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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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8.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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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광복 70주년, 6·25 65주년을 맞는 해이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창간 특집으로 홍성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과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광천공립보통학교 맹휴 관련기사('동아일보', 1926년 5월 5일)(왼쪽)와 서승태 흥학기념비 제막식 사진('동아일보', 1935년 11월 9일).

 

덕명학교 터(오른쪽).

 

덕명학교 터

덕명초등학교 내에 세워져 있는 ‘일농서승태흥학기념비’
덕명학교는 1908년 8월 서승태(1854∼1921)가 설립한 사립학교다. 서승태는 1906년 민종식 의병장이 의병을 이끌고 남포에서 홍주성을 향해 행진할 때 군량미를 제공하는 등 의병을 지원했다. 1908년 8월에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적 아래 덕명학교를 설립했으며, 홍성지역 근대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서승태는 1919년 3월 18일 홍성군 광천면에서 오인섭·이명종·최응모·성인배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 500여 매를 등사하여 주민들에게 배부하는 등 시위 준비를 위해 활동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덕명학교를 계승한 광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1926년 5월 순종황제의 봉도문제로 동맹휴학을 단행했으며, 1930년 2월에는 일제식민지교육에 대항해 동맹휴학을 단행하기도 했다.

 

멸실 전 건물 일부가 남아있던 덕명학교 사진(1980년대).

 

광천공립보통학교(현 덕명초등학교).


장곡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

장곡면사무소.

장곡면에서는 1919년 4월 4, 7, 8일 세 차례에 걸쳐 만세시위가 전개됐다. 4월 4일에는 윤형중·윤익중·윤낙중 형제들의 주도로 매봉산에서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됐다. 이후 4월 7일과 8일에는 장곡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됐다. 7일에는 김동하의 주도 하에 김동완·김용숙·김용제·이화춘·김차제·한상철 등이 화계리 주민들과 함께 마을 앞 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장곡면사무소로 이동하여 계속 시위를 전개했다.밤 8시에는 광성리·가송리 주민 300여 명이 함께 면사무소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부르고, 이어 면사무소를 파괴했다. 8일에도 지역 인사들과 학생 약 60여 명이 밤 11시에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시위로 20여 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태형 90도에서 2년 6월의 형을 언도받았으며, 10여 명이 홍성경찰서에서 태형 60도에서 90도의 형벌을 당했다.

장곡면사무소 뒷산에 세워져 있는‘기미3·1운동기념비’.

 

‘기미3·1운동기념비’앞에 서있는‘애국지사김동하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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