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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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6〉
  • 글=조현옥 전문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5.09.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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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보내는 공소行 편지

엊저녁부터 비가 왔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일어나기가 고민스러웠습니다. 아직 가랑비가 오락가락하여 걷는 중에 큰 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하다가 9시 10분에 늦은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삼성마트에 들려 비옷을 사서 배낭에 넣고 청양 비봉공소를 향해 걸음을 내딛습니다. 주공아파트를 끼고 남쪽으로 살짝 걷다가 송월리 쪽으로 걸어 홍동면소재지로 진입한 뒤 밝맑도서관 옆에 있는 빵집에서 1차 휴식을 하기로 정했습니다.

비봉공소는 저녁에나 도착하겠지만 우선 면소재지에 있는 운월리 공소를 들리고 게서 가까운 구정리 공소를 들렸다가 비봉으로 곧장 걸어갈 생각입니다. 비가 어깨를 살짝 건드리다가 구름만 요란하여 걷기에는 쉽상인 날씨입니다.

고개를 내려가니 오른쪽에 오래된 정미소집이 보이는군요. 동네의 많은 사람들의 양식을 깎아 냈을 정미기는 보이지 않으나 옆에 서 있는 초라한 흙집이 눈길을 끕니다. 요즘 어딜 가도 흙으로 만든 집들을 구경하기 어려운데 그 집을 타고 올라간 ‘며느리밑씻개’가 마치 담쟁이 모양으로 좋은 풍경을 만들어내는군요. 바로 옆 희거나 보라색인 도라지꽃이 조립식 건물의 색깔과 조화를 이뤄 그 또한 아름다운 풍광이 됩니다.

홍동면소재지쯤 접어들자니 하얀 울타리를 가진 주택가에 죽 늘어선 노오란 식용유 통들이 반깁니다. 안에는 초록빛깔의 벼들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습니다. 담장 밑에서 자라고 있는 벼들! 주인부부는 비로 적셔진 화단에 무엇인가 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뜰 안쪽에는 색색의 봉숭아꽃이 만발이네요. 폐기되어야 할 캔에 식물을 심어 지나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그 댁 부부께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리며 지나갑니다.
 

▲ 빈 식용유 통에 벼를 키우고 있다.

이제 유기농의 본 고장이라고 하는 홍동 면소재지에 도착했습니다. 사거리 신호등에서 오른쪽으로 오백 미터쯤 걸어 ‘밝맑도서관’ 옆 ‘느티나무 헌책방’ 겸 ‘그물코 출판사’ 앞에 잠시 섰습니다. 저도 가끔 이곳을 이용하는데 홍성에서 유일한 헌책방이랍니다.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무인 판매대가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들어와서 책을 골라 판매용지에 써 놓고 돈을 넣어놓고 가면 됩니다.

창가에 내놓은 분홍 페츄니아 화분 아래에는 “언젠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으로 아름다운 자태와 향내에 소홀한 꽃을 본 적이 있는가”라는 강신주의 글귀를 적은 칠판이 놓여있습니다. 떨어질 꽃의 운명이 무지막지해도 꽃의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그대도 그대의 자태와 향내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풀무학교 생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연 가게’에 들렀습니다. 매일의 빵을 새로 구워 판매하고 있지요. 이 지역의 갖가지 유기농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원한 더치커피도 판매합니다. 여기서 1차 휴식을 취합니다. 빵 하나와 커피를 시켜 놓고 조용히 앉자 실내를 둘러봅니다.

주변의 나뭇가지와 풀을 이용하여 동그란 리스를 만들어 걸어 놓았군요. 아이와 빵집에 들른 언덕배기에 있는 목공소의 아저씨도 만났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갓골 어린이집 아이들이 논둑길을 산책하고 돌아오는군요. 색색깔의 아이들의 옷과 초록색 ‘작은 가게’ 앞 정원이 어우러져 진풍경을 이룹니다.
 

▲ 자연의 선물가게 내부.

다시 홍동면사무소와 풀무생협 건물 사잇길로 접어듭니다. 오른쪽은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홍동천변 벚꽃길이 늘어서있습니다. 홍동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마을회관에서 오른쪽언덕으로 향하니 아주 오랜만에 보는 홍화, 잇꽃이 밭에 한 가득입니다. 오렌지 빛의 홍화는 옷감에 물들이는 재료로 많이 쓰이는데 그 씨앗마저도 오렌지 색깔이어서 제가 무척 좋아합니다.

바로 앞에 있는 똑같은 귤색지붕 집 담장 밑에는 접시꽃이 한창입니다. 주변의 봉숭아꽃이 어서 오라는 듯 인사를 하는군요. 바로 여기가 홍동 운월리 공소 입구입니다. 1970년대 후반의 비슷한 건축양식을 갖고 있네요. 시멘트가 부족할 때라 대충 지어진 듯한 창고형 건물 말입니다.

현관위로 높이 세워진 나무 십자가를 보니 무척 수수한 공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새로 성모상을 현관 쪽에 세웠나봅니다. 꽃밭 가에 있는 예전의 성모상이 있었을 법한 자리에 서서 잠시 기도를 드립니다. 땀에 젖은 등산화를 벗고 공소 바닥에 앉으니 열어 둔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오른쪽 작은 방은 레지오기도모임 장소로 쓰이나 봅니다. 누군가 갖다 놓은 꽃에서 백합향기가 납니다. 공소 건물의 내부에는 왜 이리 창문들이 많은지요? 열려진 창을 통해 마을을 내려다보니 몇 시간쯤 쉬었다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 홍동 운월리 공소.

1997년에 귀농을 한 현재의 공소 회장님(이기영·베드로)의 말씀으로는 요즘 공소 참례하는 신자는 20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본당신부님(맹세영·사도요한) 주례로 미사가 있고 나머지는 공소 예절로 진행되는 이곳은 다른 공소와 달리 도시에서 귀농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하네요.

홍동이 귀농인들에게 인기 있는 마을이어서 그럴까요? 초대 공소회장님(오헌영·F.하비에르)이 처음 시작할 당시는 옆 마을인 구정리 공소에서 분가했다고 하는데, 조금 쉬었다가 그곳으로 갈 예정이니 곧 자세한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군요.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공소 건물 창문을 죄 열어 놓고 가만가만 기도하는 사람들을 상상해봅니다. 현관 신발장에 잔뜩 채워진 겨울 털신을 보면서 그동안의 공소 사람들의 바쁜 생활들을 되짚어봅니다.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모두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온다는 이 분들의 공동체성을 기억합니다.
 

▲ 갓골 어린이집 아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교통이 불편하였던 70년대 시절 성탄 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오늘 저처럼 몇 시간을 걸어 읍내 성당에 오던 그들을 그려보는 겁니다.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걷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려지지요? 지금은 너도나도 차가 있어서 읍내의 본당 미사에 갈 수 있다고 공소가 그 역할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에선 효율성의 문제가 대두되지만 그래도 이 작은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기억해야하지 않을까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구정리 공소로 향합니다. 그대에게도 이 공소여행이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의 영혼이 건강하기를.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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