회만 나가면 승승장구했던 그 친구는 새 신발을 내려 보더니 그날 뜬금없는 나의 달리기 제안을 심드렁하게 거절했다. 꽤 오랫동안 신주단지 모시듯 아껴 신은 내 인생의 첫 번째 나이키 운동화였다.

처음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갖게 된 그 비슷한 시기에 막내 누이는 멋있는 벨트를 사왔다. 당시에는 꽤 유명했던 ‘LEE’라는 브랜드의 것으로 베이지 색의 통가죽이 매우 빈티지한 느낌이었다. 이 벨트는 성인 손바닥 반쯤 되는 크기의 타원형 버클로 크게 ‘LEE’ 로고가 중간에 새겨져 있고, 그 버클 테두리에 ‘Founded Kansas 1889, Genuine American Jean’이라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황야의 무법자’에서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카우보이모자와 웨스턴 부츠에 함께 착용했더라면 완벽히 어울렸을법한 클래식한 벨트였다. 어린 나는 이 벨트를 길길이 날뛰는 누나로부터 빼앗아 현재까지 애용해 왔으니 근 30년을 나와 함께 한 것이다. 마흔 몇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청바지에 집착하고 다소 낡고 빛바랜 빈티지 스타일의 패션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벨트이다.

그저께 외출 하려고 청바지에 이 벨트를 매던 순간 버클 연결 부위가 떨어져 나갔다. ‘아차!’ 싶었던 순간 이미 망가져 버린 것이다. 한동안 파손된 연결부위를 이리저리 훑어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는 결론이다. 잠깐 다른 것을 살까 하다가도 너무 오래된 모델이라 구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구한다 하더라도 그 새로운 벨트가 모양은 같아도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이 벨트를 대신할 수는 없으니 무의미한 일이다. 그까짓 벨트 하나에 너무 마음을 둔다 싶다가도 내 촌스러운 유년의 시절과 불안했던 젊은 시절과 그리고 여전히 끊임없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는 현재까지 나와 함께 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면 마치 아끼던 피붙이를 잃은 것 마냥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와 연결된 유일한 끈이 속절없이 단절된 상실의 느낌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오랜 시간 묵묵히 함께 한 이런 낡고, 오래되고, 소리 없이 사라진 것들이 비단 ‘나이키 운동화’와 ‘LEE 벨트’뿐이겠는가. 오래된 것은 거의 대부분 그 자체의 향기와 연륜과 의미를 갖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노교수의 오래된 서재에서 맡을 수 있는 지식인의 품위와 오래된 산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들보의 등골 오싹한 향기와 인자한 할머니의 늘어진 손등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에서 우리는 그들의 긴 인생의 족적을 희미하게나마 유추할 수 있다. 그러한 품위와 향기와 따뜻함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지고, 결국 한 사람의 일생을 대신 설명해 주는 함축적인 단어가 되기도 한다.

나는 훗날 좋은 향기와 다양한 연륜과 한없이 인자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제는 기억도 아스라한 옛날 시골집 뒤뜰 꽃밭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맨드라미와 채송화처럼 열정적이지만 차분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한 삶을 살다가 장인(匠人)이 만든 것이 틀림없는 어머니의 오래된 재봉틀처럼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훗날 ‘LEE 벨트’와 ‘나이키 운동화’처럼 병들고 고장 나고, 종래에는 사라져도 자신은 거친 풍파를 맞을지언정 타인에게 시원한 공기와 향기를 아낌없이 주는 지리산의 고목(古木)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의 나는 꿈도 못 꿀 희망사항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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