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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수덕사
  • 이병헌<여행전문기자>
  • 승인 2015.08.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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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우리나라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 지역에 가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사찰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불교가 융성했던 나라이고 사찰은 삼국시대에 세워져 지금까지 남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불교 신앙의 요람이 되고 또 휴식처가 되고 있다. 주차장에서 상가지역을 지나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일주문이 나오는데 일주문 왼쪽에 선 미술관이 나오고 그 뒤에 수덕여관이 있다. 선 미술관은 2010년 3월 26일 최초로 불교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원래는 수덕여관자리에 작은 미술관이 있었는데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해줘 고암 이응노 화백이 생전에 머물면서 창작 활동을 했던 수덕여관 아래에 수덕사 대웅전의 맞배지붕을 형상화한 건물로 지어졌다. 선 미술관의 면적은 410㎡ 규모로 2개의 전시실과 수장고,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는데 수덕사를 거쳐 간 승려들의 자취와 기획전시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수덕여관.

선 미술관 바로 위에는 수덕여관이 있으며 지금은 여관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노 화백이 1944년 구입해 작품 활동을 하던 고택으로,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 씨가 3년간 기거했던 곳이다. 또한 이응노 화백이 1959년 이화여대 제자였던 박인경과 함께 프랑스로 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이응노 화백이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프랑스로 가기 전에도 잠시 머물렀는데 이때 이 화백은 여관 주변에 있는 화강암 바위에 직접 추상문자 암각화를 바위에 새겼고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그가 감옥생활을 할 때 옥바라지를 한 사람은 버림받은 본부인 박귀희 씨였지만 이응노는 수덕여관에 잠시 머물다가 미련 없이 다시 프랑스로 떠났다고 한다. 이응노 화백이 프랑스로 다시 떠난 후 본부인 박귀희 씨가 시어머니를 모시며 여관을 운영하다가 2001년에 사망했고, 그 후 주인 없는 빈집으로 방치되다가 수덕사에서 이응노 화백의 손자로부터 수덕여관을 증여받아 옛 수덕여관의 원형을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덕사7층석탑.

일주문을 지나고 잠시 오르면 금강문이 있고 조금 더 오르면 사천왕문이 있으며 위로 오르다 보면 왼쪽에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는 탑이 있는데 바로 수덕사 칠층석탑이다. 이 탑은 만공대선사가 1931년에 세웠는데 기단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위로 오르다보면 거대한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황화정루다. 오른쪽에는 근역성보관(성보박물관)이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서 수덕사의 역사와 승려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계단을 오르면 너른 마당이 나타나고 그곳에 탑이 먼저 보이는데 금강보탑이고 다시 몇 계단 위로 오르면 드디어 수덕사 삼층석탑과 대웅전의 모습이 보인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형태는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국보 제49호로 지정된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세워졌는데 조형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로 여겨지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대웅전 기둥의 중간부분이 부풀려진 배흘림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에 보이는 부재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대웅전의 건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특히 소꼬리모양의 우미량은 그 중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대웅전은 측면에서 보면 더 아름다움이 드러나 보인다. 대웅전 내부는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연등천장으로 돼 있고 과거에는 바닥에 전돌이 깔렸으나 현재는 우물마루가 깔려있다. 대웅전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가구에는 새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수덕사에는 보물 제1381호 수덕사목조삼세불좌상일괄(修德寺木造三世佛坐像一括)과 보물 제1263호인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도 있다.

관세음보살입상.

여느 사찰처럼 수덕사에도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돼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했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됐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 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해 덕숭산 수덕사라 했다는 전설이다.

덕숭산 정상을 향해 1080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사면석불을 만나고 오른쪽 작은 계곡을 지나 소림초당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오르다 보면 만공스님이 1924년에 조성했다는 거대한 크기의 관세음보살입상이 있다.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위로 오르면 2011년 8월 24일 등록문화재 제473호로 지정된 만공탑이 있는데 만공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47년에 세운 석탑으로 전통적 승탑 형식을 탈피한 근대적 기념탑이다. 이곳에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면 정혜사가 있고 지나서 오른쪽으로 산으로 십분 넘게 오르면 덕숭산 정상이며 수덕사에서 한 시간이면 되니 한 번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다.

■ 여행팁
수덕사에서는 매주 일요일 10시에 황하정루에서 일요법회가 열리니 일요일 수덕사에 가게 되면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음의 시간을 가져도 좋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해서 참 나를 찾아보는 시간도 가지고 주변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자연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입장료는 3000원이고 주차료는 4000원이다. 주차장 주변과 입구에 식당이 20여 군데 있는데 산채정식으로 식사를 하고 덕산온천에서 사우나로 피로를 풀면 좋다.

■ 주변관광지
홍성쪽으로 가다보면 한국고건축박물관이 있고, 덕산쪽으로 가면 충의사와 도중도, 그리고 세심천 위 쪽의 수암산 중턱에 보물 제508호로 지정된 삽교석조보살입상도 있고 봉산에는 보물 제794호로 지정된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도 있으니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다.

■ 찾아가는 길
홍성군청 - 조양로65번길(0.6 km) - 홍덕서로(6.6km) - 수덕사로 - 수덕사(약 11km 20분 소요)

■ 수덕사
홈페이지 : http://www.sudeok sa.com/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번지
전화번호 : 041-330-7700

이병헌<여행전문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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