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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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
  • 한지윤
  • 승인 2016.04.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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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키가 자그마하고 다소 뚱뚱한 듯한 여자는 이제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남자의 커다란 몸집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소영이는 순간 번개처럼 달려들어 우선 사나이의 얼굴을 순식간에 냅다 후려쳤다. 사나이는 당황하여 여자에게서 몸을 떼며 소영이에게 달려들려하자 소영이는 그의 손목을 잽싸게 잡아 비틀어 위로 치켜 올리며 몸을 한 바퀴 돌리자 커다란 사나이의 덩치는 저만치 땅바닥에 뒹굴며 나가떨어지면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나뒹굴었다. 소영이의 몸에 연마되어 있는 합기도의 솜씨가 열을 뿜는 순간이었다.
사나이는 공교롭게도 마로니에 나무줄기에 몸통이 부딪치며 쓰러졌고 동시에 겁탈을 당하려던 급박한 상황에 놓였던 여자의 동태를 살펴보는 순간 소영이는 ‘앗’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교양학부의 한영주라고 하는 수학교수가 아닌가. 소영이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빨리 도망치세요! 제가 경찰을 부를테니까요.”
소영이는 어느 새 기숙사의 불빛을 향해 불나비처럼 쏜살같이 달려갔다. 뒤를 돌아볼 사이도 없었다. 사나이는 지금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을 것이다.
소영이는 기숙사 현관에 뛰어 들어서자 천만다행으로 마침 연숙이가 현관 당번으로 앉아 있었다.
“웬일이니?”
“한연주 교수님이 치한한테 당했어! 어서 빨리 경찰한테 연락해!”
연숙이가 미쳐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소영이는 전화의 숫자를 눌러대는 것이었다.
“학교 안에 치한이 나타났습니다. 여긴 경성여자대학교인데요.”
소영이는 숨을 몰아쉬며 말은 짧게 그리고 시원스럽게 수화기에 대고 신고를 했지만 그녀의 무릎은 자기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현관 밖을 보니 밤하늘에는 달빛이 구름에 흐르듯 휘영청 밝았다.
눈에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무선전파가 밤하늘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결찰국통신대로부터 시 외곽지역 부근을 순찰하고 있던 588호 경찰차에 경성여자대학교의 신고가 무선으로 연결되자 곧 지시가 내려졌다.
“여기는 588호, 상황 알았다. 오우버.”
588호 패트롤카가 응답했다.
패트롤 중인 경찰차의 각 무전기는 시달된 전파로 사건현장의 신고를 모두 접수하고 있었다.
“뭐라고? 여자대학에 치한이라고? 그런데 사건이 발생해서 알리는데 웬 즐거운 듯한 소리로 송신하는 거야? 오우버.”
588호 패트롤카 안에서는 화가 나 있는 듯 했다.
비록 긴급 무선전파가 시달되고 있었지만, 지금 소영이는 아무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사이렌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는다. 긴급 경찰차의 빨간 회전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여름 밤의 정적만이 있을 뿐이다.
그때 한연주 교수가 기숙사로 달려왔다. 그 뒤를 공손한 것인지, 무안한 것인지. 알지 못할 치한이 따라 들어오지 않는가. 그의 흰 와이셔츠는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낯선 사나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 남자 분은 내 친구인데…… 머리 뒤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
한 교수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했다.
연숙이는 기가 막혀 소영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영이도 연숙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영이는 상황을 알아채고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알아 차렸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소영이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연숙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연숙이는 이윽고 정신이 들었는지 의무실로 약을 가지러 달려갔다. 그때 사이렌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는걸요.”
소영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말했다.
“할 수 없지……”
치한은 기름기 없는 꺼칠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사나이는 소박한 얼굴형이었고 키가 훤칠하게 컸다. 이윽고 불빛을 사방에 번쩍거리며 사이렌소리가 미친 듯이 다가왔다. 무려 네 대나 되는 패트롤카였다.
패트롤카는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타이어가 바닥에 끌리는 마찰음을 내면서 급정거를 했다. 어느 새 기숙사의 유리 창문마다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처럼 학생들이 얼굴을 내밀고 의아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사건이죠.”
경찰 8명이 여기저기서 날쌘 동작으로 차에서 뛰어 내렸다.
“제가 다이얼을 돌렸습니다만 죄송하기 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잘못 보고…… 결과적으로 엉뚱하게 신고를 한 거예요.”
소영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단지 경찰관의 얼굴만을 쳐다 볼 뿐이었다.
한 경찰관이 얼굴을 급히 홱 돌렸다.
그 경찰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리고 아리따운 여대생과 가까이 눈이 마주치고 있는 것이 당황스러웠던지 아무 말이 없었다. 어디 그 뿐인가. 차에서 내려선 7명의 경찰관도 차 곁에 우두커니 장승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달무리 진 하늘엔 가득히 별이 빛나고 있었고, 별만이 아니라 땅에서는 여대생들의 눈빛도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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