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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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6>
  • 한기원·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8.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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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깃든 문화예술마을, 삼례문화예술촌 골목길

전북 완주군 삼례의 학동마을 등 3개 마을에서는 ‘우리동네 골목길 갤러리’사업이 시골마을 골목길을 바꾸고 있다. 콘크리트 벽과 길로 삭막하고 칙칙함을 더하던 시골마을 골목길이 각종 벽화, 장독 화단, 도예 작품 전시 등 예술성 넘치는 예술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완주군은 지난 2010년 지역협력사업비 5000만 원을 투입해 ‘우리 동네 골목길 갤러리’를 추진,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 속에서 쉼터로 탈바꿈하고 있다. 공공미술사업 수요조사를 통해 골목길 갤러리 조성이 추진되는 마을은 삼례읍 학동마을을 비롯해 비봉면 평치마을, 운주면 기동마을 등 3개 마을이다. 이중 삼례에서 자운영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학동마을은 동네 한가운데에 위치한 시민 텃밭을 중심으로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마을 갤러리를 조성했다.

 

삼례문화예술촌 입구의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을 의미하는 간판이 이채롭다.

삼례역 앞 삼례문화예술촌은 1920년 지어진 양곡창고 활용
1920년대 창고 5동 1970~80년대 창고 등 7동이 작은 무리
전라선 복선화로 기능 상실 완주군매입 2013년 예술촌조성
건물의 원형 훼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

특히 마을 주민들의 재능이 더해진 길가 옆 흙담에는 전통과 현대의 멋이 어우러진 툇마루와 장독 화단이 조성, 시민 텃밭을 찾는 아이들과 부모 등 오가는 이들의 오감만족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비봉 평치마을은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비봉초등학교와 연계해 예술가와 아이들이 함께 한 창작 그림으로 골목길 주변을 채우는가 하면, 학생 및 주민, 한글교실 할머니들이 도예체험을 통해 함께 만든 400여 개 도예 작품을 골목길 옆에 설치해 놨다. 이와 함께 대둔산 진입로에 위치한 운주 기동마을에서는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고민한 끝에, 충청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상징할 수 있도록 대둔산 입구의 옹벽에 육송을 활용한 나무 울타리 길을 만들었다.

삼례에서는 동학농민 길을 만날 수 있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의 땅이다. 1892년에 최대 규모의 삼례집회가 열렸고, 1894년에는 2차 봉기가 있었다. 삼례에서 북상한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결전을 치렀지만 신식 무기를 갖춘 일본군(과 진압군)에 패하고 말았다. 순창으로 퇴각했고 그해 겨울 전봉준이 체포됨으로써 끝이 났다. 삼례역은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로부터 정확히 20년 후인 1914년 11월 말에 문을 열었다. 그사이 1905년에는 일사늑약이 있었다. 삼례(三禮)역은 조선 태조의 4남인 회안대군 이방간이 살고 있어 지나는 이들이 세 번 예를 갖췄다 해 그리 불렸다. 삼례읍의 지명 또한 삼례역이 기원이다. 조선시대부터 호남교통의 요충지였고 일제강점기도 마찬가지였다. 삼례역은 기차역으로서 그 이름을 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철도가 그렇듯 수탈이 목적이었다.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쌀들은 기차와 트럭에 실려 삼례역에 다다랐다. 삼례역 앞에 위치한 삼례예술촌은 1920년에 지어진 양곡 창고다. 일제는 호남 각지에서 올라온 양곡을 군산역이나 군산항으로 보내기 전 삼례역 앞의 창고에 보관했다. 다시 군산으로 옮겨 간 양곡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넘어갔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나서는 농협의 소유로 제몫을 다하다가 전라선이 복선화하며 2010년 그 기능을 상실했다. 이를 완주군이 매입해 지난 2013년 6월 예술촌으로 만들었다. 1920년대 지은 창고 5동과 1970~80년대 지은 창고 2동으로 총 7동이 작은 무리를 이룬다. 각각 세미나실을 겸한 방문자센터와 디자인 뮤지엄, VM아트갤러리, 문화 카페, 책공방, 목공소, 책박물관 등이 입주했다. 가급적 건물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마을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협소하지만 문화예술촌의 색깔을 입히자 어엿한 마을로 변신한 것이다.

 

김상림목공소의 안쪽은 작은 목공 박물관이자 갤러리다.바깥 처마 아래에는 목재들이 빼곡하다.

