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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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11>
  • 한기원·장윤수 기자
  • 승인 2015.10.2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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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공구골목, 고단했던 삶의 풍경이 있는 예술거리

1920~60년대 주거구조변천사 보여주는 한옥들도 1000채 흩어져
1990년대 이후 밀어닥친 도심재개발의 광풍도 건드리지 못한 곳 

 

 

 

 

 

▲ 북성로 공구상가들이 퇴근을 하면서 물건을 정리정돈한 모습.


대구 북성로의 공구골목은 고단했던 삶의 풍경과 근대유산이 보존된 예술의 거리로 변모했다고 한다. 북성로 골목은 400여 채 근대건축물이 남은 타임캡슐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읍성을 허물고 쌀 창고와 백화점 들어선 번화가로 조성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전국 최대의 공구상골목으로 바뀐 기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심지어 1990년대 이후 밀어닥친 도심재개발 광풍도 이곳을 건드리진 못했다. 워낙 쇠락해 땅값이 1990년대 초반 수준이고, 대구 도심이 남쪽과 달서구로 이동한 탓이 컸다는 설명이다.

멋들어진 아치형 창을 지닌 옛 자유당지부와 1930년대 아르데코 양식의 물결무늬로 겉벽을 장식한 옛 야마구치도예점 같은 근대건축물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1920~60년대 주거구조 변천사를 보여주는 개량형 한옥들도 1000채 이상 흩어져있다. 이런 지역사의 사연을 업고 북성로 공구골목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가 주시하는 도심재생의 새로운 모델로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정말로 애잔한 골목길의 스토리를 찾아볼 수 있다. 1930년대 미곡창고로 쓰였던 근대건축물을 보존하여 개장한 곳으로 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일제강점기 건축물 보존과 한국 최대의 산업공구거리인 북성로를 상징하는 거점으로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할 프로젝트형 박물관이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지만 과거에 대구읍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위를 따져서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란 이름이 붙었다. 북성로는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해방 전까지는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적산가옥이 많던 거리였다. 신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왔기에 사람과 돈이 빠르게 움직이던 곳이었고, 식민지 하에서 대구경제를 움직인 최고의 번화가였다. 특히 일본인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이 남다르다. 당시 대구도심을 중심으로 북동에 일본인이 살고, 남서에는 한국인이 살았다. 그리고 도심의 발달은 철저히 일본인 위주로 진행되어 시가지 간선도로의 건설과 확장, 상하수도 개설까지 전적으로 일본인들의 생활에 맞추어 건설됐다. 그 결과로 북성로 일대는 곧고 깨끗한 도로가 건설되어 대구 상권의 중심이 된 것이다. 백화점, 목욕탕, 철물점 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섰고, 특히 1920년대에 대구에 처음 등장한 양복점은 북성로에만 있을 정도였다. 요릿집, 술집이 즐비해서 대구 최고의 번화가를 만들기에도 이르렀다. 지금도 북성로 곳곳에는 일본 적산가옥과 상가 등의 건축물이 남아있어 그 시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쟁시기 향촌동과 더불어 해방문학의 진원지 이름 알린 곳
북성로 재발견프로젝트, 건물원형 개보수시 최대 4000만원 지원

 

 

 

 

 

 

 

▲ 북성로공구박물관.


한국전쟁시기에는 향촌동과 더불어 해방문학의 진원지로 이름을 알린 곳이기도 했다. 오상순,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유치환, 구상, 최정희, 정비석, 장만영, 이중섭 등이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 무너지고 헐어진 채 방치 된 북성로 골목 이곳저곳에는 그 시절 예술인들이 드나들던 ‘꽃자리다방’ 등 역사적 증거들이 남아있다.

이후 한국산업의 역동기에 북성로는 공구상들이 밀집한 거리로 이름을 날렸다. 북성로 공구거리가 만들어진 것은 60여 년 되는데, 유명해진 것은 30여 년 됐다고 한다. 한강이남 최대의 공구거리로 이름을 알렸지만 최근에는 대구 산격동에서 그 명맥을 이어주고 있다. 전성기에 비해 많은 가게와 공장들이 문을 닫았지만 북성로에서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북성로 우동과 연탄불고기 정도다. 이것이 유명해진 이유는 택시기사들이 밤참을 해결하기 위해서 들르던 것이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부터다.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 가족들이 모두 나와 생업으로 고기를 굽는 것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되어 대구 북성로를 알리고 있다.

