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는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그들이 홍성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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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는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그들이 홍성으로 고쳤다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5.06.0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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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주년 기획-일제에 빼앗긴 고유지명 되찾기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 창지개명의 대표적인 사례는 왕(王)이 들어가는 지명을 일본의 왕을 뜻하는 ‘왕(旺, 日+王)’으로 바꾸어 표기했다. 천왕봉(天王峯)을 천황봉(天皇峯)으로 고친 사례.


홍주군의 홍(洪)과 결성군의 성(城)자를 합해 만든 합성지명
일제의 땅이름 바꾸기 속셈 의병항거 등 일제에 저항한 고을
충청을 공주(公州)·홍주(洪州) 머리글자 합해 공홍도라 부름
일본 황국신민화정책 창씨개명 단행과 창지개명 맥 같이해


일제시대 때 한반도의 마을이름과 지명도 침탈의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지명이 한민족의 기상을 일깨운다는 구실을 붙이는 등 일본제국주의는 대대손손 내려오던 산천과 마을 이름까지도 짓밟았다.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쓰는 지명은 열에 서넛은 일제가 식민통치에 편리하도록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예로부터 내려오던 아름다운 우리말 땅이름을 왜색의 한자 등으로 멋대로 표기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일부 지자체에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홍성의 경우도 고유지명을 되찾기 위해 홍주지명되찾기범군민운동본부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창지개명(創地改名)된 고유지명인 ‘홍주’를 되찾자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 잔재라고하면 한 걸음에 달려가 산에 박힌 말뚝도 뽑는데 왜 일제 강점기에 변경된 지명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우리의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을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명(산, 봉우리, 마을 등)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 창지개명이다. 창지개명의 대표적인 사례는 왕(王)이 들어가는 지명을 일본의 왕을 뜻하는 ‘왕(旺, 日+王)’으로 바꾸어 표기하거나, 왕 대신 일본 천황을 뜻하는 황(皇)을 넣거나 구(龜, 나라이름 구, 거북 구)와 같이 복잡한 한자를 단순한 한자인 구(九, 아홉 구)로 바꾸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제가 홍주고을 이름을 바꾸고자 했던 데는 본질적인 저의가 있었다. 이는 홍주성에서 수많은 민초들이 일제에 끝까지 저항한 고을이었기 때문이다.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었고, 이에 홍주의 전 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이 항거했다. 1906년 3월 홍주성에서 일본군과 의병들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끝내 홍주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 900여 명의 열사들이 홍주성에서 장렬하게 순국을 했다. 홍주를 역사와 인물의 고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지역 출신으로 만주 벌판에서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섰던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을 비롯하여, 3·1운동과 독립선언 33인의 한 사람인 만해 한용운 선사, 인근의 윤봉길 의사를 비롯해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의 최영 장군, 조선 초기의 성삼문 선생 등 수많은 역사와 인물, 독립투사들이 탄생한 고장이 바로 홍주(홍성)이기 때문이다. 옛 호서지방의 웅도로서 ‘홍주’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홍주지명 되찾기 범군민운동본부’에 홍주(홍성)의 많은 인사들이 고유지명 되찾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유다.

 

 

 

 

 

▲ 동국지지에 나타나 있는 홍주(洪州)와 결성(結城)지도.

 


