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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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난 것들
  • 윤여문(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5.08.2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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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고물차가 두 대 있다. 10년 된 내 차와 7년 된 아내의 소형차 모두 차량 운행하기에 별 문제가 없다. 운송수단으로써의 자동차 기능 즉, 잘 달리고 잘 서기만 한다면 고물차든 새 차든 상관없다는 것이 내 일관된 지론이다. 하지만 주행과 제동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안전까지 고려한다면 우리의 낡은 자동차는 가끔씩 골칫거리로 변모한다. 나는 주로 한산한 고속도로를 운전하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아내의 소형차는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주행하므로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형차는 안전에 취약할 것’이라는 나의 왜곡된 선입견과 우리 사회가 소형차를 운전하는 여성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배려는 고사하고 소형차에 필요이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것을 여러 차례 봐온 나로서는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내의 차를 처분하고 새 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차가 있었다. 날렵하고 유려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요즈음의 자동차들과는 반대로 투박한 디자인과 사륜구동으로 유명한 회사의 자동차다. 지난 2월 달에 계약을 하고 7월 말에 차를 인도받았으니 거의 6개월을 기다린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차를 인수해 자외선 차단 선팅과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집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 해운대나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등 크고 작은 일정을 계획했다. 하지만 차를 받고 5일 만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됐다. 차를 운행하던 중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실내에서 물소리가 ‘출렁출렁’ 났다. 느낌이 수상해 트렁크를 열어 보니 스페어타이어 넣는 부분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의 물이 고여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지난밤에 잠깐 소나기가 퍼부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를 지하주차장이 아닌 외부에 세워두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도강(渡江)은 기본이고 오지탐험이나 오프로드 등 악조건에서도 끄떡없기로 소문난 그 유명한 회사의 차가 그까짓 소나기에 속수무책이란 것이 말이 안됐다. 즉시 서비스센터에 입고해 이유를 알아본 즉, 차량 결함이 아닌 후방 블랙박스 설치 시에 업체 직원의 실수로 부품 하나를 온전히 마감하지 않아 밖으로 배출되어야 할 빗물이 실내로 유입된 것이다. 즉시 블랙박스 업체에 알렸으나 말 그대로 모든 사단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온 가족이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던 차량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가족 모두가 실의에 빠졌다.

미국 유학시절, 그러니까 기타 연주에 한창일 때 나는 6개의 전자 기타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 서로 다른 브랜드의 기타로 모양과 소리가 제각각이었다. 음악 장르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기타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맛이 제법 쏠쏠했다. 좁은 자취방은 기타와 각종 전자 장치들로 항상 비좁았다. 그 중 내가 유독 아끼는 기타는 깁슨 레스폴 스탠더드라는 다소 긴 이름의 기타로,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사주신 것이니 벌써 25년을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나는 이 기타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낙원상가 2층, 형형색색의 수백 개의 기타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 기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가게의 똑같은 모델보다 싼 이유를 문의하니 수입과정에서 몇 개의 흠집이 났기 때문이란다. 나는 오히려 그 상처 난 기타가 더 측은했고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카페에서 한쪽에 세워 놓았던 이 깁슨 기타를 실수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간혹 발생되는 일이었지만 튼튼한 케이스 덕분에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던 터라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늦게 숙소에 들어와 기타를 꺼내 보았더니 놀랍게도 목 부분이 부러져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저녁도 거르고 잠도 잘 수 없을 만큼 상심했다. 학교 근처에 기타 수리를 잘 한다고 소문난 기술자에게 맡겨 근 두 달 동안 만나지 못했다. 노심초사하며 오직 무사한 몸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랄뿐이었다.

자동차든 기타든 사람이든 세상에는 상처받을 일들 투성이다. 아끼고 열망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 상처의 크기도 비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리를 마친 내 자동차가 더 정숙해졌고, 부러진 기타가 그 이전보다 더 매력적인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그 상처의 결과는 그리 아픈 것만은 아니겠다. 결국 나에게는 상처 이전보다 더욱 애정이 가는 자동차와 기타가 되었던 것이다. 벌레 먹은 과일이 더 맛있고, 고뇌하는 예술가의 작품이 더욱 빛나며, 한국전쟁에서 몇 개의 총탄 흉터를 가지고 있는 내 아버지가 더욱 존경받는 것을 보면 상처는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표시이자 필수품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따진다면, 상처 없는 삶을 사는 것만큼 무료하고 따분한 인생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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