대구의 옛 도심인 북성로 동북쪽 태평로변의 집합주택 골목은 답사여행을 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대구 도심재생 작업을 벌여온 사단법인 시간과 공간연구소의 권상구 이사가 이끄는 근대건축기행길이다. 마구잡이로 지었지만 삐죽삐죽 난 들창과 문에는 플라스틱 차양을 달고, 화분을 놓았으며 공동화장실까지 마련한 삶내 나는 풍경이다. 답사객들에겐 생각에 빠지게 하는 이 집합주택은 북성로 근대유산 요지경의 서막이다. 단연코 북성로는 400여 채의 근대건축물이 남은 타임캡슐이다.

한편 대구 중구청의 ‘북성로의 재발견프로젝트’는 ‘북·서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사업’ 협약식 등을 통해 해답을 찾은 대표적 사례다. 시간과 공간연구소, 대구사회적기업센터와 중구청이 결성한 리노베이션위원회의 주도로 북·서성로의 근대건축물 입주를 신청한 11명과 설계를 맡을 16명의 건축사가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 사업은 북서성로 주변의 근대건축물 11동을 복원하고 독립영화전용관, 아트샵, 위안부 역사관, 커피숍 등을 들이는 것이 뼈대다.

건물 외관을 원형에 가깝게 개보수하면 공사비용의 범위 80%안에서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한다. 개보수를 마치면 5년간 원형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협력해 도시재생과 사회적 기업을 위한 투자를 함께 유치한 것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수년간 공구장인의 손기술과 문화예술의 궁합을 맞추려는 민관의 작업이 신뢰를 끌어낸 셈이다.

지난 2011년 시간과 공간연구소 활동가들과 중구청이 건물주를 설득해 공구가게를 개조하고 ‘삼덕상회’란 카페를 북성로에 개설한 게 시작이었다는 설명이다. 1936년에 지은 일본식가옥을 복원해 국내 유일의 공구박물관을 만들었다. 낮에는 장인들의 거리, 밤에는 노년층의 놀이터였던 곳에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숨결도 스며들었다. 이곳에는 인디밴드 연습장과 작업공간을 갖춘 스페이스 우리가 2011년 5월 문을 열었고, 사회적기업센터의 주도로 자전거 복합문화공간인 ‘삼거살롱’(대표 전수윤)은 아트자전거 제작과 예술가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소셜마켓과 건축사무소 아키텍톤 등도 들어서 북성로의 문화공간을 찾아드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권상구 이사는 “원형 복원에 집착하지 않고, 거주자에게 실리를 줄 수 있는 사회적 자본 만들기, 신구세대가 함께 하는 공간 만들기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리노베이션’의 목표는 공구상 장인의 기술력과 문화예술인들이 만나는 ‘테크아트’의 결합이다. 지난 2008년부터 대구근대골목투어를 만들어 반향을 일으켰던 권상구 이사가 주도한 구상이기도 하다. 리노베이션위원회는 마을큐레이터제, 공구상 장인들의 기술레시피 수집사업, 북성로 역사 스토리텔링, 원로 장인의 성장사를 듣는 강좌와 30인 자서전 발간, 작가와 함께 하는 기술전승워크숍 등의 추진이다. 가구, 가정용품을 직접 만드는 DIY를 위한 기술장인의 레시피 북을 만들고 시민체험축제를 여는 계획도 마련했다. 공구박물관에 사재를 쏟은 권 이사를 비롯해 실무 작업반 ‘마르텔로’를 만든 전충훈 대구사회연구소 사무국장, 엄태수 대구시민센터 부이사장 등이 사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성로 공구골목에는 300여 가게들이 모여 있다. 최근에만 하더라도 각 매장 앞 길가에는 갖가지 공구 용품이 널려 있었다. 진열대는 도로 일부까지도 점령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구 가게들은 자발적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게들은 야외 진열대를 1m 이상 내놓지 않기로 약속했다. 김대식 주민자치위원회장(전 공구골목상가연합회장)은 “오랫동안 옛 모습 그대로여서 가게들이 변화하길 두려워했지만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전체적으로 업주들이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었던 결과”라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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