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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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4〉
  • 글=조현옥 전문기자/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5.09.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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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보내는 공소行 편지
▲ 죽림리 공소.

금마 가구점 도로를 지나서 화양삼거리 우측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죽림리 공소’입니다. 아침 8시 반, 태양이 벌써 따갑게 내리 비칩니다. 아담한 계단 두어 개를 오르니 한쪽 가에 자그맣게 성모상이 모셔져 있군요. 자르지 않은 향나무가 건물을 가려 멀리서는 또렷이 보이지 않으나 80년대 세워진 여느 공소의 모습과 비슷하게 회칠된 모습입니다.

▲ 현재 죽림공소 회장 한만섭(로엘).

녹이 많이 슨 종탑을 올려다보면서 잔디에 앉아 목을 축입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초대 회장님 댁에서 누군가 밭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선뜻 일어서 지지 않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 참전했다가 다리를 다친 정진태(루까)회장님은 1955년 이 마을에 공소를 세웠습니다. 원래부터 이 마을에 공소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소 건물 뒤로 현재 공소회장을 맡고 있는 한만섭(로엘)형제님을 만나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묻다가 외지에서 살고 있는 초대회장님의 아드님이 잠시 들렀다는 소식을 듣고 공소 바로 옆집으로 들어갔답니다.

지금은 한 자매님이 귀농하여 살고 계셨는데 반갑다며 시원한 커피를 두 잔 가지고 나옵니다. “시골에선 커피가 달아야 된다”면서 회장님이 너스레를 떠십니다. 고 정진태 회장님의 아들 정민영씨의 도움으로 오래된 앨범과 스크랩 해둔 신문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이십대의 정회장님의 모습과 초가집이 살짝 보이는 그 당시 공소 앞 사진을 찾았습니다. 세상에, 흑백 사진들 속에 금마 화양리 기찻길이 보이는군요. 지금의 지소 근처에 사진사가 살고 있었다는데 당시 주민들이 사진을 찍으러 기찻길을 많이 애용했다는군요. 지금은 없는 금마초등학교의 목조 건물도 보이네요. 앨범에 고이 스크랩된 1980년 7월 20일자 가톨릭 신문 기사가 눈에 띱니다. 지금의 공소 모습이군요. 그 전까지는 초가집이었다는데 150여 신자들의 정성으로 공소 건물을 올렸다는 내용이지만 그보다 먼저 상이용사였던 고 정 회장님의 불굴의 의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 죽림공소 봉헌미사(1980.5.18)

저는 문득 전통적인 농촌 마을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한만섭 현 회장님의 증언으로는 당시 6·25가 끝나고 어렵던 형편에 천주교를 통해 구호물자들이 많이 들어왔고 밀가루, 의복 등을 타려고 모여든 신자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그 중에 계속 신앙을 유지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밀가루만 타서 먹고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대충하던 사람들을 ‘밀가루 신자’라고 칭했다고 하는군요. 또한 상이용사였던 정 회장님은 마을의 궂은일을 해결하고 이끌어가던 리더 역할을 하셨다는데, 예를 들자면 큰 홍수가 나면 물이 지금의 큰 도로 쪽으로 나면서 흙이 다 쓸려 나갔다고 해요. 그때마다 흙이 더 이상 떠밀려 나가지 않게 ‘보’를 설치했는데 그러한 일을 솔선수범하였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신앙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선을 실천하며 사셨다고 보면 될 것 같군요. 즉, 신앙과 삶이 일치했지요. 지금의 죽림공소가 있게 된 원동력입니다.
 

 

▲ 1980년대 후반의 죽림공소 전경.
▲ 20대의 고 정진태(루까) 죽림공소 초대회장.

공소가 새로 건립되던 1980년 5월 18일. 황민성 대전교구 주교님과 이종린 홍성성당 주임 신부님과 관내 기관장님들, 그리고 신자들이 대거 참석했군요. 공소 초입으로 가방을 든 예쁜 여성들이 웃으며 들어오는 사진과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침개를 부치는 사진들이 재밌습니다. 내부도 작았는데 그 곳에서 결혼식도 있었군요? 제 1회 성가대회에 부부가 다소곳이 노래 부르는 사진이 참 아름답습니다. 

환갑을 맞은 죽림리 공소 공동체의 희로애락이 사진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아 감명 깊었지만, 주인공이셨던 초대 회장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애석함이 큽니다. 지금은 신자의 평균연령이 80대라고 하는 죽림 공소를 나오다가 이른 봄 묘지에 피어나는 허리 굽은 할미꽃이 떠올라 서글퍼지더군요. 활발했던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뒤로 하고 이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표정을 하고 있는 죽림공소 건물과 헤어져 대교 쪽으로 계속 걸어갑니다.

양쪽 새끼발가락에 벌써 물집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처음 나선 길이라 그런지 다리가 붓고 피곤이 일찍 몰리어 한 발 한 발 떼기가 더디기만 합니다. 30여분 걸어서 한약으로 유명한 ‘지산 한의원’옆 콩국수집이 있는 대교에 도착했습니다. 한 여름 시원한 콩국수가 별미이지요. 그러나 아직 밥 때가 아닌지라 저는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11시가 될 때까지 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을 사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다시 일어서 응봉성당을 향합니다. 기온이 올라 뙤약볕이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걸어가기에 괜찮은 날씨입니다. 그대도 혹시 이 길을 걸을까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차량을 조심조심 피해가며 큰 길을 따라 북쪽으로 북쪽으로 걷습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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