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고유지명 바로잡아야 역사가 바로 선다
상태바
일그러진 고유지명 바로잡아야 역사가 바로 선다
  • 한관우·한기원 기자
  • 승인 2015.11.06 1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복70주년 기획-일제에 빼앗긴 고유지명 되찾기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 호미곶면사무소 전경


우리나라의 지명들은 조선인의 기(氣)를 떨어뜨려버리겠다는 일제의 악의적인 기도에 의해, 혹은 일본인이 발음하거나 표기하기에 까다롭다는 이유만으로 상당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정부차원의 고유지명 되찾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던 지난 1991년 광복 50주년 이후에 걸친 고유지명 되찾기 실적은 아직까지는 미미한 실정이다. 경기도는 28곳을 대상으로 발굴해 이중 18곳을 바꾸고 10곳은 주민 반대로 그대로 두었으며, 강원도는 6곳 가운데 2곳은 바꾸고 주민이 변경을 반대한 4곳은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전남은 주민들이 5곳의 고유지명 회복을 요청했으나 심사결과 3곳만 고쳤고, 전북은 12곳을 개정했거나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북은 조사대상 17곳 중 9곳은 옛 이름으로 바꾸고 나머지 8곳은 일제 이전부터 사용해왔던 것으로 밝혀져 그대로 두었다. 아무튼 경북과 경남, 충북과 강원도가 가장 많은 지역의 고유지명을 찾았거나 바꿨으며, 또 바꾸는 작업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의 고유지명은 글자 하나하나에 우리의 삶의 흔적과 혼이 담겨져 있는 생생한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에 의해 사라져버린 고유지명을 되찾는 사업에 정부와 국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그러진 우리의 고유지명을 바로잡아야 우리의 역사가 바로 선다는 점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지역 브랜드 가치 제고 등을 위해 지명을 바꾸는 자치단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브랜드 가치 및 관광자원 개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명을 바꾸는 자치단체들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주민 2000여명은 지명을 세종대왕면으로 바꿔달라는 건의서를 시에 제출했다. 세종대왕 영릉(英陵)이 위치한 점을 근거로 지역의 새로운 콘텐츠 창출을 위해 지명 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생각이 다른 주민들은 “세종대왕이 최소 행정기관 단위인 면을 대표하는 인물로 폄하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자 여주시는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주시 관계자는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아도 조례규칙 심의위원회와 조례 개정 등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행정구역 명칭을 보다 ‘눈에 띄는’ 이름(지명)으로 바꾸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주시 사례처럼 주민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거나 인접한 지자체 간 마찰도 생기고 있다. 지난 2012년 경남 함양군은 마천면을 지리산면으로, 경북 영주시는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각각 명칭을 변경하려 했지만, 경남 산청군과 충북 단양군의 항의로 사실상 무산됐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지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경북 울진군 서면과 원남면의 명칭이 각각 금강송면과 매화면으로 바뀌었다. 서면과 원남면의 유명 관광지인 금강송 군락지와 매화나무 단지가 아예 지명이 된 것이다. 설문에 응한 서면 주민(96%), 원남면 주민(72%) 또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찬성했다는 설명이다. ‘지명이 갖는 역사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내 묻혀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울진군이 경복궁 기둥으로 쓰인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소나무 금강송이 자라는 서면을 금강송면으로, 매화나무 군락지가 있는 원남면을 매화면으로 바꿔 애향심과 자긍심 고취에 나선 이후 주민들의 반응은 ‘잘 바꿨다’로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북 고령군은 지난 4월 2일 고령읍의 이름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 고령읍 일대는 1600여 년 전 대가야의 도읍이다. 고령군은 이런 대가야의 역사성을 브랜드화해 관광산업 등 지역발전을 꾀하기로 했다. 의견조사에 참여한 주민들 역시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동의(83.1%)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령군은 지명변경을 계기로 1600년 전 대가야국 수도였던 지역의 역사성과 특색을 살려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대가야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고령군은 대가야고분군과 대가야박물관,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등 대가야의 위대한 유산과 이를 바탕으로 한 유·무형의 콘텐츠를 개발해 차별화된 대가야 역사·관광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고령군은 지산동일대 대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대가야체험축제, 대가야문화누리 사업 등을 추진해 대가야 정체성 확립을 통한 군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방침이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대가야란 브랜드를 선점하고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미래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대가야를 주제로 한 문화관광산업은 물론 농축산업, 상공업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줘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앞서 포항시는 지난 2010년 1월 대보면을 ‘호미곶면’으로 바꿔 관광자원 활용과 지역 브랜드 가치 제고에 나서고 있다. 대보면의 위치와 형상 등이 호랑이 꼬리를 닮은 데 착안한 것이다. 이후 호미곶면의 해맞이광장, 상생의 손, 연오랑 새오녀상,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박물관, 한반도 형상의 호랑이 조형물 등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게 관계자나 주민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이밖에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과 김삿갓면, 평창군 대관령면,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보은군 속리산면,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읍 등도 명칭 변경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인 대표적인 사례들로 꼽히는 지역이다. 또한 부정적인 뜻으로 인식되거나 외부인에게 생소한 지명도 최근 잇따라 변경됐다. 앞서 지난 2월 충북 충주시 가금면은 중앙탑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가금면은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흥면과 금천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현재까지 계속 이 지역명이 사용됐지만, 날짐승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명칭 변경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던 곳이다.

결국 충주시 가금면은 이 지역의 국보 6호 중앙탑의 이름을 따 지명을 변경하기로 하고, 여론조사 결과 주민 찬성(87.9%)을 받아 명칭을 바꿨다. 비슷한 시기 부산시 강서구는 천가동을 가덕도동으로 지명을 변경했다.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잘 알려진 가덕도는 대구와 숭어 등 해산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부산의 자랑이다. 가덕도가 속해 있던 천가동은 외부인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인 데다 주민들 다수가 명칭 변경에 찬성(90%)해 지명이 변경됐다. 더욱이 섬 이름을 지명으로 쓰면 인지도 또한 높일 수 있다는 게 부산 강서구 관계자나 주민들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2009년 포항 대보면은 해맞이로 유명한 호미곶을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호미곶면으로 이름을 바꿨고, 강원 영월군은 한반도 모양을 닮은 선암마을이 있는 서면을 한반도면으로, 김삿갓의 고장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각각 명칭을 변경한 이후 지역의 이미지가 바뀌면서 한마디로 뜨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지명을 변경하거나 바꾼 지자체들은 저마다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서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1000년 역사문화의 도시, 충남도청소재지로 변한 홍성군이 과연 ‘홍주’라는 옛 고유지명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는 홍성군과 주민들의 몫이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와 맞물려 홍성의 옛 고유지명 ‘홍주(洪州)’를 되찾는 일은 일제에 의해 빼앗기고 일그러진 고유지명을 바로잡아야 역사가 바로 선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끝>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