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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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권위
  • 이미나 <홍성도서관문예아카데미 회원>
  • 승인 2015.10.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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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호되게 당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도 시집살이 호되게 시킨다던가? 선배들은 1년을 단단히 벼르고 별러 왔던 모양이다. “빨리 빨리, 동작 봐라” 마치 어느 군대의 훈련 못지않게 우리에게 기합을 주고 있었다. 잔뜩 으름장을 놓는 선배들이 두려워 우리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동기사랑 선배공경” 구호를 연신 외치며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앞으로 누웠다 뒤로 엎어지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어깨를 잡고 오리걸음으로 걸어가게 시켰다. 그리고 나자빠진 어떤 동기는 선배의 발길질에 걷어차이기도 했다. 실신할 정도로 괴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한 선배가 “선배는 하늘이다. 알겠나? 뭐라고?” 하고 되묻자 아이들은 “네”하고 외마디 소리로 목청을 한껏 높였다. “너희들 앞으로 선배들을 깍듯이 대하고 동기를 사랑해라. 오늘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다. 알겠나?” 하자 아이들이 울먹이며 일제히 “네”하고 대답한다. 이제는 제대로 군기가 잡혔다고 생각이 되었는지 선배는 나직이 깔은 목소리로 “좋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하며 병 주고 약주는 격으로 우리들에게 술과 음식을 베풀며 기합으로 녹초가 된 우리를 치하하고 있었다. 선배가 후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선배에게는 권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위가 지나쳐 권위주의자가 되면 문제가 된다. 선배들이 우리들에게 이유 없이 MT때 기합을 주는 것은 분명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였다.

몇 년 전 우리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한 청년부 담당 전도사님이 부임해 오셨다. 항상 나이어린 청년들에게도 경어를 사용하셨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어떤 일에 헌신하셨어도 알아달라며 나서지 않으시고 항상 자신을 낮추셨다. 그러니 그 분이 가는 곳 마다 칭송이 끊이질 않았다. 나중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 분의 숨겨진 이력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어느 누구가 들어도 입이 딱하고 벌어질만한 서울의 명문대학의 정치 외교학과를 졸업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분은 성도들 앞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출신 학교를 거론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또한 담임목사님보다 한 살이 더 많았지만 목사님의 입지가 당신 때문에 혹여 라도 좁아질까 봐 나이를 한 살 줄여서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겸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도사님은 서울의 모 대학에 합격하여 우쭐한 한 청년에게 교만해서는 안 된다며 누누이 당부를 하시는 등 우리 청년들에게도 항상 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며 그 가르침을 몸소 행하셨다. 그리고 그 후 그 분은 다른 사역지로 목사 임직을 받고 떠나셨는데 그분에게는 그림자처럼 사람들의 존경이 따라 다녔다.

마찬가지로 선배들이 우리에게 권위를 갖고자 했더라면 선배로써 좀 더 겸손하고 아끼고 좀 더 낮은 자가 되어 섬겨 주었더라면 우리는 선배들에게서 진정한 권위를 느끼고 존경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우리 동기들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1년이 흐른 뒤 그 당시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아우성치던 우리들도 주객이 전도되자 그 말이 쏙 들어가고 우리 선배들 못지않지 않게 후배들에게 기합을 주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대학가에서는 학번이 계급이라는 말이 있다. 말하다 말문이 막히면 학번을 물어보고 사회에서도 시비가 붙으면 주민등록증 좀 보여 달라고 한다. 다 나이에 근거를 둔 서열의식, 권위의식의 폐단이다. 진정한 권위와는 나 역시도 동 떨어진 듯싶다. 그럴 때면 언제고 청년부 예배시간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합니다”하는 전도사님의 설교말씀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끊임 없이 반성해 보려 한다. 그리하며 그 분이 몸소 실천 하신 겸손한 삶을 나 또한 행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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