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상회 골목에서 만나는 광천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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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상회 골목에서 만나는 광천의 어제와 오늘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2.04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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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탐방

광천시장은 새우젓 특화시장으로 매년 가을과 겨울이면 김장철을 앞둔 관광객들의 발길이 붐비는 곳이다. 특히 새우젓골목은 현대식 장옥과 화려한 간판들로 손님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시장 한편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급작스레 과거로 회귀하는 듯 낡은 간판과 장옥, 가게들이 남아있는 골목이 등장한다. 흘러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은 골목 중심에는 ‘대풍상회’라는 낡은 간판의 어구 가게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수십 년 전, 이곳 대풍상회 골목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골목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김영완 대풍상회 대표, 박용두 중앙철물점 대표, 표동기 어르신 등 주민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함께 광천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편집자 주>
 

“홍성에도 없던 문방구가 광천에 있었지”
일제강점기

당시엔 싸전, 지금 말로는 쌀집이 참 호황이었지. 그때만 해도 의, 식, 주가 가장 중요했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때니까. 지금도 대풍상회 위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싸전이 하나 남아있는데, 그 주변에 큰 고목나무가 하나 있었어. 그 고목나무 아래에 물산조합이라고, 지금 말로 하면 마트라고 해야 하나. 난쟁이 일본사람이 운영하던 작은 백화점 같은 곳이 있어서, 아이들 장난감이니 각종 생활필수품이니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팔았었어. 또 지금 광천 덕흥서점 자리에서는 일본사람이 문구점을 운영했었어. 당시에는 광천읍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배가 오갔기 때문에 홍성읍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물류의 중심지였어. 문구점까지도 광천에만 있다보니 홍성 사람들이 전부 이곳까지 와야만 했지. 그 당시엔 덕명학교와 홍성학교가 라이벌이 돼서, 홍성에서 애들만 왔다 하면 싸움이 붙곤 했지. 그래서 꼭 홍성 학생들은 광천에 올 땐 무리를 지어서 다녔던 기억이 나. 또 싸전 주변에 아직도 남아있는 짜장면집 봉래각은 중국에서 온 왕 서방이란 사람이 운영하던 가게야. 지금은 그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지.
광천에는 일본사람이 한 열 사람, 중국사람이 네 다섯 사람 살았었는데 일본사람이 많이 살았던 이유는 석면 광산 때문이었어. 석면광산 책임자가 전부 일본사람이었거든. 광천 주민들은 석면 광산에서 일을 하며 살았고, 일본사람들은 관리를 했었지. 덕명학교 위쪽에 일본인 관사 10여 호가 쭉 자리 잡고 있었던 기억이 나. 그 사람들도 해방 이후엔 모두 사라졌지만 말야.

“충남 서부 지역의 중심, 광천시장”
해방 이후

해방되면서 일본인들이 자취를 감췄지. 부동산만은 처분하지 못하고 자신들 재산을 싼 채 떠났어. 그리고 광천도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엔 안면도를 비롯한 각종 섬에서부터 홍성, 보령, 청양, 당진, 예산 등 곳곳에서 오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어. 이 대풍상회 골목 앞도 사람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지. 장사하는 사람들은 각종 생필품부터 먹을거리까지 있는 것 없는 것을 전부 가지고 나와 팔았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물건들을 쓸어가기에 바빴지. 특히 섬사람들은 장날에만 밖에 나오려니 생각하고 살았었어. 옛날 광천에선 ‘개도 오백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왕성한 거래가 있었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참 호황이었어. 특히 보령시 천북면 사호리나 장은리,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에서도 광천시장까지 와서 장사를 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새벽 두 세 시에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걸음을 재촉했어. 전날 잡은 김이며 각종 해산물을 머리에 등에 지고 걸어서 광천쯤 오다 보면 동이 트기 시작하는 거야. 지금은 다들 버스타고 장에 나와 장사도 하고 물건도 사고하는 좋은 세상이 됐지. 하지만 그 때문에 이 대풍상회 골목도 지금처럼 쇠락하고 말았어. 안면도에도 연육교가 생겼고, 광천은 바닷물이 막혔으니까. 또 전국에 못 가는 곳이 없어서 지금 광천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줄고 말았어.
 

“승용차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던 큰 홍수”

1990년대
90년대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홍수겠지. 바닷물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내리면 가끔 물이 역류하곤 했는데 95년쯤이었나.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 붓고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시장통이 전부 물에 잠긴 적이 있었어. 읍사무소에서는 대피하라는 방송을 연신 해 댔고, 사람들은 손 쓸 틈도 없이 전부 덕명학교로 피신을 했었어. 물이 얼마나 차올랐는지, 승용차가 전부 잠길 지경이었지. 물이 빠지고 난 뒤에 돌아온 시장은 엉망진창이었어. 이불집이나 옷 가게들은 물건도 참 많이 버려야했지. 집집마다 물이 들어차 잃어버린 물건도 많았고. 특히 사진 같은 것을 많이 잃어버렸어.
그리고 한 숨을 돌리던 찰나에 다시 한 번 홍수가 찾아왔지. 그나마 건졌던 물건들도 거의 다 버려야했고, 사람들도 아주 고생했던 큰 홍수였어. 참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고 어려운 생각이 많지. 지금은 바닷길이 막혀서 더 이상 그런 홍수는 날 수가 없지만, 참 잊지 못할 추억이자 기억이라네.
 

“번영했던 시절도, 지금도 변함없는 골목”
현재

지금의 광천시장은 새우젓과 김이 특화된 시장이고, 아직까지도 장날이면 사람들이 붐비지.
하지만 옛날만큼은 아니야. 번성했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정도지. 그럼에도 광천시장은 아직도 정이 많고 활기 넘치는 시장이기도 해. 토굴새우젓 하면 역시 광천이고, 그만큼 새우젓 축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니까. 대풍상회는 오래됐다는 이유 말고도, ‘어구’를 팔던 가게라는 사실만으로도 광천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비록 모두 막혔지만,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을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가게이기도 하니까. 대풍상회 골목이 언제까지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번영했던 옛 시절에도, 사람들이 뜸한 지금도 여전히 골목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지. 새롭게 달라지고 편리한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옛 모습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골목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참 소중한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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