삼례사거리에서 삼례역으로 이어지는 삼례역로는 제법 번화한 읍내다. 그 사이로 몇 채의 적산가옥이 간간이 눈길을 끈다. 외딴 이국의 집은 낯설어서 쓸쓸하고 또 쓸쓸하므로 낯설다. 아로새겨진 우리의 지난 시간을 그려 짐작한다. 삼례예술촌은 삼례역 바로 앞 방촌길로 들어서 50m 거리다. 모퉁이를 돌아 예술촌 입구에 들어서자 영문으로 삼삼예예미미‘samsamyeyememe’라는 글자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삼삼예예미미는 ‘SamrYe Museum’을 정감 있게 표현한 글자라는 설명이다. 삼례예술문화촌의 민간사업 위탁자인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을 의미하기도 하며, 삼례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고 한다. 부지는 1만1825㎡로 7개 동의 건물이 마당을 네모나게 둘러 자리했다. 입구를 지나자 VM아트갤러리의 함석판 벽과 낡은 사다리가 눈을 맞춘다. 주변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과 7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이 호형호제하며 앉았다. 북쪽에는 이웃한 삼례성당도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1955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로 삼례문화예술촌과 한 몸인 양하다. 첫걸음은 디자인박물관으로 뗀다. 예술의 감성을 더했으나 부러 농협의 로고와 창고의 증명을 남겼다. 아이보리색 외관에 ‘협동생산 공동판매’라는 초록색 글씨도 본래의 용도를 무언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방에서는 익숙한 농협창고 건물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반전이다.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가 창고의 골격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박물관임을 수긍하게 한다.

 

책박물관 입구에 있는 무인책방은 가장 먼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디자인뮤지엄 옆 건물은 김상림목공소다. 목수 김상림의 공간으로 1980년대에 한 차례 증축했다고 하는데, 바깥 처마 아래에는 목재들이 빼곡하다. 목수 김상림은 서울의 인사동에서 액자를 만드는 ‘못과 망치’를 운영했다고 한다. 산청으로 내려가 작업을 하다가 다시 삼례문화예술촌으로 옮겨 왔다는 설명이다. 산청이 고립을 자처한 작업장이었다면 삼례는 좀 더 열린 장이라는 설명이다. 방문객과의 접점도 많다. 내부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안쪽은 작은 목공 박물관이자 갤러리다. 골대패, 먹칼, 먹통 등 오랫동안 모아온 연장은 이름 모를 목수의 나이만큼이나 닳아 늙었으나 세련되리만치 다듬어 졌다. 소장품의 절반밖에 풀지 못했다고 하지만 작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고 있다. 또한 ‘썩힐 수만은 없었던’ 그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통판나무의 나이테와 옹이를 감각적으로 살린 통판액자와 거울은 그 생김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게 만든다. 나머지는 목공 작업장인데, 현장 체험이나 목수학교 등의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사방의 벽으로는 그가 수집한 그림과 사진들로 수놓았다. 작업장은 전시 공간 못지않게 깔끔한데, 그에게는 ‘성전’과도 같은 장소인 까닭이라는 설명이다. 벽에는 세로로 세워진 나무 기둥이 차례로 붙었는데, 이는 습기를 막아 곡물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이라고 한다. 목공소지만 제 몸에 새긴 역사는 다시 양곡창고다. 맞은편의 책박물관도 다르지 않다. 김상림목공소와 쌍둥이처럼 닮은 건물인데, 푸른색 지붕을 겹으로 이었다. 바깥으로 난 1층 처마 아래에는 목재 대신 무인책방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지붕을 떠받치는 들보가 건물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는데, 낡고 닳은 초록색 농협 대문 곁에는 말끔한 나무 책상과 책꽂이들이 열을 맞췄다. 책박물관은 박대헌 관장이 열었다. 그의 이름이 익숙하다면 영월의 책박물관을 아는 사람일 게다. 얼마 전 삼례문화예술촌으로 이사 와 새로이 짐을 풀었다. ‘철수와 영이’의 김태형 화가가 그린 교과서 그림과 송광용 씨가 1952년부터 40년간 그린 만화일기 등은 여전한 정겨움이다. 나이를 먹은 건물의 구석구석의 책은 익숙하게 똬리를 틀었다. 종종 강연이나 헌책 벼룩시장도 열린다는 설명이다. 영월에서 하던 북페스티벌도 지속하고 있다.

예술촌에는 책박물관 외에 또 하나의 책 공간이 있다. 김진섭 대표의 책공방북아트센터다. 책박물관이 완제로서 책의 전당이라면 책공방북아트센트는 그 과정을 펼쳐 보인다. 유럽식 북아트 공방으로 라이너타이프, 레터프레스 등의 인쇄기기가 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기름 묻은 종이 냄새가 금세라도 코끝에 닿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입구 쪽 벽면에 빼곡한 수백개의 활자들 또한 책공방을 실감케 한다. 이렇듯 완주군은 콘크리트 벽과 길로 삭막하고 칙칙함을 더하던 시골마을 골목길이 각종 벽화, 장독 화단, 도예 작품 전시 등 예술성 넘치는 예술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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