조선 인조 때 충청남도 지방을 공홍도(公洪道), 홍충도(洪忠道)라 부른 것은 충청남도 지역의 계수관(界首官)인 공주(公州)와 홍주(洪州), 홍주(洪州)와 충주(忠州)의 머리글자를 합해서 만든 도(道) 지명이었다. 1895년에는 충청남도를 공주부와 홍주부로 나누었고, 이 때 홍주는 20여 개의 군을 관할할 만큼 충남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고을이었다. 지금의 ‘홍성(洪城)’이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하여 행정구역 폐치 분합시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하고, 두 고을 홍주군의 ‘홍(洪)’과 결성군의 ‘성(城)’자를 합하여 만들어진 합성 지명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관선과 민선군수를 합해 세 번의 홍성군수를 지낸 이상선 전 군수는 최근 홍성군이 추진하는 2018년 행정지명 사용 1000년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전 군수는 “태조실록에서 ‘태조 10년(927년) 왕(王)이 운주로 들어갔다. 운주는 지금의 홍주다’라고 기록돼 있는 만큼 태조실록에서 확인한 대로 운주에서 홍주로 개칭된 것이 확인됐다”며 “개칭된 시기가 태조 10년(927년)으로 명기된 것으로 보아서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은 적어도 927년 이전부터 존재하거나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홍주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을 놓고 1018년을 근거도 없이 결론지어 통보한 학자들의 우매한 처사를 강력히 질타한다. 심지어 종전의 연구와도 맞지 않는 억지 결론을 도출한 느낌”이라고 밝히고 “1000년 홍주역사에 먹칠하는 자들이 6년 차이를 따지며 꿰맞추려는 의도가 있는 ‘2018년 홍주지명 1000년론’은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927년 이전부터 홍주가 있었다는 사실이 태조실록에서 주석까지 붙여가며 기록된(운주는 지금의 홍주다) 홍주 지명의 사용 년대를 규명하지도 못하면서 갑자기 1018년을 주장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당장 취소하기 바란다. 현명한 군민들이 주시하고 있으며, 수준 이하의 자질을 한탄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기관에 속해 있거나, 자타가 공인하는 사계의 권위자를 찾아 사용 연대를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우리 땅의 땅이름을 바꾸어 나갈 때 행정구역 정리라는 허울 좋은 이유를 붙였다. 행정구역이 달라졌으니, 지역 명칭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지명 변경의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한낱 구실에 불과할 뿐이다. 행정구역을 변경하더라도 이름을 바꾸지 않고 남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땅이름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그 민족의 정신과 얼을 묶는 중요한 무형적 재산이다. 따라서 일제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 땅에 남아 있는 땅이름을 퇴색시켜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식민지시대에 황국신민화 정책의 하나로 창씨개명을 단행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일본식의 땅이름을, 또는 일본에 있는 그대로의 땅이름을 우리 땅 곳곳에 하나하나 붙여 나감으로써 이 땅이 한국 땅이 아닌 일본 땅임을 새기려는 저의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식민지시대에 추진해 나간 일제의 ‘땅이름바꾸기’ 작업은 꾸준히 계속됐다. 땅이름은 한번 붙여지면 여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는 끈질긴 속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비협조로 인해 그들의 목적은 쉽게 성취되지 못했다. 그런 중에 1945년에 우리가 36년간의 지배에서 벗어남으로써 더 이상의 땅이름의 훼손을 막을 수 있었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지명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해방 50주년인 1995년, 일본 총독부로 사용됐던 중앙청의 첨탑을 제거하는 등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한 각종 사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바뀐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지명을 개명한 것이 시초가 됐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광복 70년이 됐어도 전국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우리의 옛 고유지명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는 곳이 부지기수에 이르는 실정이다. 특히 충남도청이 이전해 오면서 도청소재지가 된 지금의 홍성, 옛 목사고을 중 유일하게 본래의 지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곳, 충남도청 내포신도시에 모든 것이 먹히고 있는 홍성은 아직까지 고유지명 ‘홍주’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상선 전 군수는 “2000년 초 홍주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평소 느껴왔던 홍성의 과거사 현대사를 진솔하게 정리하여 홍주의 사서(史書)인 ‘홍주대관(洪州大觀)’을 발간하면서 홍주지명 탄생 1000년을 확인했고 항상 앞장서서 자신 있게 내 고향 홍성을 자랑했다”며 “옛 고유지명인 홍주이름을 되찾고자 주장했다가 반대하는 자들이 있어 홍성이 시(市)가 될 때까지 미루고 말았지, 당시 홍성을 공식 방문했던 정원식 국무총리께도 건의 드렸고, 동석한 장차관들도 홍주 이름을 찾는 게 당연하다고 공감했었다”고 설명하고 “홍주 지명역사 1000년이라고 자랑했는데 1000년 기념행사 같은 것은 제쳐놓고 겨우 한다는 얘기가 6년 부족 운운하며 근거도 없이 2018년이 1000년이라고 주제넘은 결론을 만들고 있으니, 진정 홍주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더 이상 홍주를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 홍주목사의 관할이던 예산에서는 1000년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가?”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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