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 원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8일, 대교공원 한 켠에 마련된 천막 안으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뒤따라 들어가 보니 난로 하나없이 비닐로 찬기만 간신히 막은 천막 안에 1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연령대는 6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곳에서 일 평균 40~50여명의 노인들이 무료한 하루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고령자인 95세 김사순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채 이곳을 찾고 있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기 무료한 노인들이 복지관이나 경로당이 아닌 비좁고 추운 천막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종화(78·남)씨는 “평생을 틀에 갇혀 짜여진 각본 처럼 살아 온 노인들은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며 “접근성도 떨어지고 정해진 규칙에 맞춰진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데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재선(69·남) 씨는 “복지관도 배우려는 사람들한테 열려있지 보통은 그냥 찾아 가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 않냐”며 “무료한 일상을 달래려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이라도 만나려다보니 공원에 다들 모여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로당은 어떠한가? 정종화 씨는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경로당에 주로 할머니들이 더 많이 모여 있다 보니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유교적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세대의 할아버지들은 함께 자리하기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상예(74·여) 씨는 “경로당에 가서 화투라도 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노인들 사이에서 돈 없으면 경로당에 가지도 못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고 멋쩍은 듯 웃으신다. 베이비 부머 세대 고영호(61·남) 씨는 “탁 트인 공간에 주변에 운동시설도 갖춰져 있어 노인들이 이곳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제는 노인문제를 노인 계층과 심리에 맞춰 좀 더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원에 노인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고 지팡이까지 만들어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정낙섭(82·남) 씨는 “2014년 공원 한 켠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 노인 한분을 만나면서 차 한잔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다보니 서로에게 위로가 됨을 느껴 쉼터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며 “이 곳은 노인들이 언제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좀 더 많은 노인들이 편하게 다녀갈 수 있길 바란다”며 공간 마련에 대한 행정기관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날 대화를 나눈 노인 대부분은 편하게 시간을 보내며 여가를 즐길 곳이 부족한 현실을 아쉬워했고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활동다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은퇴한 뒤 노인이 되어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을 드나들며 책을 펴낸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는 그의 저서 ‘퇴적공간’에 “노인 정책은 지금처럼 노인을 복지센터 등 시설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정과 소규모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