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역사의 ‘온주(溫州)’지명 되찾기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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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역사의 ‘온주(溫州)’지명 되찾기 “끝나지 않았다”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5.07.0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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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주년 기획-일제에 빼앗긴 고유지명 되찾기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현재 온양 6동으로 불리는 옛 온주동에 자리하고 있는 온주아문 현판.

온주(溫州)지명 신라 문무왕 3년(서기 663년) 처음으로 사용해
온양6동, 조선시대 관아건물 온주아문·동헌·온양향교 등 위치
당시 ‘아산시의회’ 온주동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적이 없어
성시열 시의원 “온양온천의 지명도와 역사성은 사라지고 있다”

광복70주년 기획-일제에 빼앗긴“우리고장의 옛 지명을 되찾자” 역사성이 깊고 인지도도 높은 원래의 토종이름을 잃어버렸거나 일제 등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고유의 지명을 되찾자’는 ‘복고(復古)’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산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산시 온양6동은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인 온주아문과 동헌(충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6호), 온양향교 등이 위치한 지역으로 1992년 6월 장항선 역사가 현재의 온양중심권에 건설되기 이전까지는 온양장이 섰던 중심지였다. 1986년 온양시로 승격한 이후부터 2003년 8월 31일까지는 ‘온주동’이었지만 2003년 9월 1일자로 ‘온양6동’으로 변경됐다. ‘온양5동’은 아산의 중심지역으로 법정동인 용화동·신인동·초사동·기산동으로 이뤄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화리, 1986년 온양시 승격에 따라 신인리·초사리·기산리가 병합되어 용화동이 됐지만, 온양6동과 마찬가지로 2003년 9월 온양5동으로 행정동 명칭이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온주아문.

하지만 주민들은 ‘온주(溫州)’라는 옛 지명에 관심이 높다. 온주는 글자 그대로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온주향토지에서는 ‘온주(溫州)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은 신라 문무왕 3년(서기 663년) 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마을의 중심에는 충남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된 ‘온주아문(溫州衙門)’이라는 현판이 새겨진 목조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로 이용됐으며, 낮은 남향의 야산을 배경으로 문루와 동헌이 서 있다. 이곳이 온양과 아산의 중심이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곳 주민들은 1345년간 불렸을 ‘온주’라는 마을 이름을 2003년 8월 16일 영문도 모른 채 빼앗겼다. 당시 제4대 아산시의회에서 기존에 불리던 동 이름을 모두 ‘온양’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시킨 뒤 1~6동으로 번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때 ‘온주동’은 ‘온양6동’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공청회나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명칭 변경이 진행됐고, 입법예고조차 없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사전에 알 리가 없었다. 말 그대로 시의원 몇 명이 하루아침에 ‘동 이름’을 뚝딱 바꿔치기 한 것이다. 그리고 1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동 명칭 변경에 대한 혼선과 지역이름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온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빼앗아간 ‘아산시’와 ‘아산시의회’를 원망하며,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아산시는 지난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의 통합으로 ‘아산시’가 출범한 이후 ‘온양’하면 떠올랐던 온천 명소의 이미지가 잊히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옛 지명을 살리는 ‘고육지책’으로 5글자의 다소 긴 ‘온양아산시’ 이름을 고안하기도 했다. 또 아산지역 전·현직 기관단체장들은 지난 2006년부터 퇴색되고 있는 온천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명 변경이 급선무라며 탄원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별무효과라고 전한다. 온주동의 역사는 신라 문무왕 3년에 붙여진 ‘온주’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려 13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름의 가치를 시의원 몇 명의 결정으로 던져버리느냐’고 반발도 해보았지만 단체장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만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온주’는 우리세대를 끝으로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염려하며 지명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주민들의 주장은 원주민들의 숫자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13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옛 고유의 지명 ‘온주(溫州) 지명 되찾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행정동 명칭으로 되돌려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복기왕 아산시장은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과거 주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행정동 명칭 변경을 추진해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며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를 통해 행정동 명칭을 변경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온양6동의 경우 아파트가 건설되고 외지인구가 유입되면서 여론조사에 의한 명칭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 주민들이나 시의원의 주장이다. 성시열 아산시의원(새정치민주연합, 송악·선장·도고면, 온양5~6동 선거구)은 5분 발언을 통해 ‘온양시 명칭 환원과 동 명칭 변경’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 의원은 “1995년 1월 1일 온양시와 아산군의 통합으로 시의 명칭이 아산시로 변경됨에 따라 그동안 온양온천의 지명도와 역사성이 사라지고 있다. 현재의 ‘아산시’를 ‘온양시’로, 현재의 동 명칭을 ‘온양온천1동, 온양온천2동, 권곡동, 신정동, 용화동, 온주동’으로 다시 환원할 것을 주장했지만 관철시키지는 못했다”고 밝히고 “온주동 이었던 온양6동의 경우 원주민과 외지의 유입인구를 포함해 2만7000여명에 이르는데, 원주민은 2000여명에 불과한 실정으로 단체장의 의지가 없이는 시대가 변화하고 잇기 때문에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3년 7월 1일, ‘아산시행정동·리의명칭·관할구역동·리장정수에관한조례중개정조례안’이 아산시의회 이복돌 의원 외 13인의 발의로 상정됐다. 당시 4대 의회까지는 총17개 읍·면·동에서 17명의 시의원을 선출하던 시기다. 당시 동명칭 변경을 대표 발의한 이복돌 의원은 제안 설명을 통해 “그동안 지명도와 역사성을 가지고 온양이란 지명이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사라짐에 따라 온양을 찾는 외래 관광객들로 하여금 혼선을 초래하는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 온양이란 옛 지명을 살리자는 여론이 대두됐다. 온양온천1동을 온양1동으로, 온양온천2동을 온양2동으로, 권곡동을 온양3동으로, 신정동을 온양4동으로, 용화동을 온양5동으로, 온주동을 온양6동으로 개정해 지명도가 높은 온양이란 지명을 사용함으로써 아산의 명칭에 익숙지 못한 외래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함은 물론 주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역사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그동안 지역의 경기불황을 타파하고 역사성을 되찾고자 하는 사항”이라며 동료의원들에게 원안가결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호서지방의 지도.

당시 온주향토지편찬위원회 권태혁 위원장은 “당시 모든 것이 거짓 이었다”고 전제하고 “아산시와 의회에서는 당시 온주동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적이 없었다”며 “행정명칭 변경이 주민편익을 저해하고, 행·재정적 문제를 야기해 효율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말은 ‘온주동’을 ‘온양 6동’으로 변경하기 전에 이미 검토했어야 할 사안이었다”고 설명하고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주민이 아닌 아산시와 의회에 있다”며 반발했다고 전한다. 현행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읍·면·동의 명칭 변경은 조례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온양5~6동’의 명칭 변경에 대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있고 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아산시장 또는 시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해 시의회에서 의결되면 바로 명칭을 변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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